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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미국에 간다
메르스 발생 17일째인 5일 아침. 신문에 실린 청와대 본관의 열감지기가 눈길을 끌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관련 체온 측정 및 손 소독을 실시하오니 적극적인 협조바랍니다”라는 안내문도 나붙어 있었다. 일부에선 비판하기도 하는 모양이나, 필요한 조치라고 본다. 대통령의 건강은 개인을 넘어 국가안보 차원의 문제이다. 다만 그 일이 있기 사흘 전 여수의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를 찾아 함박웃음을 짓던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박 대통령이 메르스 사태를 처음 입에 올린 시점은 환자 발생 13일째인 지난 1일 수석비서관회의 때였다. 발언의 첫머리는 시행령을 통제할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정치권 비판에 할애했다. 메르스는 두번째 등장했으나 “초기 대응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했을 뿐 정부의 대응 실패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없었다. 다음날에야 현정택 정책조정수석 주재로 청와대의 점검회의를 열고 긴급 대책반을 편성했다. 메르스 대응 현장인 국립중앙의료... -
정동영, 변한 줄 알았다
서울 관악을 4·29 보선을 주시하는 눈이 늘어나고 있다. 이곳은 지난 1988년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후 보수 성향 후보가 단 한번도 당선되지 못한 지역이다. 지금은 두 야당 세력이 맞서고 있고, 그 바람에 이 지역을 27년 동안 불모지나 다름 없이 방치했던 새누리당도 승리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다본다. 돌연 국민모임 후보로 뛰어든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빚어낸 파장이다.관악을의 관전 포인트는 여야의 대결 구도가 아니다. 무엇보다 130석이라는 거대 의석에도 불구, 제1 야당의 역할을 방기한 채 이제는 무대마저 빼앗길 지경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실체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번에도 야권연대 모색에 주력해온 정의당이나 노동당의 미미한 존재감은 군소 진보정당들의 현주소를 웅변한다. 압권은 출발선에 들어서기도 전에 야권재편의 축을 맡겠다는 국민모임 아니, 정동영의 승부수가 아닌가 싶다.선거는 저마다 시대정신을 담는다. 그러나 정동영의 등장은 여전히 가라앉아 있는 세월호의 진실도... -
광주는 피곤하다
“옆 동네 서을에선 또 무슨 일이….” 광주의 지인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귀다. 광주 서을은 4·29 재·보선이 치러지는 4개 지역구 중 1곳이다. 천정배 전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뜨거워지는 선거판을 보자니 ‘시민이 무슨 죄냐’는 푸념이 나왔던 모양이다. “시민만 불쌍하다”는 동조의 탄식도 들린다. 3 또는 4분된 야권과 새누리당의 대결 구도. ‘광주의 여당’ 격인 새정치연합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이번 선거판이 분명 건강한 현상은 아니다.새정치연합은 으레 ‘미워도 다시 한번’을 기대하는 눈치다. 다음 총선 승리와 집권을 위한 추동력을 달라는 것이다. 천 전 의원은 야권의 재구성을 위한 호남정치의 부활론을 내걸었다. ‘국민모임’은 천 전 의원과 연대하거나 지역사회의 신뢰를 받는 신인 발굴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 갈수록 연대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의당 역시 새정치연합을 제외한 야권 연대를 모색 중이다. 새누리당은 이정현 의원이 19대 총선에서 ... -
‘젠틀 문재인’의 그림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취임 후 처음으로 쓴맛을 봤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준 여부를 여론조사로 결정하자고 제안했다가 무안만 당하고 말았다. 인준에 부정적인 여론으로 이 후보자의 자진사퇴나 새누리당의 강행처리 포기를 압박하려 한 모양이나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총리 임명동의안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국회의 책무다. 문 대표로선 정무감각 부재나 아마추어리즘을 노출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인준안이 결국 여야의 표 대결 끝에 불과 7표 차로 통과된 만큼 야당으로선 지도부의 대응 미숙이 더욱 아플 법하다.여론조사 제안을 제외하면 문 대표의 출발은 나쁘지 않다. 문 대표는 경선 승리의 일성으로 ‘박근혜 정부와의 전면전’을 내세웠다. 박정희 묘역 참배와 메시지는 엇갈렸지만, 존재감 부재에 허덕이던 야당 지지층의 마음을 움직이고, 반대 세력의 눈과 귀까지 끌어당겼다. 야당 지지자들에게는 패자로서 역대 최다인 1469만여표를 얻고도 승리를 날렸던 지난 대선의 악몽을 털... -
‘나홀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은 왜 신년 기자회견을 했을까. 대통령의 ‘생얼’을 고대하는 국민 서비스 차원에서? 집권 3년차는 임기 후반으로 들어서는 분수령이니 통과의례는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하고 싶은 말은 반드시 해야겠다는 결기에서? ‘진심’을 설파하면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서? 어디에도 정답은 없어 보인다.박 대통령의 정국 인식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핵심 논란인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을 두고 “공직자들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 기강을 무너뜨린 일은 어떤 말로도 용서할 수 없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강도가 세졌을 뿐 청와대 홍보수석의 입을 통해 나온 ‘개인적 일탈’을 설명한 것 외에 의미를 부여하기가 어렵다. “국민 여러분께 허탈함을 드린 데 대해 마음이 무겁고 송구스럽다”고 밝혔으나 김기춘 비서실장이 앞서 밝힌 ‘송구’의 수위를 넘지 않았다. 사과나 유감이라는 표현은 없었다.놀라운 것은 박 대통령이 김 실장과 ‘문고리 3인방’ 비... -
박원순의 변심
“이번 일로 인해 제가 살아온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상황은 힘들고 모진 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중략) 시민운동가, 인권변호사 경력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것과 현직 서울시장이라는 엄중한 현실, 갈등의 조정자로서 사명감 사이에서 밤잠을 설쳤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약으로 추진해온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이 무산된 뒤 자신의 심경을 담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헌장 좌초’라는 결과보다 주목해야 할 일은 달라진 박 시장의 행보다. 시민위원회는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담은 헌장안을 표결로 결정했지만 박 시장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전원 합의를 요구했다.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애초 불가능한 만장일치를 요구하는 것은 만들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으나 외면했다. 대신 보수 기독교 진영 앞에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지난 10월 미국 방문길에 “한국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최초의 아시아 국가가 되길 희망한다”던 호언은 출발선에... -
‘새정치연합, 이럴 줄 알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다시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내년 전당대회가 다가오면서 당권경쟁을 놓고 벌어지는 계파 간 충돌이다. 당권·대권 분리론이 1차 발화점이다.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둔 인사가 당권을 잡아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둘러싼 갈등이다. 대별하면 친노와 비노 그룹이 맞서는 구도다.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 패배 후 내걸었던 대혁신은 온데간데 없다. 정치혁신실천위가 선거구 획정을 외부 기구에 맡긴다거나 의원들의 계파활동을 금지한다는 방안 등을 마련한 모양이지만 성사 가능성이나 실효성을 떠나 국민의 눈높이와는 크게 어긋난다. ‘이럴 줄 알았다’는 냉소가 비등하다. 계파와 나이, 지역, 선수를 안배한 비대위 구성 때부터 예견된 바다.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고도 당은 대수술 대신 비루한 공존을 모색했다. 계파 해체, 당 조직 일신, 공천 개혁, 노선 수정이라는 모든 구호들은 당의 위기를 감추기 위한 분식에 불과했다. 지난 대선 패배 이후에도 당 구원에 나섰다가 실패한 비대위... -
오슬로의 말랄라
마침 <나는 말랄라>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직후였다. 파키스탄의 ‘그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올해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해에도 후보에 올랐던 만큼 ‘올해는…’이라고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가벼운 흥분이 일었다. 잘 알고 지내는 이의 영예라도 되는 것처럼.2012년 10월9일. 파키스탄 밍고라에 살던 15세 소녀 말랄라는 끔찍한 사건을 겪는다. 하굣길에 탈레반이 쏜 총탄에 맞아 머리와 목에 치명상을 입었다. 11세 때부터 영국 BBC방송 블로그 등을 통해 여성교육에 반대하는 탈레반을 고발해온 데 대한 보복이었다. 영국으로 이송된 말랄라는 수차례의 대수술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살해 위협은 계속되지만, 소녀는 더 강해진다. 이듬해 7월 유엔에 나가 전 세계 여자 어린이의 교육권을 외쳤다. “펜은 칼보다 강합니다. 극단주의자들은 책과 펜을 두려워합니다. 교육이 그들을 겁먹게 합니다.” 올 7월에는 나이지리아를 찾아 무장단체에 납치된 ... -
‘호남의 고도’ 이정현
이정현 의원이 상한가를 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7·30 재·보선에서 금의환향한 그에게 ‘어부바 찬가’를 보냈고, 의원 사무실은 부처나 호남 지방자치단체 사람들로 넘쳐난다고 한다. 의원실은 예산에 목마른 호남 지자체들의 기대에 부응코자 ‘호남예산전초기지’라는 팻말이라도 내걸 모양이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눈과 귀를 붙잡는다. ‘재선 의원’과 ‘지명직 최고위원’이라는 계급장으로는 잴 수 없는 존재감이다.이 의원도 신바람이 났다. 최고위원에 임명된 직후 “호남 차별 행태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세종시를 찾아 소속 상임위 및 예산 관련 부처의 업무를 파악하는가 하면 지역구에 들러서는 현안이나 중소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곤 한다. 이 의원은 청와대 수석 시절 사석에서 만났을 때도 ‘호남 타령’으로 시종했다. 새누리당도 광양에서 최고위원회의를 개최, 예산 지원을 약속하는 등 이 의원을 뒷받침하고 나섰다.그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지역주의 타파의... -
‘야성(野性)’ 없는 야당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의 7·30 재·보선이 ‘기동민’으로 시작해 ‘기동민’으로 끝나가고 있다. 이슈나 정책 창출은 물론 인재 발굴도 없었다. 선거 기간 중 세월호 참사가 100일째를 맞았지만 구경꾼으로 허송했고, 정권의 인사파동조차 자신들의 ‘꼼수 공천’으로 묻어버렸다. 전대미문의 유병언 사건마저 그냥 흘려보낼 판이다. 남은 관심이라면 기동민 전 서울시부시장의 후보 사퇴가 촉발한 신(新)야권연대의 파장 정도다. 정권 중간심판이 자리할 공간은 없다.기동민 파동은 새정치연합의 민낯이다. 공천을 좌우한 건 명분과 원칙이 아니었다. 내건 기준이나 절차도 없었다. 아전인수식으로 쉬운 승리를 점치며 선거 후 지도부의 위상을 다지려 한 흔적만 여실했다. ‘라이벌’ 천정배 전 법무장관에게 지레 겁먹어 게도 놓치고, 구럭도 잃었다. 광주 광산을에 나선 기동민을 서울 동작을로 차출한 것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재판이 채 끝나지 않은 권은희를 동원한 것도 천정배 방어용이었다. 광주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