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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과 연산군의 같은 점과 다른 점
조선시대 내시나 승지는 국정농단 사례 드물어 소신파 관료 다 쫓아내고나라 다스릴 수는 없다‘문건유출’ 틀 갇히지 말고 비선·비서정치 파헤치길‘너그러운 정사 못 펴니 부끄러운 마음 금할 길 없네’ 연산군도 말년에 반성의 빛 대통령 사과·국정쇄신해야청와대 주변에서 터진 일들을 두고 조선시대 궁중암투를 보는 듯하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데 그건 조선 역사 전체를 욕보이는 말이다. 조선은 왕위 계승을 둘러싼 암투는 있었지만 중국과 달리 내시나 승지가 국정을 농단한 사례가 아주 드문 나라였다. 내시는 정사에 개입할 수 없었고, 승지(承旨)는 말 그대로 임금과 신하 사이에서 뜻(旨)을 이어(承)주는 구실에 그쳤다. 임금과 신하가 단둘이 만나는 독대를 금했고, 신하가 임금을 만나면 사관이 모든 대화를 기록했다. 사관은 요즘으로 말하면 청와대 출입기자일 텐데 기록의 공정성과 객관성 면에서는 저널리즘의 표준을 목숨 걸고 지킨 이들이니 기... -
‘불한당’ 정체성 드러낸 새누리당 정권
‘불한당(不汗黨)’을 직역하면 ‘땀 흘리지 않는 무리’라는 뜻이다. 노동을 싫어하는 건달이나 사기꾼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불로소득 계층으로 뜻을 확장할 수도 있겠다. 땀 흘려 일하고 쉬는 사람은 얼굴이 평온해 보이고, 우울증이나 큰 병도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서양에도 ‘땀 흘리지 않으면 달콤함을 누릴 수 없다(No sweet without sweat)’는 속담이 있다.우리 사회에서는 이제 이 통념이 바뀌고 있다. 땀 흘려 일해봤자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직장에서 쫓겨나는가 하면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노동자도 많다. 아예 직장을 갖지 못하거나 소득이 형편없는 이들은 결혼도 어렵고 결혼해도 아이 낳기가 두렵다. 모질고 거친 세파에 시달리다 못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도 많다.각종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얼마 전까지 세계에서 ‘고아 수출’ 1위였던 나라가 저출산 1위로 바뀌고, 40대 남자 사망률도 1위가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연간노동시... -
개헌 필요성 입증해준 대통령의 ‘일장 연설’
내가 영국에서 살아보기 전에 가졌던 선입견은 영국이 ‘신사의 나라’라는 거였다. 그런데 6년간 살면서 대문에 달걀 투척을 세 번이나 당했다. 부활절에 달걀을 선물하는 풍습을 악용해 날달걀을 던진 것이다. 동네 청소년들이 한 짓이지만 어른들이 교육을 잘못한 탓이리라. 살아보지 않더라도 영국이 세계를 제패하는 과정에서 식민지 사람들에게 어떤 짓들을 했는지 안다면 ‘신사의 나라’라는 별칭에 거부감이 생길 터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 머물 때 그곳 원주민인 ‘애버리진’의 전시회에 들른 적이 있는데, “영국인이 원주민을 사냥해 개 먹이로 삼았다”는 내용까지 전시돼 있었다. 영국은 스페인 무적함대에 맞서기 위해 해적인 드레이크에게 기사 작위를 내린 나라였고 축구장에서 말썽을 일삼는 훌리건의 본고장이었다.그런 오해의 연장선상에 영국 의회가 있다. 한국 국회에서 야유나 몸싸움이 벌어지면 신문 칼럼에 비교 사례로 자주 등장하는 게 영국 의회다. 상대 의원을 부를 때부터 “국민의 사랑을 받... -
‘살리기’하는 것마다 죽이는 ‘정권의 말장난’
선전선동의 기법 중 ‘불온 딱지 붙이기’는 극우파가 상대 진영을 싸잡아 궁지로 몰아넣을 때 자주 쓰는 전래 수법이다. 선전선동가들은 툭하면 편을 가르고 자기 진영을 미화할 때는 역으로 ‘좋은 이름 붙이기’ 수법을 동원한다. 1981년 봄 백령도에서도 산꼭대기 레이더기지에서 해군 장교로 복무하던 나에게 난데없이 훈장처럼 생긴 ‘국난극복기장’이란 것이 수여됐다. 신군부는 자기네가 정권을 잡을 때 저항한 사람은 ‘국난을 야기한’ 자들이지만 나머지 군인·경찰은 모두 국난극복에 동참했다는 취지였다. 70만 병력이 졸지에 ‘쿠데타군’ 편에 선 셈이다. 국난은 신군부의 범죄에서 비롯됐는데도 범죄행위를 ‘국난극복’으로 반전시켰다는 점에서 수양대군이 자기 패거리에게 내린 ‘정난공신’ 훈호와 다를 바 없다. ‘정난(靖難)’은 ‘어려움을 평안하게 했다’는 뜻이지만 애초 불안한 쪽은 역모를 꿈꾼 자기들이었을 따름이다. 그런 전통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집권한 이방원 일당의 ‘정사공신’ 책... -
박근혜 대통령 ‘처세술’ 누구한테 배웠나
유아독존, 아전인수, 교언영색, 당동벌이, 객반위주….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듣고 ‘도대체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고심하며 떠올려본 사자성어들이다.유아독존(唯我獨尊). 세상에서 자기만 존귀하다고 생각하는 태도다. 왕조 시대 군왕의 태도인데, 민주주의 시대 지도자라면 가져서는 안될 기질이다. 잘난 체하기로 제일 유명한 왕은 루이14세쯤 될 것이다. ‘짐은 곧 국가’라고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비슷한 말을 했다.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설훈 의원의 말투에 개인적으로 기분이 나빴을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자신을 국민과 동일시하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것을 알고 기분 나빠진 국민도 있을 것이다. 같은 군 출신이지만 전두환·노태우 두 대통령은 결이 꽤 달랐다. 전 대통령은 자기를 많이 닮은 탤런트조차 출연을 금했지만, 노 대통령은 “나를 코미디 대상으로 삼아도 좋다”고 말했다. 권위주의... -
해군소위 시절 집단폭행을 당한 사연
창피한 고백이지만 1980년 서해 백령도에 이어 백아도 레이더기지에 부장(부기지장)으로 부임했을 때 부사관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 이른바 ‘신임 소위 군기잡기’였다. 해군은 ‘기술군’이어서 부사관이 많은데, 특히 섬에 있는 작은 부대에는 장교가 적어 하극상을 당하는 일이 잦았다. 장교는 대위인 기지장과 나밖에 없었는데 회식이 있어 만취한 밤에 기지장이 귀가한 뒤 당한 봉변이었다. 밤이 되면 중사·하사들이 장교 몰래 수병들을 집합시켜놓고 구타한다는 사실을 알고 질책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고깝게 여긴 것이다. 너무나 심한 집단폭행으로 중상을 입고 기절한 뒤 수병들에 의해 사관실로 옮겨졌지만 의식이 조금 살아나자 불같은 성격에 내 권총부터 찾았다. 그러나 부사관들은 치밀하게 총과 무기고 열쇠까지 빼돌려 놓았다. 만약 총이 있었더라면 대량살상극이 벌어졌을 공산이 컸고 나는 아마 사형에 처해졌으리라. 군부대 폭력이나 총기 난사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내 일처럼 섬뜩해지는 이유다... -
세계언론사에 남을 ‘추악한 특종’과 선정보도
세계언론사에서 선정적 보도의 역사는 화려하기까지 하다. 미첼 스티븐스의 를 보면 뉴욕 신문 선(Sun)은 1835년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에 신설한 대형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한 결과 외계인이 살고 있다는 내용을 독점 보도했다. 삽화를 곁들여 외계인의 용모와 대화장면까지 묘사한 이 기사는 1주일 연재됐지만 모두가 거짓으로 들통 났다. 그러나 이 신문은 반성은커녕 축하 분위기였다. 판매 부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추리소설 작가이면서 언론인이기도 했던 에드거 앨런 포는 이를 지켜보다가 “선이 허위의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포 또한 열기구가 사흘 만에 대서양을 횡단했다는 거짓 기사를 써서 그 신문에 팔아먹었다. 이런 일화는 생존경쟁에 내몰린 언론사에 선정보도가 얼마나 유혹적인지를 말해준다. 그런데 앞으로는 선정보도에 관한 한 ‘뉴스의 역사’를 한국 언론이 새로 써갈 듯하다. 물론 지금 외국에도 선정보도를 부수와 시청률 확대의 수단으로 삼는 언론사가 많다.... -
‘이스라엘판 나치 만행’ 언론이 방조하는 이유
아인슈타인, 비트겐슈타인, 번스타인…. 물리학자, 언어철학자, 지휘자인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가 유대인이고 성이 ‘돌’(stone)을 뜻하는 독일어 ‘슈타인’(stein)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돌’이 유대인 성에 많이 들어가게 된 데는 그들만의 한 맺힌 역사가 숨어있다. 2000년간 나라 없이 서럽게 떠돈 유대인은 대부분 성도 가질 수 없는 존재였다. 언젠가 독일의 한 영주가 성을 허용했는데 단서가 붙었다. 유대인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돌’ ‘별’(Stern: 슈테른) 같은 자연물의 이름을 붙이게 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 천한 사람을 ‘돌쇠’ ‘갑돌이’ ‘마당쇠’ 등으로 함부로 부른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핏줄에 대한 유대인의 집착과 결속은 모진 박해 속에서 더욱 강해졌다.그러나 ‘호된 시집살이 한 며느리가 시어미 노릇 독하게 한다’더니 이스라엘은 지금 나치에 당한 것만큼이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혹독하게 탄압하고 있다. 공습에 따른 사망자는 8~17일... -
‘꼴뚜기 보수’ 대행진, 멈춰 세워야 한다
나는 ‘보수’라야 마땅하다. 영남 남인의 후예이고 안동 출신에 교장선생의 아들이니 거의 태생적 보수 아닌가? 가족과 한국사회의 행복과 질서를 추구하고, 나라에 대한 애정도 국민행동본부 같은 맹목적 애국단체 사람들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극우’ 소리를 듣는 문창극씨와 일치하는 경력도 많다. 그는 나보다 여섯 살 위로 같은 대학교에서 학사·석사 과정을 마쳤고 해군 학사장교로도 선배다. 기이하게도 백령도 해군 레이더기지에 근무하다가 서울 대방동에 있던 해군본부로 전출돼 부관을 한 것까지 똑같다. 그러나 그때부터 인생행로가 조금씩 달라진다. 그는 군대에 있으면서 대학원에 다녔지만, 나는 대학원과 군역을 차례로 마치느라 5년 반이 걸렸다. 그는 제도적으로 대학원에 다닐 수 있게 돼 있었다고 설명했는데, 나만 바보였나? 만 서른에 보수신문인 조선일보에 입사해 보니 7살 적은 동기가 있었고 ‘어린 선배’도 많았는데 위계가 엄격한 신문사에서 불편한 점도 있었다. 고위관료와 판... -
민주주의 적과 동지, KBS와 BBC
“집권당은 언제든 그들 노선을 지지해주도록 압력을 넣었으나 이를 거부해온 게 BBC 역사였다.” 이라크전쟁 보도의 공정성과 국익 논쟁이 치열하던 2003년 4월 내가 공부하던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의 심포지엄에서 그렉 다이크 BBC 사장이 한 말이다. 지금 한국의 공영방송 KBS와 MBC의 최고위 간부들은 뭐라고 답할까? 언론인으로서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불공정 보도 압력을 받아들였다고 고백할 테고, 양심이 아예 없다면 ‘근거 없는 폭로’라고 잡아떼지 않을까? KBS에서는 김시곤 보도국장과 5일 이사회에서 해임된 길환영 사장을 각각 대표인물로 꼽고 싶다.다이크 BBC 사장은 블레어 정권의 압력을 거부하다 2004년 1월 결국 쫓겨나지만 퇴임인사를 하러 보도국에 들렀다가 열렬한 박수를 받는다. 그는 책상 위에 올라가 “우리가 지키려고 노력한 것은 BBC의 정직성과 독립”이라 외쳤고 수많은 기자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그가 사옥 밖으로 나가자 군중이 운집해 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