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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박한철
2016헌나1.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의결되어 소추의결서가 헌법재판소에 도착하면 이 사건번호를 붙이게 된다. 2016은 연도, 헌나는 사건부호(탄핵심판), 1은 접수번호다. 요즘 헌재 분위기는 바깥에서 상상하는 것과 다르다. 어느 재판관은 “당장 국회에서 소추가 되겠느냐”고 했고, 다른 재판관은 “순리대로 마무리되는 게 좋다”고 했다. 사건만 들어오면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벼르는 상황도, 사건이 들어올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생각들이 다르다. 어느 재판관은 “노무현 대통령 때와 달리 사실 확정에 시간이 걸리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또 다른 재판관은 “검찰이 확보한 물증이 있다고 하니 그리 길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검찰 출신은 보수적이어서 기각의견일 것이란 단정도 단순한 추리다. 오히려 이들은 수사에 대한 신뢰가 있어 인용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물론 재판관들 자신도 심판을 시작해봐야 결정할 수 있다.탄핵심판 절차도 완... -
시민불복종을 생각한다
1987년으로 잠시 돌아가 보자. 야당과 재야단체의 직선제 개헌 요구가 높아지자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모든 개헌 논의를 금지하겠다”는 4·13호헌 조치를 발표한다. 그러나 서울대학생 박종철 열사가 정부 발표와 달리 ‘고문’으로 사망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6월항쟁이 본격화된다. 6월10일 전국 18개 도시에서 대규모 가두집회가 열렸고, 26일에는 100여만명이 시위를 벌였다. 여당인 민정당의 노태우 대표는 “직선제 개헌을 하겠다”며 6·29선언을 했다. 야당도 합의하면서 개헌이 이뤄졌지만 그해 12월16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된다. 그는 1979년 12·12쿠데타의 주역 중 한명이었다.당시 상황은 다시 광장과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얘기해 준다. 우선 헌법까지 바꿨지만 직선제라는 협소한 정치체제의 변화만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만들어진 야당의 한계는 당시나... -
‘퇴진’시킬 또 다른 권력
“우리 학교 다닐 때 ‘삥’ 뜯겨봤잖아요. 노는 선배들이 교실까지 찾아와서 주머니 뒤지는데 어쩌겠어요. 이것도 그거랑 똑같아요.” 미르재단에 출연했던 한 대기업 임원과의 통화에서 ‘삥 뜯기’란 단어가 귓전을 때렸다. 자발적으로 낸 돈이 아니니 억울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비선 실세’ 최순실 등 박근혜 대통령 측근들의 국정농단 파문에 휩싸인 기업들은 ‘나도 피해자’임을 강조한다. 검찰 수사가 옥죄어 오면서 “돈 뜯긴 것도 억울한데 뺨까지 맞게 생겼다”는 하소연도 나온다.곧 익숙한 풍경도 펼쳐질 것이다. “기업 활동 위축은 경제를 더 얼어붙게 만들 것”이란 발언이 등장할 것이다. 실제 생산과 투자, 소비, 수출이 죽을 쓰고 있고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른 불확실성도 커진 내우외환의 상황이다. 존재감 없이 뒷북에 헛발질을 일삼던 경제정책 기능도 지금은 공백상태다. 정계, 재계뿐 아니라 학계와 언론계에 포진해 있는 재벌의 우군들이 우려를 쏟아낼 것이다.그러나 ‘공짜 점... -
여성 아닌 대통령의 문제
“미안한 말이지만 아직 여자는 좀 멀었다고 봐요.” 가뜩이나 엽기적인 뉴스에 신경이 극도로 곤두서 있는데 택시 기사 아저씨의 말은 묘하게 흘러갔다. “하루 종일 손님들도 난리예요. 이게 말이 되는 나라꼴이냐고. 정신 나간 여자 둘이서 나라를 말아먹은 거지. 애도 낳아보고 시집살이도 해보고 그래야 뭘 해도 제대로 하지…. 아무튼 여자는 안돼.”여자라서 나라를 말아먹다니. 무슨 말도 안되는 시답잖은 소린가 싶었지만 그냥 넘겼다. 소위 ‘역대급’ 국정농단 사건에 ‘멘붕’이 된 사람이 어디 이 아저씨 하나뿐이겠나. 마을버스 안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이었으면 이렇게 당하지 않았을 텐데 여자라서 얕잡아 보인 거다”라며 장광설을 늘어놓는 일단의 할머니들 이야기도 그러려니 하고 흘려들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취재원으로 알고 지낸 50대 초반 지인의 얘기엔 현기증 비슷한 것이 밀려들었다. “앞으로 당분간 여자들이 기업이든 국가기관이든 조직의 장을 맡거나 나서기는 힘들 것... -
최순실
1979년 10·26과 2016년 10·26. 아무리 주술정치, 혹은 신정(神政)이라 해도 37년 세월이면 웬만한 악령쯤은 힘을 잃게 마련이다. 그러나 10·26에 서린 한은 지독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항소이유보충서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했으면서도 최태민을 구국봉사단 명예총재로 올려놓았다”고 했다. 37년 뒤 ‘큰영애’는 ‘국민들께 드리는 말씀’에서 “최순실씨는 과거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이라고 했다. 10·26은 박정희 스스로 세웠다고 믿었던 나라를 망가뜨린 최태민, 그 최태민의 악령을 박정희 영(靈)이 거둬버린 날이다. 그리고 아버지 박정희, 딸 박근혜는 ‘최태민’이란 나쁜 영과 그 영을 37년 동안 운반해 온 최순실에게 끌려와 마주 섰다.박근혜 대통령은 유난히 원칙을 강조한 지도자다. 정치 입문 후엔 “큰 권력은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지만 정작 큰 권세를 가장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그것을 소유한 당사자”, 정치 입문 전엔 “불... -
전면 무상급식 합류한 대구
2010년 5월13일자 경향신문 4면 한쪽에는 커다란 표가 실렸다. 교육감 예비후보 명단이었다. 주요 공약이 소개되고 마지막 칸에는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 의견이 표시됐다. 기자들이 후보자들에게 일일이 물어서 만든 표였다. 찬성의견이 압도적이었지만 반대의견도 적지 않았다. 반대의견을 분명히 한 후보 중 한명은 당시 대구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우동기 전 영남대 총장이었다.같은 해 6월3일 치러진 첫 교육감 직선제 선거는 두가지 의미 있는 성과와 과제를 남겼다. 첫번째는 호칭의 문제였다. 정당인은 교육감 선거 출마자격이 없는 데다 후보들마다 군소 교육단체들이 단일후보로 지지했다고 홍보하는 상황이어서 성향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호칭이 진보·중도·보수 후보였다. 경향신문은 전국의 진보진영 후보들을 상대로 문의했다. 진보라는 어감이 부담스럽다는 의견과 ‘야권단일후보’ ‘범민주시민후보’ 등의 호칭을 원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진보후보라는 호칭을 사용해도 ... -
전경련스러움
산업혁명 이후 지난 세기까지 경쟁은 시장경제를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생존을 위한 시장 선점 경쟁은 기술 개발과 가격 인하를 촉진했고 이는 소비 창출로 이어지며 기업의 이윤을 늘려왔다. 그 결과 전체 경제 규모는 급증했다.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에 기업이 생산능력을 높이려는 투자 이유 역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거대함은 기업의 권력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모이제스 나임 <권력의 종말>) 성공한 기업이란 큰 기업, 특히 한국에서는 재벌이 그 상징이었다. 재벌 오너들의 모임인 전경련은 이 때문에 재계의 ‘맏형’이란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지난달 28일 열린 창간 70주년 ‘경향포럼’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를 21세기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졌다.기업들은 저성장·저금리·고부채라는 ‘뉴노멀’ 시대의 돌파구를 연결에서 찾았다. 연결은 개방과 협력을 의미했다. 신동훈 삼성전자 상품전략그룹장은 “모든 것을 연결시키는 사물인... -
다람살라에서
“법회가 열리는 때는 큰길 양쪽으로 차가 막혀 5시간 동안 꼼짝 못하고 서 있는 적도 있어요. 매연도 많고요….” “아니 이곳에 매연이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이곳은 해발 높이가 1900m 정도로 한라산과 같지 않은가. 운무가 걸린 산자락에 앉아 세상의 모든 번뇌를 털어버리고, 마치 수행자가 된 듯 영성이 깃든 시간을 꿈꾸었건만 기대가 깨졌다.달라이 라마의 한국 방문을 추진하는 스님, 재가자들과 이달 초 인도 북부에 자리한 다람살라를 방문했다. 다람살라에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중국의 탄압으로부터 망명해 있다. 티베트 불교를 세계에 알린 상징적인 곳이다. 오체투지로 히말라야를 넘어온 승려는 물론 불자들, ‘참나’를 찾기 위해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로 붐빈다. 명상과 구도, 영성을 의미하는 특별한 공간이기도 하다. ‘깨달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곳에 가면 몸과 마음이 정화되고 평화가 찾아올 것으로 생각했다.그런데 웬걸! 다람살라는 그 다람살라가 아니었다... -
G2 사이의 한국 경제
2000년대 초 중국에 처음 갔을 때 받은 인상은 ‘참 형편없다’였다. 수도 베이징은 온통 흙먼지투성이에 도로는 자전거로 가득했다. 쯔진청(紫禁城)을 구경하고 나오니 바나나 뭉치를 들이밀고 “1000원”을 외치는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량들이 짙은 안개로 길이 막히자 ‘그냥’ 역주행해 도로를 빠져나갔다. 도중에 들른 휴게소 화장실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지저분했다. 당시 중국은 개혁·개방으로 본격적인 경제발전 궤도에 오르던 때다. 하지만 이 단편적인 경험들은 ‘중국은 아직 한참 멀었다’라는 우월감, 경시감을 심어줬다. 새로 만든 휴게소의 깔끔한 화장실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자 화장실 소변기 앞에 ‘일보전진(一步前進) 문명일진(文明一進)’이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던 것 같다. 한국이라면 ‘남자가 흘리면 안되는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식의 애교 섞인 글귀가 있는 자리다. 소변 볼 때 한발 다가서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하자는 표어에 문명의 진보 운운하는 ‘대륙식’ 허풍... -
끝나지 않은 ‘거위의 꿈’
열정, 노력, 집요함. 말단 당직자에서 시작해 여당 대표를 꿰찬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인생 역정’은 이 세 단어에 함축돼 있다. ‘그분’을 향한 과정에서 형성되고 사람들에게 각인됐다.이 대표는 ‘정치인 박근혜’의 말들을 모았다. 읽고 또 읽었다. 2008년에는 “혼자 보기 너무 아깝다”며 <박근혜 어록>으로 출간했다. 박 대통령의 말은 ‘정치인 이정현’의 언어, 사고로 체화되고, 어떻게 얘기해도 그분의 생각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실제 박 대통령은 과거 이 대표를 두고 “한번도 제가 하지 않은 말을 옮긴 적이 없다”고 인증했다. ‘복심(腹心)’은 그냥 되는 게 아니었다.박 대통령은 취임 석 달도 안돼 터진 ‘윤창중 사건’으로 이남기 홍보수석이 물러나자, 후임으로 ‘정무수석 이정현’을 수평이동시켰다. 박근혜 정부 인사 원칙인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자’는 여럿 있었겠지만 박 대통령의 심기를 읽어 언론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으로 치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