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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세권’과 지역의 고통
농촌 지역에서 ‘맛집’을 고르는 나름의 눈썰미가 있다. 버스터미널과 기차역 주변에서 먹지 말라는 얘기는 도시에나 해당하는 말이고 작은 고장에서는 기차역과 버스터미널 주변이 중심지여서 먹을 만한 식당도 그 주변에 있다. 군청이나 읍·면사무소의 공무원, 농협 직원들이 빛바랜 주렴을 손으로 들추고 들어가는 백반집이 맛있다. 군부대 소재 지역이라면 나이 지긋한 군무원들이 사병들을 데리고 가서 먹는 집이 맛집이다. 임실 터미널 근처의 피순댓국집도, 원통의 작은 국숫집도 그렇게 찾아낸 나만의 맛집이다. ‘군세권’이란 말이 있다. 군인 외출이 허용되면서 상권이 되살아나는 효과를 말한다. PC방이나 노래방,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 카페 등 농촌 읍내에서 누가 이용을 할까 싶은 상점들이 즐비한 곳도 대체로 군부대 지역이다. 군부대 주변의 이미지를 유흥업소와 연관짓던 때도 있었지만 근래엔 농촌 지역의 유일한 상권이 군세권이다. 철원, 화천, 인제, 고성 등 접경지역의 주민과 정치인들... -
장점마을 이야기
전북 익산과는 ‘농활’이라는 인연이 있다. 도시 학생들에게 농촌에 대한 경험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을 깊게 하는 데에는 농활이 큰 역할을 했다. 나도 그랬다. 지금도 뉴스에 익산 소식이 들리면 귀를 쫑긋 세웠다. 최근 몇 년간 들려온 익산의 소식은 ‘장점마을’이었다. 지난달 14일 환경부는 익산 장점마을 주민들의 집단 암 발병이 ‘금강농산’의 비료공장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공식 인정했다. 비료는 크게 유기질비료와 무기질비료로 나누는데 유기질비료에는 기름을 짜고 남은 ‘유박’이나 생선을 가공하고 남은 ‘어박’ 등이 들어간다. 금강농산에서 생산하는 비료는 담배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인 ‘연초박’을 원료로 쓰던 유기질비료였다. 퇴비로만 허용된 연초박을 불법으로 태우는 과정에서 온 동네에 유해가스를 내뿜었고 장점마을 주민들은 익산시와 전북도에 민원을 제기해 왔다. 수요일에 KT&G 본사 앞에 장점마을 주민들이 섰다. 그냥 피워도 사람 몸에 해롭다는 담배인데 그 찌꺼기를 ... -
미슐랭 스캔들
영광은 영광대로 잡음은 잡음대로 많던 ‘미슐랭의 별’이 이번에도 스캔들을 터뜨렸다. 올해의 스캔들은 미슐랭 가이드북이 자랑해오던 평가 원칙 때문이었다. 미슐랭 측은 암행 평가단이 드러나지 않게 식당을 방문해 별점을 매겨왔다 했지만, 한국에서 처음부터 미슐랭 가이드북에 관여하는 컨설턴트들이 붙어 수수료를 받고 별 3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줬다는 폭로가 나온 것이다. 2016년 처음 발행된 ‘2017 미슐랭 가이드 서울 편’에 당시 한국관광공사와 농림축산식품부 산하기관인 한식재단(현 한식진흥원)에서 20억원을 미슐랭 가이드북에 지원해 논란이 있었다. 처음부터 암행의 과정이 아니라 한식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20억원도 미슐랭 가이드북 측이 요구한 ‘보안유지’를 핑계로 어떻게 집행되었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미슐랭 가이드북은 그간 늘 많은 비판을 받았다. 유럽에서는 열지도 않은 식당에 별점을 주었다가 출판물을 수거하는 일이 있었고 ... -
코 묻은 돈과 전두환의 1030억
‘국교생’이라 불렸던 전두환 시대에 딱 한번 반장을 했다. 반장이 되었다 하니 엄마가 한숨을 쉬었다. 반장 엄마는 돈과 시간이 필요했지만 엄마는 그 두 개가 없었다. 스승의 날과 교사의 소풍 도시락, 각종 성금모금에 ‘솔선수범’을 해야 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크리스마스씰’을 사야 했고, 반장이라면 당연히 한 세트 전장을 구매해야 했고, 고만고만한 형편의 친구들은 마지못해 두 장, 석 장 정도를 억지로 샀다. 홍수가 나거나 연말이면 불우이웃돕기 쌀도 걷었다. 엄마는 4남매가 쌀을 다 갖다 내면 쌀통이 푹 줄어든다며 ‘정부미’ 반말을 들여와 갖다 내라 했다. 영세민이었던 친구는 정부미를 지급받던 형편이었는데 예외 없이 학교에 갖다 내야 했으니 배급받은 정부미 포대에서 한 바가지 퍼냈을 것이다. ‘국군장병위문품’도 모았다. 문교부와 국방부가 억지로 짝지어준 1교 1부대 자매결연으로 엮이고 반에는 커다란 우편낭이 배치되었다. 여기에 할당받은 만큼 물건을 채워야 했다. 사탕... -
부실한 ‘농촌 컨설팅’ 업체들
10년 전, 충남에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카페의 운영자로 일했다. 사회적기업 창업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였고 우수사례로 남으려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아무리 뜻이 좋아도 엄연히 냉혹한 장사의 세계였다. 사회적기업도 수익은 못 내더라도 적자는 벗어나야 생존이 가능하다. 그때 심사와 인증 주체인 지자체에서 잘해보라며 컨설턴트 한 명을 파견해 주었다. 엄연히 세금 들어가는 일인 데다 자부담 비용도 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무엇보다 경영개선이 절실했기 때문에 컨설턴트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까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꼼꼼하게 적어 해보라는 건 다 해보았다. 돌이켜보니 서울에서 내려온 그가 한 상권 분석이란 고작 카페 주변을 몇 번 걸어다니며 산책을 한 수준이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컨설팅대로 장사는 되지 않았지만 그는 컨설팅 비용에 부가세까지 챙겨갔다. 사실 컨설팅이 아니라 사기였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지난 8월 ‘청년농업인연합회’ 회원들이 국회에 모여 자신들의 얘... -
배달노동 청년이야기
한 청년의 이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모 프랜차이즈 떡볶이 가게의 배달 일을 하는 스무 살 조카가 큰 교통사고가 났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문의였다. 청년은 고교를 졸업하고 배달노동자가 되었다. 다행히 떡볶이 가게 사장은 좋은 고용주였다. 청년을 인격적으로 대했고 청년도 첫 사회생활의 멘토로 여기며 잘 따랐다. 그런데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청년은 근무를 한 지 석 달이 넘어섰을 때 사고가 났다. 배달을 하러 가다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청년은 교차로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다가 파란불이 켜지자마자 힘차게 오토바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 찰나에 노란불이 켜졌는데도 교차로를 빨리 통과하고 싶었던 반대편 차선의 마을버스가 속도를 내며 달려들었고 청년의 몸은 떡볶이와 함께 하늘로 붕 떴다 바닥에 내리꽂혔다. 떡볶이가 쏟아지고 떡볶이보다 더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아주 더운 여름날이었고 청년은 헬멧을 쓰지 않고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내려왔을 때는 계절이 바뀌어 추석 명... -
한국 농민 응원한 홍콩의 현실
초·중·고생 때 최고의 인기 영화 장르는 ‘홍콩누아르’였다.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 팬시 제품은 아이돌 ‘굿즈’의 원조였을 것이다. 내가 처음 접한 홍콩은 영화를 통해서다. 외양은 나와 같은 동양인이지만 영어식 이름도 많고, 영어에도 익숙한 사람들, ‘빅토리아 공원’ ‘프린세스 마거릿 병원’ 같은 지명도 영국풍인 곳. 영국의 지배를 99년간 받다 1997년 중국에 반환되어 일국양제(一國兩制)를 표방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 뿐이다. 그러다 홍콩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2005년 12월 홍콩에서 6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렸다.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5차 WTO 각료회의에서 ‘WTO가 농민을 죽인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이경해 농민이 목숨을 끊었고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렇게 칸쿤 회의가 무산된 뒤 홍콩에서 2년 만에 재개된 WTO 회의였다. WTO 체제로 상징되는 ‘세계화’의 가장 큰 희생 부문은 농업 부문이다. 그래서 반세... -
달걀 산란일자표시제도의 부작용
명절 대목은 농업에서 중요하다. 계란 시장의 최대 대목도 명절이다. 과채생산은 날씨가 좌우하지만 계란 생산은 닭이 좌우한다. 인간들의 명절이라고 닭이 더 많이 낳겠노라 결심할 것도 아니기에 명절을 앞두고 물량조절을 해왔고 별문제가 없었다. 계란은 신선식품 중에서도 유통기한이 길어 냉장상태에서는 통상 한 달 정도 보관할 수 있고 40일 정도까지도 가능하다. 섭씨 5도를 유지하면 6개월까지도 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 2017년 8월, 계란에 살충제 성분이 기준치보다 높게 나오면서 계란 파동을 겪었다. 양계농민들 입장에서 억울함도 많았지만 일단 이 사태를 견뎌왔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동물복지형 축산 전환, 살충제 검사 확대 및 처벌 강화, 산란일자 표시 등의 ‘식품안전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식품파동이 나면 대체로 들끓는 여론 때문에 소비자의 알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만들어지곤 한다. 식품안전개선종합대책 중에서 양계생산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산란일자의... -
과수원에 도는 ‘역병’을 막아라
농촌에는 ‘과수원 집’이란 택호를 여전히 쓴다. 1960~70년대에도 ‘특작’이라 우대받으며 돈 좀 만지는 농사는 과수와 축산이었다. 그래서 과수원 집 아들, 딸들은 주머니에 철전이라도 넣고 군것질 좀 할 수 있는 동네 부자의 대명사이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 한해살이 과채보다 과수의 경우 첫 수확에 걸리는 시간도 5년 안팎으로 길고, 기술의 숙련도도 축적돼야 하고, 저장시설 등을 갖추는 등 자본이 많이 투하되는 농업이다. 올해 전국 과수농가들이 마음을 잔뜩 졸였다. 아니 2015년부터 긴장 상태다. ‘과수화상병’이라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사과 주산지인 충주와 제천 등지에서 발생하고 아직도 중부지역에 발생하고 있어서다. 말 그대로 과일나무가 화상을 입듯이 타들어간다는 이 병은 2015년 안성의 배 농가에서 처음 발생하고 올해 177농가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사과, 배 등 장미과 식물에 발생하는 병이다. 확산이 빠른 데다 치료법도 없어 치명적이다. 확진 판정을 받으면 반경 10... -
농식품부 장관 임명에 대한 소고
화제의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는 대통령을 비롯해 총리, 국무위원들의 유고로 정치에 뜻이 없던 환경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참에 살펴보니 정부조직법에 따라 대통령 유고 시 권한대행의 순서가 정해져 있다. 우리나라도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몇 번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았다. 드라마에서처럼 ‘황 대행님’으로 불렸을지는 모르지만. 대통령 권한대행 서열은 정부조직법에 정해져 있다. 총리가 1위이다. 2위는 기획재정부, 3위는 교육부다. 모두 부총리급의 국무위원이기 때문에 서열이 높다. 이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교부, 통일부, 법무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등의 순서다. 내가 의외라 느낀 것은 농림축산식품부의 서열이 생각보다(?) 높아서다. 드라마에서 권한대행을 맡게 된 환경부 장관보다 3계단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