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자 김지영들의 이야기
미국 국립연구회의(National Research Council)는 1979년부터 과학기술계 여성 인력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이 보고서들은 박사 학위자들에 대한 상세한 통계조사를 바탕으로 국가의 관점에서 여성 ‘인력’의 활용을 고민한다. 인력 관리의 측면에서 여성 과학기술인 문제는 숫자의 문제로 귀결된다. ‘과학기술계에 여성은 왜 이렇게 적은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과학과 공학, 수학 분야로 진입해 석·박사 학위를 받는가, 이들 중 대학이나 공공연구소, 기업연구소 등에서 ‘연구인력’으로 남는 이들은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어떤 이유로 얼마나 많은 여성이 과학기술계에서 이탈하는가 등 숫자에 주목한다. 한국에서도 여성 과학기술인에 대한 조사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2006년부터 과학기술 부처의 주도로 매년 수행되는 ‘여성 과학기술 인력 활용 실태조사’가 대표적이다. 이 조사는 인력의 유입과 유출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미국... -
우주개발과 미래에 대한 상상력
“삡…삡…삡….” 1957년 10월4일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지구 궤도에 진입했다. 소련 튜라탐 제5발사장에서 떠오른 스푸트니크는 3주 후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지구 궤도를 돌며 원격 측정(텔레메트리) 신호를 발신했다. 국경을 가리지 않고 머리 위를 떠도는 위성은 당시 세계인들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인류가 만들어낸 테크놀로지가 지구를 벗어나 우주 공간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소련과 냉전 경쟁을 벌이고 있던 미국에서의 반응은 마냥 긍정적일 수만은 없었다. 한편으로는 소련이 지구 궤도에 물체를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의 발사체 기술을 확보했다는 공포감이 만연했다. 스푸트니크 발사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은 미국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수요 공급, 취업 및 보상”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라고 요청했다. 조사 결과 미국은 소련에 비해 인구 대비 과학기술 인력의 숫자가 뒤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연방정부는 곧바로 과학기술 인... -
2086년, 자동차의 퇴출
“혼잡을 해결하기 위해 자동차에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장착할 것이다. 위성 안내를 받는 각 자동차는 운전자 능력에 맞춘 실수 감지 장치와 추돌 방지 레이더를 장착하고 있다. 어떤 길은 막히므로 피해야 하고 어떤 길로 가야 빠른지 알려준다. (…) 도시 진입로에 가상 톨게이트와 전자 칩 카드를 만들어 주행거리를 표시하고 해당 금액이 은행 계좌에서 이체되도록 할 것이다. 도시에서 차량은 시민의 공동 재산이 되어 한 사람이 쓰고 난 후에 다른 사람이 사용하도록 할 것이다. (…) 전기 엔진을 사용하면 내연기관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전기 엔진은 개발하기가 어렵다. 어쩌면 영원히 개발 못할지도 모른다. (…) 앞으로 전 세계 모든 도시에서 자동차 운행을 금지시킬 수밖에 없다. 운행 금지 결정은 도시와 교통의 모든 관계를 뒤흔들어 놓을 것이며 한편으로는 원격 근무와 정보 경제 발달을 촉진할 것이다.” 이는 1998년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가 펴낸... -
‘스마트홈’의 주인은 누구인가
과학기술이나 SF를 많이 다루는 매체 ‘기즈모도’의 카슈미르 힐과 수리야 마투 기자는 최근 미국언론재단에서 주는 ‘저널리즘 속 테크놀로지’ 분야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들이 올해 2월에 쓴 ‘스마트홈’에 대한 기사가 취재와 보도에 테크놀로지를 창의적으로 활용한 사례로 선발된 것이다. 힐과 마투가 취재한 ‘스마트홈’은 상상 속 미래가 아니라 지금 실현 가능한 현재의 공간이었다. 이들이 체험한 ‘스마트홈’은 그다지 멋지지 않았다.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힐과 마투는 힐이 사는 샌프란시스코 아파트를 ‘스마트홈’으로 만들기로 했다. 텔레비전, 진공청소기, 인공지능 스피커 등 전자기기뿐만 아니라 커피메이커, 장난감, 칫솔, 침대까지 최대한 많은 물건을 인터넷에 연결하고 이 기기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도록 한 것이다. 힐이 스마트하게 변한 자기 집에서 사는 동안 마투는 직접 설치한 라우터를 통해 힐의 ‘스마트홈’이 작동하는 상황을 관찰했다.오래된 집을 ‘스마트홈’으로... -
미세먼지, 기후변화, 인류세
삼성전자는 지난 9월 <고래먼지>라는 4부작 SF 웹드라마를 제작, 발표하였다. 2053년 한국을 배경으로 소녀와 기상캐스터가 인공지능과 함께 바다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에서 ‘미래’는 두 가지 것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첫번째는 미세먼지다. 뉴스는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나쁨’ 기준의 10배가 넘는 1527㎍/㎥라는 예보, 여전히 내리지 않는 비, 계속되는 인공강우 실험 실패 소식을 전달한다. 황토빛 먼지가 자욱한 대기 속으로, 그리고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진 땅 위로 나서는 일은 지하의 완벽히 제어된 공간 속에서 사는 인간에게는 큰 모험이다. 푸른 숲과 파란 하늘은 창처럼 만들어진 디스플레이에서 비칠 뿐이다. 두번째는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은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넘어서 각별한 관계를 맺는 물체로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은 인공지능과는 일상적으로 교감하지만 사람과 교감을 하는 일은 오히려 예외적인 사건에 가깝다. 인공지능은 기계라기보단 홀로그램... -
시뮬레이션
1972년 12월, 아폴로 17호가 달에 착륙했다. 1966년 시작된 아폴로 프로그램의 마지막 비행이자 현재까지 마지막 유인 달 탐사였다. 세 번째 우주비행을 하게 된 유진 서넌 사령관은 월면에 3일 동안 머물며 각종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현재까지 달 표면을 밟은 마지막 인간으로 남아 있고, 이 기록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아폴로 17호는 인류의 집단적 기억에 또 하나의 흔적을 남겼다. 우주 공간에서 찍은 지구의 고화질 사진이었다. ‘블루 마블(푸른 구슬)’이라고 알려진 이 이미지는 누구나 한번쯤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세계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이 사진은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 아득한 우주 공간 속에 외롭게 떠 있는 하나의 작은 행성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밖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은 무엇보다도 지구가 사실상 닫힌 계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인류에게 주어진 자원이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생각은 19... -
2069년, 지도의 소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지도예찬: 조선지도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 특별전을 관람했다. 박물관에 따르면 조선왕조 500년을 풍미했던 조선지도는 오늘날 동아시아의 지리학 연구와 지도 제작 분야에서도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특별전에는 ‘동국대지도’ ‘대동여지도’ 등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요 소장품 외에도 국내 20여개 기관과 개인이 소장한 중요 지도와 지리지가 전시돼 있다.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는 공간을 주제로 한 지도를 만날 수 있다. 태종 2년(1402년) 5월 제작해 동아시아 최초의 세계지도로 평가받고, 역사학자 제리 브로턴 영국 퀸메리대학교 교수가 쓴 <욕망하는 지도: 12개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의 한 장을 당당히 차지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이다. 다만, 원본을 소실하고 사본조차 일본이 보관하고 있는 탓에 복제본의 일부만 전시실이 아닌 도록에 수록한 점은 아쉽다.조선 후기 화가 윤두서가 1710... -
인공지능과 인공지구
최근 네 차례에 걸쳐 연재된 경향신문 ‘생태계가 바뀐다’ 기획의 마지막 기사는 ‘2050년의 기상예보’였다. 최고기온이 40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지고, 아열대 지방처럼 예측 못할 비가 쏟아지기도 하며, 따뜻해진 바닷물 대신 인공동굴에 들어가는 것으로 피서를 하고, 스키를 타려면 해외로 나가야 하는 2050년의 기후 풍경을 보여주었다. 지난여름의 폭염을 겪은 사람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미래였다. 공상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올 법한 미래의 날씨를 제시했다는 이 기사에서는 각종 미래 예측에 그동안 단골로 등장하던 인공지능 기술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홀로그램 기술을 사용하는 인공지능 기상캐스터가 폭염 소식을 전하고, 손목에 찬 스마트칩에서 요즘의 재난문자 비슷한 메시지를 가상 영상으로 띄우는 게 전부다. 오히려 에어컨 대신 ‘패시브쿨링 컨디셔너’를 사용해서 만드는 ‘마이크로 기후’가 미래 첨단기술처럼 들린다. 2050년쯤이면 세상을 놀랍도록 멋지고 편한 곳으로 만들어 준다던... -
스마트 시민의 조건
내가 사는 대전에는 전화로 버스표를 예약할 수 있는 작은 정류소가 있다. 이 정류소에는 주로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정차하는데, 전화를 걸어 버스가 언제 있는지, 나의 비행기 스케줄에 맞추어 가려면 몇 시 버스가 적당한지, 혹시 고속도로 교통 상황이 나쁘지는 않을지 직원에게 물어보고 버스표를 예약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공항버스를 예약하려고 전화를 걸었다가 더 이상 전화 예약을 받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버스 정류소 직원에 따르면 이로써 국내에서 전화로 표를 예약할 수 있는 버스 정류소는 모두 사라졌다. 그는 그동안 이 정류소가 버스표를 판매하고 버스를 타는 곳 이상의 역할을 해 왔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대전에서 꽤 멀리 떨어진 무주나 공주에서 전화로 표를 예약하고 이곳에서 버스를 타기도 했고, 본인의 여정과는 무관한 이 정류소로 전화해 어디에서 언제 버스를 타야 목적지로 갈 수 있을지 묻기도 했단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온라인 예약이 일상이... -
신뢰받는 과학자와 미래사회
1986년 2월11일 오전 10시, 워싱턴 미국과학아카데미 강당에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사고에 대한 대통령위원회(로저스위원회)’ 청문회가 열렸다. 당일 소환된 증인은 미 항공우주국(NASA) 매니저 로런스 멀로이였다. 그는 폭발이 시작된 부위로 지목된 고체 로켓부스터(SRB)를 담당했다. 멀로이는 우선 SRB가 어떻게 구성되고 조립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설명했고, 이어 여러 위원들이 질문을 던졌다. 멀로이의 증언 순서가 끝나갈 무렵 한 위원이 발언을 요청했다. 칼텍 물리학과 교수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이었다. 윌리엄 로저스 위원장의 허락을 받은 파인만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미리 준비한 얼음물이 담긴 컵을 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결 부위를 밀폐하기 위한 고무 실을 얼음물에 넣었습니다. 여기에 압력을 가했다가 제거했을 때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다시 말하면 이 소재는 0도일 때, 적어도 몇 초 이상 동안 회복력이 없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