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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먼지도 노래가 된다
‘먼지’의 사전적 의미는 ‘가늘고 보드라운 티끌’이다. 하잘것없어 보이는 먼지가 노래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의외로 울림이 크다. “… 내 조그만 공간 속에 추억만 쌓이고/ 까닭 모를 눈물만이 아롱거리네/ 작은 가슴을 모두 모두어/ 시를 써 봐도 모자란 당신/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이 노래는 음악 프로듀서인 송문상이 명동 쉘브르에서 만난 싱어송라이터 이대헌과 합심해 만들었다. 송씨는 초등학교 때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노랫말에 담았다고 했다. 1976년 발표했지만 큰 반향은 없었다. 다시 세상에 얼굴을 내민 건 1987년 송씨의 아내인 가수 이미키의 앨범에서였다. 그러나 제대로 임자를 만난 건 1991년 함춘호가 편곡해 이윤수가 부르면서였다. <90 창신동, 그리고…>라는 앨범에 수록된 이 노래로 이윤수는 유명해졌다. 원곡자인 이대헌에 따르면 후배 가수인 김광석과 이윤수가 거의 동시에 리메이크 요청을 해왔지만... -
모든 노래에 혼을 불어넣던 김광석
김광석을 마지막으로 만난 건 1995년 대학로 학전소극장에서였다. 소극장 1000회 공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그를 인터뷰한 뒤 앉을 자리도 없는 공연장 통로에서 콘서트를 봤다. 이듬해 1월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만큼이나 다시는 그의 라이브 공연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도 컸다. 해가 가면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지는 게 인지상정인데 김광석도 예외가 아닐 수 없다. 지난달 SBS가 신년특집으로 기획한 <세기의 길 AI vs 인간>에서 인공지능(AI) 합성기술로 재현한 김광석의 목소리로 김광진의 ‘편지’와 김범수의 ‘보고 싶다’를 방송했다. 비록 그가 직접 부른 노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격차가 느껴졌지만 노래를 들으면서 그의 부재가 더 안타까웠다. 김광석이 생전에 발표한 ‘다시 부르기’ 1집과 2집에서 증명했지만 모든 노래에 혼을 불어넣어 다시 불러내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창법으로 부른 노래들은 원주인... -
코리안 키튼즈와 블랙핑크 사이
한류의 중심엔 블랙핑크와 같은 K팝그룹이 있다. 오늘날의 한류가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1960년대 비틀스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을 때 우리에겐 신중현이 있었다. 또 이미 그 시절에 전 세계를 누비던 걸그룹도 있었다. 코리안 키튼즈(사진)는 ‘여러분’의 가수 윤복희를 비롯하여 서민선, 김미자, 이정자로 결성된 4인조 걸그룹이었다. 1964년 10월 결성되어 세계를 무대로 활약했던 걸그룹의 조상쯤 된다. 윤복희의 증언에 따르면 필리핀의 쇼 프로덕션과 계약하고 출국했으나 사기를 당해 오도 가도 못할 때 영국인 쇼 프로모터의 제안을 받고 런던으로 날아갔다. 이들은 1964년 11월 영국 BBC의 <투나잇쇼>에 출연해 비틀스의 ‘캔트 바이 미 러브(Can’t Buy Me Love)’를 불렀다. 독일 총리의 취임식에도 초청되어 노래를 부르는 등 인기를 끌었으며 스페인 등으로 공연을 다녔다.윤복희는 12세 때 아버지 윤부길의 영향으로 미8군... -
로버트 번스 ‘올드 랭 사인’
‘올드 랭 사인’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노래로 유명하다. 1788년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번스는 예로부터 내려오던 노랫가락을 채록하여 ‘올드 랭 사인’의 악보를 완성했다. 그는 스코틀랜드 음악박물관에 이 노래를 보내면서 “어느 노인으로부터 받아적었을 뿐 나는 작사가도, 작곡가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옛 시절’ ‘오래전부터’쯤으로 해석되는 제목처럼 이 노래를 듣다 보면 회고조의 멜로디가 흘러간 시간에 대한 감흥에 젖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는 국경을 넘고, 민족을 초월하여 전 세계로 전파됐다. 비비언 리 주연의 영화 <애수>에서 여가수 코니 프랜시스가 주제곡으로 불러서 더 유명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작별’ ‘석별의 정’이라는 제목으로 졸업식, 각종 행사의 폐회식 등에서 자주 불렀다.“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어디간들 잊으리오 두터운 우리 정/ 다시 만날 그날 위해 노래를 부르자.”아동문학가이자 시인... -
김민기 ‘금관의 예수’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김지하가 쓰고 김민기가 만든 이 노래는 마치 찬송가처럼 들린다. 실제로도 기독교 민중가요의 효시가 된 노래로 교회 안에서도 많이 불렀다. 1973년 시인 김지하는 희곡 <금관의 예수>를 써서 원주 가톨릭회관에서 공연하기로 했다. 동생처럼 따르던 김민기에게 연극무대에서 쓸 노래를 부탁했다. 김민기는 원주로 가는 시외버스 안에서 이 곡을 썼다. 그 당시 공연을 주선한 이는 훗날 서강대 총장을 지낸 박홍 신부였다. 그는 김지하에게 교회의 자기비판이 담긴 희곡을 주문했다. 김지하는 예수에게 가시면류관 대신 금관을 씌워 권력과 타협하는 종교를 풍자했다. 거지, 문둥이, 창녀를 돕는 수녀, 이들을 등쳐먹는 경찰과 악덕 업주, 이들을 외면하는 대... -
나애심 ‘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날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이 노랫말을 쓰고, 작곡가 이진섭이 곡을 붙인 노래로, 나애심이 불렀다. 또 현인과 현미, 조용필에 이어 박인희가 부르면서 유명해졌다. 이 곡이 쓰인 배경은 소설가 이봉구의 회고록 <명동백작> 등에 기술돼 있다. 1956년 봄 명동의 동방살롱 맞은편 술집 은성(배우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주점)에서 테너 임만섭이 처음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누군가는 즉석에서 만들어진 노래라고 했지만 두 사람이 꽤 오랫동안 시간을 두고 공을 들였다. 은성의 여주인에게 들었던 애절한 연애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래였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명동 일대를 휩쓸면서 술잔을 기울이던 ‘댄디보이’ 박인환은 곧 요절하고 만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
에일리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
2017년 벽두를 뒤흔들었던 tvN 금토드라마 <도깨비>는 많은 화제를 낳았다. 김은숙 작가는 사극과 현대극을 뒤섞은 판타지 드라마의 전형을 만들면서 스타작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화제의 드라마답게 많은 낙수거리도 만들었다.그중에서도 에일리가 부른 O.S.T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는 당시 국내 주요 음원사이트를 석권했다. 이후 매년 ‘첫눈 송’으로 불리면서 초겨울이면 다시 등장하곤 한다. 에일리는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주인공들의 운명적 사랑을 감성을 담아 표현하여 듣는 이의 마음을 뒤흔든다.“…잊지 않겠다/ 너를 지켜보고 설레고/ 우습게 질투도 했던/ 니가 준 모든 순간들을/ 언젠가 만날/ 우리 가장 행복할 그날/ 첫눈처럼 내가 가겠다/ 너에게 내가 가겠다.”이미나 작사, 로코베리 작곡의 이 노래는 아쉽게도 표절 의혹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노래의 제목만 들어도 시인 문정희의 유명한 시 ‘겨울사랑’이 떠오르기 때문이다.“눈송이처럼... -
사이먼&가펑클 ‘엘 콘도르 파사’
“달팽이가 되기보다는 참새가 되겠어/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좋을 거야/ 못이 되기보다는 망치가 될 거야/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좋을 거야/ 멀리멀리 떠나고 싶구나/ 날아가 버린 백조처럼/ 인간은 땅에 얽매인 채 가장 슬픈 소리를 내고 있다네.”스산한 초겨울 하늘을 나는 기러기떼라도 보게 되면 이 노래가 먼저 생각난다. 우리에게 ‘철새는 날아가고’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원곡은 1913년 페루의 작곡가인 다니엘 알로미아스 로블레스가 잉카의 토속음악을 바탕으로 해서 작곡했다. 스페인의 압제에 항거하다 처형당한 농민운동가 콘도르칸키의 운명을 표현한 작품이었다.콘도르는 잉카어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라는 뜻의 새 이름이다. 안데스 산맥 등에서 서식하는 매의 일종으로 몸길이가 무려 1.3m에 달한다. 원래 페루의 전통악기 삼포냐 등으로 연주되던 이 곡에 사이먼&가펑클이 다소 엉뚱한 노랫말을 붙였다. 그러나 페루에서는 “전능... -
존 바에즈 ‘도나도나’
‘도나(Dona)’는 히브리어로 소를 채찍질하며 외치는 ‘이랴’의 뜻이지만, 은유적으로는 ‘주여’라는 탄식으로도 해석된다. 이 노래의 원작이 된 시는 유대계 시인이자 철학자인 아론 제틀린이 썼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최후를 마친 이작 카체넬존(1886~1944)의 글을 참고해서 썼다는 설도 있다.장터에 팔려 가는 송아지와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제비를 대비시키면서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당하는 유대인들의 처지를 한탄했다. ‘누가 송아지가 되라고 했나/ 왜 제비와 같은 날개를 갖지 못했나’라면서 ‘바람은 어떻게 웃을까/ 있는 힘을 다해 웃지’라고 한다. 유대계 작곡가인 숄롬 세쿤다가 이 시에 곡을 붙여 오랫동안 불려 왔지만 정작 유명해진 건 존 바에즈가 부르면서부터였다. 1960년 존 바에즈가 이 노래를 발표했을 때 그는 19세의 당찬 신예였다. 아직도 이 노래를 수록한 앨범은 여러 히트곡이 담긴 명반으로 전해진다. 1965년 팝가수 도너번이 리메이... -
채은옥 ‘빗물’
“조용히 비가 내리네/ 추억을 말해주듯이/ 이렇게 비가 내리면/ 그날이 생각이 나네/ 옷깃을 세워주면서/ 우산을 받쳐준 사람/ 오늘도 잊지 못하고/ 빗속을 혼자서 가네.”채은옥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빗물’(1976년)은 겨울비에 어울리는 노래다. 낙엽 위로 빗물이 떨어지면 어디선가 이 노래가 들려올 것 같다. 약관의 나이에 이 노래를 발표했을 때 채은옥이 출연하는 명동의 라이브클럽 ‘쉘브르’는 팬들로 차고 넘쳤다. 가냘픈 몸매에도 불구하고 비음에 두성을 보탠 매력적인 목소리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에는 재벌2세들이 공연장 밖에 차를 대고 기다리는 해프닝도 있었다. 전남 보성 출신의 채은옥을 발탁한 건 유명 라디오 DJ이자 ‘쉘브르’의 운영에 관여했던 이종환이었다. 목소리가 특이하고 괜찮다면서 레코드사를 운영하는 처남에게 소개해줬다. 채은옥이 이 노래를 작사·작곡한 김중순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작가 출신으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문성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