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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개혁, 반성과 열정들
새해 벽두 언론 인터뷰를 통해 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 의지가 알려졌다. 국회 또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등을 통해 지속적인 논의를 진행해 왔고, 국회의장은 최근 헌법개정·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선거법과 개헌논의를 동시에 진행할 의지를 보여주었다. 바야흐로 우리 정치시스템의 제도개혁에 대한 논의에 본격적인 불씨가 댕겨진 것이다. 이 지면에 지난 1년 동안 지속적으로 우리 정치의 제도적 문제들과 관련된 논의를 꾸준히 진행해 왔지만, 2023년이 시작되는 오늘, 우리 정치는 적어도 여야,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다음과 같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 우리의 현 정치는 건강하지 않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첫 단추는 제도를 바꾸는 일이라는 점, 그리고 그 제도 개혁의 첫 입구는 선거법 개정이라는 것. 적어도 우리 정치가 그 일에 나설 준비가 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이것은 새해 벽두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소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우려들... -
선거제, 단순함의 미덕을 넘어
2022년은 두 번의 큰 선거, 3월의 대통령 선거와 6월의 지방선거를 치렀던 한 해이기도 했다. 이제는 누구를 막론하고 선거에 대한 이야기에 신물이 나겠지만,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논의를 하기에 더없이 좋은 순간이 온 것도 사실이다. 선거가 없는 내년이 아니면 당분간은 우리 선거제도에 대한 공개된 논의를 진행해볼 기회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선 우리 정치를 규정하고 있는 적대적 양당 대립의 공생관계가 상당히 우리의 선거제에 연원한다고 생각하며, 정치 개혁을 위한 여러 노력의 첫 단추는 선거제도 개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우리 선거제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단순다수제, 즉 유권자는 후보 1명을 선택하여 투표하고, 1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선거규칙이다. 우리의 대통령이 그렇게 선출되게 되어 있고,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광역 및 기초 단체장들 또한 그렇게 선출되도록 되어 있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취하고 있는 다양한 선거제도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직관적인 제도이... -
언론의 침묵이 깨어진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한 성취를 내심 부러워하던 일본 정치가 한국 정치를 우습게 생각하기 시작한 정확한 시점이 있다. 바로 한국 검찰이 2014년 일본 산케이 신문의 가토 당시 한국지국장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 때다. 세월호 사건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가토의 칼럼,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을까?>가 문제였다. 애당초 일본 극우민족주의를 대변하면서 독도 문제 등에 있어서 가장 반한(反韓)적인 논조를 취해온 산케이 신문이, 현직 대통령의 “애정행각” 운운한 내용은 즉각 독도사랑 등의 시민단체에 의해 고발되었고, 검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기소, 이듬해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하였다.해당 재판에 대한 일본 및 해외 언론들의 뜨거운 관심에 비해, 국내 언론이 특별한 입장을 표명한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산케이가 산케이했고, 검찰이 검찰했을 따름”인데 아마 입장을 ... -
국회의 ‘셀프개혁’이 가능하려면
우리 정치가 아무리 어지럽고 정쟁에 휩싸여 있지만, 정치의 시계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 지난 11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공식 출범하면서 2024년에 열릴 총선을 향한 험준한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선거구 획정은 고사하고 어떠한 법안의 통과도 장담할 수 없는 험악한 여야관계를 생각하면, 다소 뜬금없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우리 공직선거법은 중앙선관위에 해당 위원회의 설치를 선거일 18개월 이전에 하도록 규정하였으니, 우리 정치와 선거에서 그나마 법이 지켜진 사례라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 더 중요하게, 차기 총선을 준비하는 어느 정치 신인은 자신이 출마할 선거구가 어느 동네와 마을을 포함하고 있는지 하루라도 빨리 알고 싶을 것이다. 실제 우리 선거법은 선거구 획정을 선거 13개월 전(내년 3월)까지 마무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일정이 그렇게 수월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선거구 획정은 공직선거법의 한 부분이며, 여타 선거제도... -
추석 차례상, 그리고 서울대학교
이번 추석을 맞이하는 마음이 약간은 달랐다. 힘겨운 귀성과 오랜만에 친지를 만나는 일은 변함없었겠으나, 아마도 차례상을 준비하는 마음들이 약간은 가벼워진 추석이 아닌가 생각한다. 성균관이 추석 즈음에 발표한 ‘차례상 표준안’은 송편, 나물 등의 간소한 6가지 음식만이 제시돼 있었고, 놀랍게도 명절 때마다 후손들, 사실은 주로 어머니들과 며느리들이, 그토록 힘들게 씨름해왔던 전(煎)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성균관의 설명은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음식의 가짓수에 있지 않으니 많이 차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당연하지만 너무나 새롭게 들리는 말이었다. 이미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도 많고, 명절을 온갖 허례(虛禮)로 점철된 성가신 연례 행사로 받아들이는 이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평생 명절 때면 아픈 허리를 두드리며 기름 두른 판에 곱게 갠 반죽을 조심스레 펴놓던 어머니들이, 그리고 수많은 며느리와 아들들이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들이... -
폭우, 대통령, 그리고 관료제적 합리성
아직도 그 기억이 선명한 한반도를 강습한 폭우와 이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우리에게 수많은 고민거리들을 던져주었다. 특히 폭우에 대처한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공적 담론은 대체로 대통령 개인의 스타일과 언행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나는 해당 사안이 단순히 순간적 판단 오류나 ‘홍보’의 실패, 혹은 스타일과 언행의 문제라고 보지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비판은 매우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대통령은 매우 일관된 ‘세계관’ 내에서 움직였고, 비슷한 상황이 다시 오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우리 사회가 어떤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돌아보는 일일 따름이다.대통령과 정부가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입장을 굳이 이름 붙이자면 ‘관료제적 합리성’의 세계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가장 잘 요약해 준 말은 대통령이 폭우 당일 “경호 의전을 받으면서 나가는 게 적절치 않다고 ... -
고등학생 K군의 첫 선거
지난 5월 이름 모를 고등학생 K군으로부터 e메일을 받고 그와 화상통화까지 하게 되었다. 오늘 지면에는 K군의 양해를 얻어 우리 사이에 오간 이야기를 잠깐 소개할까 한다. 고등학교 3학년인 K군은 올해 만 18세, 이번 양대 선거에서 처음으로 투표를 할 기회를 얻은 ‘신입 유권자’다. 정치학 전공 지망생으로서 첫 투표를 하게 될 부푼 기대에 열심히 대선 후보자들에 대해 찾아보고 공보물도 자세히 읽어본 후, 나름의 지지후보를 정했다고 한다. 지지하는 후보를 선출하는 정당의 선거인단에도 등록을 해서 참여했다고 하니 아마 본격적인 ‘정치 덕후’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K군이 선거 관련 이야기를 주로 나누는 곳은 유튜브 댓글난이다. 부모님과 정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공부나 하라”는 핀잔을 듣기 쉽상일 터이니 섣불리 시도할 생각도 하지 못했고,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선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일선 교육현장의 선생... -
509인 무투표 당선자가 말해주는 것
지방선거가 내일로 다가왔다. 이미 약 20%의 유권자들이 지난주 사전투표에 참여하였으며, 내일 저녁이면 선거결과의 윤곽이 밝혀질 것이다. 이번 지방 선거가 한국 정치에 제기하는 문제점들은 이 지면을 통해 지난 두 달에 걸쳐 밝혔지만, 오늘은 이번 선거의 한 주요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무투표 당선자들이 말해주는 바에 대해 토론하고자 한다. 지방선거는 시·도지사에서부터 시·군·구(청)장, 시·도 의회 및 구·시·군의회의 지역구 및 비례대표의원들에 더하여 교육감까지 총 7개의 선출직, 전국적으로는 4132명의 선출직을 뽑게 되는 대규모 ‘동시’ 선거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하면 등록 후보자만 7500명이 넘는 선거인 것이다. 출마자들의 면면을 기억하기조차 버거운 선거이며, 출마자들을 소개하는 두꺼운 선거공보물이 유권자에게 부담스러운 선거인 것이다.흥미로운 것은 후보자 등록이 마감된 이후, 이 중 509명의 후보자가 무투표로 당선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4000여명을 ... -
지방선거, 대통령 탄핵의 유탄을 맞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한국 유권자들은 전무후무한 지방선거를 치르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최초로 경험해야 하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방선거가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중앙정치에 휘말리고, 다시 중앙정치는 지방선거에 휩쓸려 진행되는 초유의 현상을 말한다. 한국정치의 모든 문제점들이 중앙정치와 지방정치의 왜곡되고 불안한 공존 위에 퇴적되고 있다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응축되고 폭발되는 것을 우리가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지난 3월의 대통령 선거와 5월의 취임, 그리고 뒤이어 예정된 6월1일 지방선거의 복잡한 일정을 우리 정치와 유권자들이 한 번도 치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일정이 이렇게 복잡해진 것은 물론 2017년 대통령 탄핵과 뒤이은 궐위선거가 우리의 선거 캘린더에 던진 유탄 때문이다. ‘87년 체제’의 핵심이었던 5년 단임제 대통령 선거가 늘 12월에 치러지다가,... -
동네정당을 기다리며
그렇게 대통령 선거는 끝났다. 그러나 질펀한 잔치가 지나가고 난 뒤의 숙취처럼 우리는 여전히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새 대통령이 선서를 마친 이후에도 여전히 그 자장(磁場)에서 한발도 걸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조차 하기 전 6월1일로 예정된 지방선거는 불현듯 우리 앞을 스쳐 지나갈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지방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누누이 운위되었던 것이지만, 지방선거에서조차 지방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 대한민국 정치구조의 근본문제를 다시금 돌이켜 보게 한다. 지난 대선에서 청년문제가 중심 의제인 것처럼 다루어졌지만, 그 어느 후보도 정말 심각한 문제는 지방의 청년 문제라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인구절벽 문제가 우리의 눈앞에 다가온 심각한 문제라는 점은 여야 없이 동의하는 바였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방의 저출생 문제, 아니 지방 소멸이라는 사실을 어느 후보도 말하지 않았다. 젠더 문제가 선거의 희비를 가른 결정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