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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주류 영업 ‘이중 고통’
무기, 전향, 소모전, 전쟁터…. 주류회사 영업사원들 입에서 쏟아져 나온 단어들은 살벌한 전쟁을 연상케 했다.ㄱ주류 소주 영업사원이었던 김준하씨(31·가명)는 주류 영업에 사용하는 포스터, 메뉴판, 물병 등을 ‘무기’라고 표현했다. 김씨의 자동차 트렁크는 언제나 무기로 가득했다. 그는 자사 주류 홍보 물품을 싣고 새로 문을 연 업소가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달려갔다. 업소 벽에 붙어 있던 다른 회사 포스터를 떼어버리고 자신이 파는 주류 홍보 포스터를 몰래 붙이는 건 예삿일이었다.김씨는 “사람들은 연예인 누가 광고에 나오는지가 판매량을 가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며 “현장에서 뛰는 영업사원들이 판매량을 책임지는 핵심이고, 그래서 영업사원들이 뛰는 현장이 바로 전쟁터”라고 말했다.거래하는 업소도 김씨에게 ‘갑’이었다. 김씨는 “사장님들도 영업사원을 참 잘 이용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손님들 중에는 특정 브랜드의 주류만 선호하는 사람... -
④ 제약업계 ‘감성영업’
“이건 뭐 노예나 다름없지요.” 최근 한 국내 제약업체의 불법 리베이트를 적발한 경찰 수사팀 관계자는 “의사들의 갑질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며 이같이 말했다.경찰의 혀를 내두르게 한 건 제약업계의 관행인 이른바 ‘감성영업’이다. 쌍벌제 도입 등 리베이트 규제가 강화되면서 제약사 영업사원은 자사 제품 처방률을 높이기 위해 의사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데 집중한다.이 때문에 제약사 영업직원의 일상은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가제트’ 수준이다. 아침마다 병원에 빵을 배달해주는 ‘빵 셔틀’은 기본이다. 매진된 프로야구 암표 구하기는 물론 의사 출퇴근과 그 자녀들의 등·하교를 책임지는 ‘운전기사’ 역할도 한다. 의사 차량의 세차와 정비도 도맡는다. 병원장 자녀와 놀아주기, 병원 수도꼭지 고쳐주기, 휴대전화 대신 개통해주기, 의사 여자친구에게 선물 전달하기…. 영업맨이 아니라 머슴 수준이다.특히 여성 영업사원의 처지는 더욱 열악하다. 여성 사원들은 감... -
③ ‘을 중의 을’ 식품영업
대형마트의 셔터가 내려간 캄캄한 밤, ㄱ제과 영업사원인 김태원씨(33·가명)는 더욱 분주해졌다.김씨는 ‘○○데이’처럼 기념일이나 신상품이 나오면 마트 바닥에 홀로 주저앉아 자정을 넘겨 일하곤 했다. 그는 ㄱ제과 소속이지만 담당하는 마트의 판매대를 꾸미고 다듬어야 했다. 이는 업계의 관행이다. 식품업체 영업사원은 대형마트에 상품을 납품해야 하는 ‘을’이기 때문이다. 판매대 꾸미기와 같은 잡일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였다. 전직 제과회사 영업사원인 김씨는 “제과업체 마케팅 부서나 마트 쪽 직원이 아닌 제과업체 영업사원이 보통 행사상품 매대를 꾸민다”며 “미적 감각이 떨어져 판매대를 꾸미는 게 매번 고됐다”며 씁쓸하게 웃었다.먹거리를 판매하는 식품업체 영업사원의 삶 또한 여느 영업사원과 다르지 않다. 사내에서는 상사의 실적 압박을 받고, 밖에서는 물건을 구입해주는 거래처인 크고 작은 마트 주인과 직원들에게 허리를 90도로 굽혀야 하는 신세다.김씨는 2013년 ... -
② 세븐일레븐 FC의 ‘눈물’
‘상기 FC는 3~4월 매출 실적이 타 FC에 비해 매우 저조하여 이를 엄중히 경고합니다.’롯데그룹 계열사인 세븐일레븐 FC(Field Consultant)로 일하는 일부 영업사원들은 지난 5월 초 사측에서 경고장(사진)을 받았다. 우편 배달을 통해 집에서 경고장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경고장에는 실적이 낮으니 분발하라는 메시지가 담겼다. 영업총괄부문장(상무)의 직인도 있었다. FC 출신 퇴사자인 ㄱ씨는 “경고장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동료들이 다들 어리둥절해했다”고 전했다.세븐일레븐 홈페이지를 보면 회사는 FC를 ‘점포의 매출을 올려 이익을 증대하고, 회사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는 역할을 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ㄱ씨는 “간단히 말해 FC는 각 편의점에 물건을 발주하는 영업사원”이라고 했다. 월 200만원대 중반을 받는 정규직이었던 ㄱ씨에게 세븐일레븐 FC 직책은 고단했다. 매일같이 회사로부터 전월·전주 대비 실적을 비교당하며 압박을 받았다. 매일 오전 8시 ... -
① 한 식품회사 직원의 죽음
지난 8일 풀무원 한 계열사 직원들이 노래방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20대 직영점주 한모씨(29)를 폭행하고 숨지게 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지난 4일 술자리에서 한씨가 “왜 우리 지점을 홀대하느냐”고 항변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한씨의 입사 동기인 영업사원 김모씨(29)가 “선배에게 말을 함부로 한다”며 말다툼을 하다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동석한 영업관리팀장 변모씨(42)는 “너네가 내 앞에서 싸우면 되느냐”며 폭행에 가담했다. 한씨는 얼굴 등을 주먹과 발로 맞아 뇌출혈 증세를 보였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사 상태에 빠졌다. 한씨는 지난 8일 오후 끝내 사망했다.사건이 알려진 후 본사와 영업사원의 ‘주종관계’를 비판하는 여론이 일부 형성됐다. 최근 경기침체로 인해 실적 경쟁에 더욱더 내몰리고 있는 영업사원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사건 관련자들이 모두 영업사원이라는 점에서 극한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영업맨들의 비극이라는 말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