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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다른 판결’에 ‘정치적’ 낙인찍은 대법, 뒤로는 정치권과 거래
미국 연방항소법원 판사이자 20세기 법학 논문에서 최다 인용된 법학자 리처드 포스너는 “재판은 정치적”이라고 했다. 그는 “대법관을 소수만 이해하는 학문적 자료들을 읽고 숙고해 판결을 내리는 사람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정보와 통찰을 기초로 경험이나 기질, 그 밖의 개인적 요인에 바탕을 둔 선입견이라는 필터를 거쳐 최종적으로 결심을 굳힌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법관이 사법자제의 입장을 취한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정치인이다. 그러나 소심한 정치인”이라고 말했다.정치적 타협의 산물인 헌법과 법률에 구속돼 판단하는 법관에게 재판은 소극적인 정치과정이다. 한국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103조)고 규정한다. 헌법, 법률과 함께 재판 기준으로 등장한 양심은 무엇일까. 세계에 유례없는 ‘법관의 양심’이라는 구절은 박정희 정부가 일본 헌법에서 가져왔다. 군사정부와 보수정부 시절 대법원은 이 조항을 입맛대로... -
(5)보수·진보 가를 수 없는 판사 모임, 문제는 ‘끼리끼리 문화’
판사들은 좁은 인간관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발이 넓다거나 아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2000년대 초반 대법관 후보로 꼽히다 임명되지 못하고 변호사로 나선 법원장 이야기가 지금도 회자된다.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열린 개업식에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 등장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저런 성품 때문에 대법관이 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지인이 많은 만큼 법관으로서 성실하지 못했으리라는 얘기다. 판사들은 “밖에서는 판사들 시야가 좁다느니 어쩌니 해도 시간을 들여 기록을 읽은 판사가 좋은 판결을 쓴다. 또 판사가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만 시야가 넓어지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한다.법원 밖까지 알려진 연구회인권법·우리법·민판연 3곳일부, 보수·진보 구분하지만겹치기 가입에 상호 ‘보완적’이런 판사들에게도 ‘모임’이 있다. 판례 연구와 학술 활동을 위한 모임이다. 법원 밖까지 이름이 알려진 곳은 국제인권법연구회... -
사건 경감서 자리 늘리기로…‘상고법원 논리’의 허상
양승태 전 대법원장, 상고법원 도입 위해 ‘재판거래’까지 한 정황고등부장들 장악 의혹…법조계에선 ‘부장판사 제도’ 폐지 주장도학계·판사들 “1심에서 좋은 재판해 항소·상고를 줄이는 게 해답”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판거래까지 벌이며 상고법원을 추진한 공식적인 이유는 대법원에 사건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대법관 12명이 연간 4만건 가까이 처리하는 상황은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었다. 대법원의 사건 부담을 줄이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었다. 분모인 대법관 수를 늘리거나 분자인 사건 수를 줄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양승태 대법원은 두 가지 방법을 모두 거부했다.우선 대법관 수를 늘리면 중요 사건을 처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합의하기가 어려워진다고 했다. 일종의 언어유희였다. 지금은 대법관 12명에 대법원장을 포함해도 13명에 불과해 이들이 모두 참여해 전원합의체를 구성한다. 그래서 이름도 전원합의체로 붙인 것이다... -
야근에 조근, 불 꺼지지 않는 ‘서초의 등대’
대한민국 판사들은 과로로 숨진다. 몇 해 전에도 서울과 지방에서 젊은 판사들이 잇따라 숨졌다. 지방의 관사에서 쓸쓸히 숨졌다가 며칠 만에 발견되기도 한다. 재판에 시달리다 병을 얻어 휴직하는 경우는 더 많다. 그런데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누구 하나 사건을 줄여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묵묵히 버틸 뿐이다. 밀리고 싶지 않아서다.“재판하는 일이 겉보기에는 험하지 않고 사무실에서만 일하니 건강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전국 판사 가운데 40대 이하가 절반을 넘는다. 그런데도 여기저기에서 사고가 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경력에 장애가 될까봐 말하지 않고 참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 인사담당이던 어느 판사의 설명이다.법관의 과로는 부실한 재판으로, 부실한 재판은 높은 상소율로 이어진다. 시민들은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재판을 받지만 결과는 늘 불만스럽다. 1심법원에서는 5분 재판, 10분 재판이 일상이고 2심법원은 1심법원에서 ... -
여성이 나서는 것 꺼리는 ‘남초’ 직장, 법원도 다를 바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법관은 1952년 제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황윤석이다. 1954년 판사로 임관했지만 1961년 32세 젊은 나이에 숨졌다. 앞서 1951년 제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이태영이 합격했다. 하지만 정치인 정일형의 부인이라는 이유로 판사 임용을 포기하고 변호사가 됐다. 황윤석 임관 이후로는 19년 만인 1973년 강기원, 황산성, 이영애 판사가 임관해 여성 법관의 맥을 이었다. 그 뒤로 1977년 전효숙(이후 헌법재판관), 1978년 전수안(이후 대법관), 1980년 이선희, 1981년 김영란(이후 대법관)이 임관했다.여성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소수여서 2000년대 중반까지도 ‘여성 첫’이란 수식어를 달았다. 보직을 중심으로 보면 1981년 여성 첫 재판연구관 이영애, 2002년 여성 첫 법원도서관 심의관 김소영(이후 대법관), 2005년 여성 첫 지원장 김소영, 2005년 여성 첫 법원행정처 심의관 윤승은 판사로 이어졌다. ... -
나는 여성 판사가 아니라 그냥 판사입니다
2018년 현재 전국의 법관 가운데 29.8%(2935명 중 875명)가 여성이다. 젊은 법관일수록 여성의 비율이 높아 경력 15년 안팎 이하 평판사들 중 39.8%(1748명 중 695명)가 여성이다. 여성 판사들은 “나는 여성 판사가 아니라 그냥 판사”라고 말한다. 남성으로만 이뤄진 과거 법원과 절반 가까이가 여성인 지금 법원이 같을 수는 없다. 여성 판사의 등장은 법원을 분명하게 바꾸었다. 법원이 원칙에 더욱 충실하게 됐다는 평가도 있고, 판결문에 현실감각이 줄었다는 비판도 있다.한국 사회 최고의 엘리트라는 법관, 이 가운데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헌법에 따라 법관들은 사법부의 구성원이 아닌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하지만 현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기록을 넘기는 초장시간 노동자다. 이런 시간 싸움에서 여성 법관들은 출산과 육아를 기점으로 뒤처진다고 입을 모은다. 주말까지 근무를 하도록 요구받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지원을 포기... -
시민 법감정 위에 판사 법논리…판결 비판은 ‘원천 봉쇄’
◆독립과 여론 사이…법관의 줄타기양승태 사법농단으로 드러난 ‘권력’선출되지 않은 사법, 통제 거부 도마재판은 여론을 반영한다. 지난달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병역법에 헌법불합치를 결정했다. 시대와 여론의 영향을 받은 결과다.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계속해서 유죄를 선고하는 것이 옳은지 8월 공개변론을 연다.법관의 절대 영역이라는 형사범죄의 양형도 여론을 반영해 바뀌어 왔다. 2000년대 들어 성폭력 범죄 평균 양형이 살인죄 양형에 육박하면서 생명이 최고의 법익이라는 형법교과서 이론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미필적 고의’라는 법학자들이 발명한 알쏭달쏭한 개념은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번번이 부인된다. 대통령, 국회의원과 달리 단 한 사람의 지지자도 없이 판사들은 법복을 두른다. 우리 헌법은 사법이 다수 의견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며 선출되지 않게 했다. 여론의 근시안적인 압력을 이겨내고 불변의 올바름을 추구하라는 당부다.... -
“판사는 여론에 종속되지도 여론을 모르지도 않는 사람들”
“통진당 해산, 여론 추종” “이재용 집행유예, 국민 법감정 무시” 비판 ‘나랏일’ 신념 강한 고참 판사들, 복잡한 사건에 사회적 관심도 반영 젊은 법관 “국가주의 입장, 정치 재판 우려…법의 논리에만 충실해야”법관은 여론을 어느 정도로 이겨내야 하고 반대로 얼마나 고려해야 할까.2018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죄 항소심 판결과 2014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법관의 아슬아슬하고 난처한 처지를 보여준다. 중도 보수로 평가받는 한 전직 헌법재판관은 통진당 해산 결정은 여론을 추종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통진당 사람들 면면을 보면 나 같은 사람이 좋아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런 것과 정당 해산은 얘기가 다르다. 외국에도 잘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8 대 1로 했다. 선거로 뽑힌 정당을 그렇게 간단히 없애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그는 여론 추종은 사법기관에 독이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헌재가 욕을 먹는 결정은 대부분 여... -
대한민국 판사, 당신은 누구인가
칭찬에 목마른 모범생…있는 듯 없는 듯 전관예우한국의 시민들은 판사와 법원을 믿지 않는다. 세계 12위 경제력을 가진 국가에서 일어나기 힘든 현상이다. 지난해 시작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로 시민의 생명과 재산이 판사들의 출세를 위해 거래된 의혹이 드러났다. 대법원장의 비서기구인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이 동료 판사들의 사생활과 재산을 뒷조사했다. 최고법원인 대법원 판결은 정권의 입맛에 맞게 자발적으로 수정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앞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이 줄줄이 검찰 수사를 받을 예정이다. 자신이 판사로 있던 형사법정에 출석해 심판을 받고 처벌되겠지만 그걸로 사법부의 신뢰가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법원행정처 차장 출신의 이공현 전 헌법재판관은 “지금 누가 처벌을 받고 제도가 어떻게 바뀌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시민들이 믿고 의지할 법원으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