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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혐오의 시대, 보이지 않는 인권위를 찾습니다
코로나19는 전례 없는 사회적 차별과 혐오를 불러냈다. 감염병이 확산할수록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의 농도는 짙어졌다. 새로운 유형의 인권침해도 생겨났다. 비대면 사회로의 전환은 정보 인권침해를 야기했고 노년층과 같은 디지털 취약계층을 고립시켰다. 플랫폼 노동 활성화로 노동 인권 사각지대가 커지고 있다. 차별과 혐오는 사회 구성원들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혐오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회 구성원의 존엄성을 지켜야 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책무는 전보다 무거워졌다. 군인·장애인·이주노동자·차별금지법과 같은 미완의 과제와 함께 새로운 인권 문제도 풀어내야 한다.■20년째 제자리 軍 지난 20년간 국가인권위에 접수된 진정 사건은 15만8790건(10월 기준)이다. 이 중 군 인권 관련 진정은 2952건에 불과하다. 한국사회에서 ‘군대’와 ‘인권’을 연결해 생각하기 시작한 건 2005년 육군훈련소 ‘인분 사건’ 이후다. 중대장이 훈련병에게 인분을 먹도록 강요한 이 사건은 취약... -
②“그래도 인권위”…인권이 기댈 제도적 언덕
2001년 11월25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했다. 진정 접수 첫날인 26일부터 인권위에는 진정을 제기하려는 시민들이 밀려들었다. ‘제1호’ 사건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보건소장 임명에서 배제된 이희원씨에 대한 차별 진정이었다. 제자인 이씨를 대신해 진정서를 제출한 김용익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는 당일 오전 6시30분에 진정을 넣었다. 인권위가 설립 첫해 36일 만에 803건의 진정이 접수됐다. 인권을 향한 시민의 열망은 뜨거웠지만 인권위 내부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인권위원 11명과 인권위설립준비기획단 직원 27명으로 꾸려진 소규모 인력으로 업무가 시작됐다. 당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작은 정부’를 내걸며 인권위의 인력지원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무부 산하 특수법인 형태로 ‘국민인권위원회’를 설치하려고 했다가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인권위가 문을 열었지만 인권 침해를 조사할 권한도, 인력도 턱없이 부족... -
“인권침해 아닌가요” 세상 바꾼 이웃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진정사건은 총 8948건이다. 그 중에는 ‘어떻게 이런 작은 이슈를 국가기관에서 다루느냐’며 세상의 비웃음을 산 사건이 적지 않다. 그러나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진정사건들이 인권위를 거쳐 세상에 나오는 순간 새로운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유죄 아니면 무죄라는 식의 흑백논리를 넘어 세상에 균열을 낸 인권위 권고는 대부분 우리 주변의 이웃이 낸 진정에서 나왔다. 지난 20년 간 평범한 시민이 끊임없이 인권위 문을 두드린 결과 ‘인권의 영역’이 점점 넓어졌다.차별적인 법과 제도를 시정하는 것만큼 중요한 인권위의 역할은 시민이 일상에서 겪는 인권 침해를 구제하는 일이다. 비정규직 차별 해소, 국가보안법 개정 내지 철폐, 차별금지법 제정 등 인권위 출범 초기부터 화두가 된 굵직한 현안들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그 사이 세상을 조금씩 바꾼 것은 시민이 낸 소소한 진정이었다. ‘살색’ 크레파스라는 인종차별적 명칭을 퇴출시킨 것도, 초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