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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기초한 ‘창조적 표현’ 물씬
인터넷 사진동호회 게시판을 달구는 주제 중 하나는 필름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의 우열에 관한 것이다. 디지털의 편리인가, 아날로그 필름의 감성(感性)인가. 호불호는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지난 10여년 사이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이 늘면서 동네 사진관들은 경영난을 겪게 되었다. 소풍이나 여행을 다녀온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사진관에 들러 잘각(‘잘’ 나온 컷을 ‘각’ 1장씩의 줄임말)이라고 쓰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 같은데 언제부턴가 현상-인화의 모든 것을 디지털카메라가 대신하면서는 번거롭게 사진관을 찾는 대신 메신저로 사진을 주고받고 그날의 기록을 모니터로 확인하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사정이 어렵기는 사진 재료를 공급하는 필름 메이커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 강남 빌딩가의 목 좋은 노른자위 광고간판들을 전세 내던 필름 메이커들은 이미 그 자리를 통신사 영상통화광고에 내준 지 오래다. 그나마 광고비를 줄이더라도 영업을 계속할 수 있는 회사들은 형편이 나은 경... -
‘한국의 행위미술 1967~2007’ 展
-관객 눈앞서 이루고 흩어졌던 ‘그것’-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시(詩)’를 흔쾌히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시는 예술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두 가지 덕목을 결여하고 있었다. 우선 시는 대리석을 쪼아 조각상을 만드는 것과 같은 물질적 의미에서의 제작이 아니었고, 우연에 가까운 영감에 의해 쓰여질 뿐 어떤 특정한 규칙의 지배를 받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르스와 테크네, 그리스인들은 미주알고주알 따지기를 좋아하던 사람들이었다. 물론 시에 대한 이런 태도는 후대로 내려가면서 확연하게 개선되었다.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영국의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는 “남자나 여자가 시인, 화가, 음악가, 건축가 가운데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리스도교인이 아니다. 그대는 아버지와 어머니, 집과 나라를 떠나야 한다. 그들이 예술의 길을 가로막는다면”이라고 말하며 시를 그림, 음악, 건축과 함께 4대 예술의 하나로 한껏 치켜세웠다... -
한-중 국립미술관 특별교류전
얼마 전 집 근처 초등학교 앞을 지나다 새로 생긴 학원간판을 보고 놀란 일이 있었다. 새로 문을 연 학원은 초등학생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중국어학원이었다. 예전 같으면 주산이나 피아노, 영어학원이 있을 목 좋은 자리에 들어선 중국어학원을 보며 새삼 달라진 중국의 위상을 실감하게 되었다. 아, 세상이 바뀌긴 바뀌었구나. 하기야 일부 초등학생 학부모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도래할 ‘팍스 차이나’의 시대를 예견하고 일찌감치 자녀들을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으로 조기유학을 보내고 있다니, 어쩌면 앞으로 학교 앞 ‘한어(漢語)’ 간판의 중국어학원쯤이야 흔하디 흔한 일상의 풍경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올해는 한·중 수교 15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1992년 수교 이후 우리나라와 중국은 서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본토와의 교류가 확대되며 대만어를 제치고 베이징어나 광둥어를 말하는 중국인들이 늘기 시작했고, 언제부턴가 당연한 것처럼 시내 도로표지판과 지하철 노선도에도 중국어 표기... -
소마미술관 ‘누보 팝’ 展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안영이 초나라를 방문하자 초 영왕(靈王)은 미리 준비한 죄수를 끌어오게 한 뒤 짐짓 시비를 걸었다.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 “저는 제나라 사람인데 물건을 훔치다 붙잡혀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영왕이 다시 안영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제나라 사람들은 전부 다 도둑들인가?” 안영이 대답했다. “회남(淮南)의 귤을 회북(淮北)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어버립니다(南橘北枳). 본래 제나라 사람들은 도둑질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데 초나라에 와 남의 물건을 훔쳤으니 이것은 초나라의 나쁜 풍토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영왕은 머쓱해져 그만 할 말을 잃었다. 회남의 귤이 회수를 건너 회북으로 가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생겨난 고사(古事)다. 그렇다면 미국의 팝아트가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가면 무엇이 될까? 팝아트의 ‘팝’은 영어의 ‘포퓰러(popular)’가 어원이다. 말 그대로 통속적이며 대중적이었던 장르의 특성을 드러내는 솔직한 작명이다. 팝아트... -
아련하다, 곡예사의 눈빛
▲ 사진전 ‘위대한 서커스’ 서커스의 기원은 언제일까. 이탈리아의 폼페이 유적에서는 사람과 동물이 등장하는 곡예단의 모습을 그린 모자이크화가 발견되고 중국의 한(漢)대 고분에서는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재주를 부리며 악기를 연주하는 서역인들의 모습을 표현한 토우가 발굴된다. 오늘날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광고, 영화에까지 등장하는 캐나다 출신의 서커스그룹 ‘퀴담’이나 북한의 ‘모란봉교예단’ 같은 그럴듯한 정식 단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지난 세월 서커스는 광대패, 사당패, 곡예단, 서커스단, 유랑극단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며 세상 한쪽에서 크건 작건 놀이판을 벌여왔다. 역사(力士)가 칼을 삼키고 불을 토하며 난쟁이가 재주를 넘는 가무백희(歌舞百戱)의 무대, 어쩌면 그 기원은 인류 역사의 첫 장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까. 호모 루덴스(유희의 인간)-굳이 철학자의 어려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은 원래 구경거리와 재미난 놀이에 열광하는 존재였으니까. 우리가 ... -
국립중앙박물관 ‘사경변상도의 세계’
-고려의 불심, 장엄하고 화려하다- 얼마 전 몇몇 대학에서 국사를 수능시험의 선택과목이 아닌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나는 사·탐, 과·탐을 모르는 예전 학력고사 세대다. 그 시절 국사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태정태세…’ 조선 역대 임금들의 시호를 외우는 것뿐만 아니라, ‘태혜정광…’ 고려 임금들의 시호까지 외는 숙제를 내주셨다. 당장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또박또박 분필로 판서하시며 ‘다음 시험에 내겠다’ 엄포를 놓는 데 도리가 없었다. 그런 식으로 고문(古文) 시간에는 두시언해를 외웠고, 영어시간에는 회화 예문을 외웠다. 독립선언문, 주기율표, 그 시절에는 무슨 외울 것이 그렇게 많았던지 모든 과목이 암기 과목 같았다. 태혜정광 경성목…. 그렇게 모두 34명의 임금이 거쳐 간 고려는 태조 왕건에서 마지막 공양왕에 이르기까지 국교로 불교를 숭상한 국가였다. 태조 왕건은 훈요 10조를 남기며 건국이념으로 숭불을 공식화했고, 그 원칙은 고려 사... -
‘플래쉬 큐브 국제현대사진전’
-이 시대의 사진가 무엇을 찍나- 19세기 사진의 발명과 대중화에는 초상화에 대한 대체 수요가 큰 역할을 했다.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세력을 상실한 기존의 지배계급을 대체하는 세력으로 새롭게 등장한 도시의 부르주아들은 과거 지배층이 누리던 취미를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바뀐 시대 바뀐 세상, 이제 세상의 가장 큰 목소리는 귀족과 성직자들이 아닌 크건 작건 각자의 공장과 점포를 가지게 된 시민과 상공인들의 것이었지만 그들은 내심 지난 시절 상류사회가 누리던 호사(豪奢)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 큰 호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초상화 그리기’였다. 과거 왕족과 고위 성직자 등 몇몇 특수 계층에 의해 독점됐던 초상화 제작은 신분제 사회가 붕괴되는 것으로 얼마간의 비용과 시간을 들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취미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자본이 계급에 앞서는 세상이 되었더라도 자신의 얼굴을 그리기 위해 화가의 아틀리에를 방문하고 캔버스 앞에서 며칠씩 근엄한 포즈를 잡... -
천연당 사진관 100주년 기념전
-임금의 사진사, 大서화가, 한국 첫 사진관- 사진이 우리나라에 최초로 전래된 것은 언제였을까.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 의해 다게르의 은판 사진이 정식 발명으로 인정된 것은 1839년이었다. 다게르의 신기한 발명은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일본에는 네덜란드 선원들에 의해 ‘난학(蘭學)’의 한 가지로 신기술이 소개되었고, 중국에는 예수회 선교사들과 아편전쟁에서 종군했던 사진사들에 의해 그 존재가 알려졌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다산 정약용 같은 실학자는 이미 ‘칠실파려안’이라는 이름으로 사진의 구조와 원리를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지만(여유당전서) 구한말 쇄국정책을 펼치며 모든 서양문물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당시 시대 분위기에서 사진이 누릴 수 있었던 입지는 몹시 제한적이었다. 조선이 바깥세상과 교류하는 유일한 통로였던 청나라를 오가던 사신과 역관들에 의해 간헐적으로 사진의 실재가 전해지던 것을 제외한다면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사진 도입은 개항 이... -
탄생55주년 기념 ‘스누피 디자인展’
집 근처에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는 덕에 동네 문방구를 들르면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만화영화가 어떤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며 예전의 친숙한 만화 주인공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익숙한 학교 앞 문방구 풍경 속에서 한때 유행하던 만화 캐릭터들이 그려진 공책이나 연습장을 힐긋거리며 “아, 그때는 요술공주 밍키가 진짜 유행이었는데….” 잠시 어린 시절 향수에 젖어들곤 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 요술공주 밍키나 꼬마자동차 붕붕 같은 정겨운 캐릭터를 내세우며 행복, 사랑, 우정(!)의 메시지를 전하는 팬시 상품의 기원은 1910년 미국에서 창업한 카드업체 홀마크의 생일축하 카드였다. 홀마크는 곰인형과 귀여운 강아지, 눈사람 등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카드로 큰 인기를 얻었고 이후 월트디즈니가 자사 만화영화 ‘증기선 윌리’(1928)의 주인공 미키 마우스를 장난감 제조업체 펫 파워와 3... -
플라스틱과 ‘찰스&레이 임스’ 展
어릴 적 재미나게 보던 TV 만화 가운데 ‘미래소년 코난(1978·NHK)’이 있었다. 만화 속 가상의 미래, 초자력병기 전쟁에서 살아남은 인류는 과학문명의 잔해 인더스트리아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 인더스트리아 생존자들의 주식은 플라스틱이다. 바라쿠다호의 캡틴 다이스가 전 세계를 돌며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거해오면 인더스트리아는 그것을 빵으로 가공해 생존자들에게 배급한다. 20세기 인류가 남긴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고 살아가는 미래.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린 디스토피아는 그렇게 공장의 플라스틱이 밀밭의 밀을 대신하는 삭막한 풍경이었다. 플라스틱은 20세기 현대문명의 상징이었고, 만화의 풍자는 날카로웠다. 2차대전을 전후로 군수품에서 민수용으로 그 사용 폭이 넓어지기 시작한 플라스틱은 20세기 기술문명 진보의 상징인 동시에 디자이너들에게는 실험적이고 다양한 디자인을 시도해볼 수 있는 새로운 마티에르였다. 플라스틱의 가공 방법이 목재나 석재 등 과거의 재료와는 전혀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