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류복서 변신 오달수 “생긴대로 연기 해야죠”
오달수(41)가 복싱팬츠만 입은 채 허허롭게 웃고 있다. 앙상한 새가슴, 어느덧 중년의 나이를 내비치는 뱃살 주름이 왠지 코믹하면서도 안쓰럽다. “아이고, 민망합니다. 그만 보이소.” 연극 포스터를 한쪽으로 치우며 그가 툭 던지는 한마디. “연기는 제 꼬라지대로 해야 합니다. 제가 햄릿을 할 순 없지 않습니까?” 가슴 찡하게 웃기는 배우 오달수가 링 위에 오른다. 연극판에서 ‘의형제’로 인연을 맺은 이해제 연출의 . 배우이자 극작가인 박성철이 아예 “오달수를 염두에 두고 썼다”는 작품이다. 2002년 초연했던 연극을 다시 손질, 6일부터 29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3관에서 관객과 만난다. 공연을 코앞에 둔 지난 4일 대학로의 카페에서 만난 오달수는 “주인공 봉세는 은퇴를 앞둔 3류 복서”라며 “안타까우면서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했다. “민자라는 라운드걸을 10년이나 짝사랑합니다. 그녀가 바로 봉세가 권투를 하는 이유죠. 하지만 봉세는 민자한테... -
뮤지컬 배우 최현주
“가세요! 그 대신 꼭 돌아와야 합니다.”국내에서 을 공연했던 일본 극단 사계의 아사리 게이타 대표는 최현주(29)에게 이 한마디를 했을 뿐이다. 올 초 최현주가 한국 무대 데뷔를 위해 나설 때였다. 그는 2006년 일본에서 먼저 데뷔했다. 맑고 깨끗한 음색을 지닌 최현주는 등의 주역을 도맡으면서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프리마돈나의 자리를 지켜왔다. 일본 소속사 대표는 프리마돈나가 1년여간 자리를 비우는 게 탐탁지 않았지만 돌아온다는 약속에 만족해야 했다. 그는 현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의 크리스틴 역으로 한국 무대에 서고 있다.“일본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서는 것도 기뻤지만 좋은 공연을 모국어로 하고 싶다는 열망이 컸어요. 요즘 커튼콜 때 표정관리 하느라 힘들어요. 비극적인 작품으로 더욱이 크리스틴은 미소를 띠는 정도가 맞는데 저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짓게 돼요.”하지만 3년 전 일본 데뷔 때는 무대 인사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외국인... -
뮤지컬 ‘남한산성’ 무대디자이너 정승호
“김훈 작가의 소설을 보면서 그 당시 사람들의 모습이 참 잘 그려졌다고 생각했어요. 문체에도 감탄했고요. 무대 위에 올리면 재미있겠다고 여겼는데 막상 무대 작업이 쉽지는 않았어요. 엄혹한 시기를 견뎌내는 사람들의 모양새가 나오길 바랐습니다.”눈보라가 몰아치는 날 어가에 올라탄 인조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남한산성에 눈 구경 간다”며 성 안으로 들어가고, 백성들도 하나 둘 그곳으로 향한다. 무대 위 산성은 힘겹게 올라야 하는 산 같고, 어느 때는 아찔한 협곡 같다. 바닥은 얼음처럼 이들을 비춘다. 위태로운 삶의 기로다. 서정성을 띠던 무대는 어느 순간 공격적인 수많은 선(청나라)과 평화를 상징하는 면(조선)이 충돌하는 전장으로도 바뀐다.창작뮤지컬 <남한산성>의 무대 디자이너 정승호 교수(42·서울예대 연극과)는 “무대는 마치 ‘제3의 배우’처럼 연기해야 하고 관객에게 고유의... -
뮤지컬 ‘어쌔신’ 한지상
뮤지컬 은 독특한 작품이다. 뮤지컬 소재로는 도대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암살자들의 이야기인 데다가 음악도 두 대의 피아노가 이끄는 것이 전부다. 배우들도 등·퇴장을 하지 않고 무대 위에 내내 있다. 내용과 형식 모든 것이 새롭고 도발적이다. 브로드웨이에서도 독특한 작품 세계로 정평이 나있는 작곡가 겸 작사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뮤지컬을 국내 라이선스작으로 옮긴 것이다.밀도감 높은 이 작품에서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장면이 있다. 바로 미국 대통령 닉슨을 암살하려고 나선 극중 인물 사뮤엘 비크의 독백 장면이다. 그는 이 세상 누구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분노와 외로움에 가득찬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그 절박함의 어딘가는 단지 암살자만의 것이 아닌 것 같기에 어느새 관객들은 장면에 빠져든다. 사뮤엘 비크 역의 한지상(27)은 짧은 모노드라마와 같은 이 장면에서 그의 진가를 발휘한다.“처음에는 다른 배역에 캐스팅됐어요. 하지만 사뮤엘 비크 역이 탐이나 오... -
알몸 연기 연극 ‘논쟁’ 연출가 임형택
요즘 대학로가 시끄럽다. 연극 때문이다. 프랑스 극작가 마리보의 원작 으로 남녀배우 4명이 알몸 연기를 펼친다. 전라 연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객석은 연일 매진이다. 지난달 시작된 1차 공연에 이어 현재 진행 중인 동숭소극장 2차 연장공연(~27일까지)도 티켓오픈 하루 만에 마지막회까지 매진됐다. 3차 연장공연이 다음달 예정돼 있을 정도다. 공연과 관련한 소문은 무성한데 공연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으니 억측과 비난도 적지 않다. 작품을 본 이들 사이에서는 “내용이 없다” “왜 벗었냐” 등의 혹평과 “실험적이다” “본질을 담았다” 등 호평이 나오고 있다. 연출가인 극단 서울공장 임형택 대표(46·서울예대 연기과 교수)를 만나 작품을 둘러싼 의문을 풀었다. 그는 “제목 은 논쟁의 여지조차 없는 본질적인 것들에 무감하고 위선적인 우리들의 모습을 패러디한 제목으로 일부러 거칠게 지었다”고 말했다.-흥행을 노렸나.“우리 극단에는 마니아 관객층이 있다. 등을 공연할 때도 객석... -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 손숙
열일곱 살 문학소녀 손숙. 서울 남산의 옛 드라마센터 무대에 올랐던 (1962년)가 생애 처음 본 연극이었다. 이해랑이 연출과 아버지 역을 맡았고 그의 큰아들로 장민호가 나왔다. 손숙은 연극이 끝난 후 전기에 감전된 듯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연극은 강력하고도 직접적인 문학으로 다가왔다.2013년이면 무대인생 50년을 맞이할 배우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됐다. 손숙은 18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이해랑 서거 20주기로 무대에 오르는 에 마침내 선다. 운명 같다. 그는 이 감동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풍문여고 시절 방학이면 단짝과 경쟁적으로 이해도 못하면서 세계문학전집, 한국문학전집을 섭렵할 때였어요. 그때 단짝이 작가 김훈의 누나였는데 고교 연합동아리 ‘문학서클’에서 막내로 함께 활동했어요. 황석영, 조해일씨 등이 멤버였죠. 그런데 이 작품을 보면서 배우를 결심하게 됐어요. 연극은 충격 그 자체였으니까요.”그에게는 연극 스승이 두 분 있다. 작고한... -
남산예술센터 이규석 극장장
비로소 시민사회를 위한 만만한 극장 하나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일까.‘젊고 참신함’을 내세운 남산예술센터(옛 드라마센터)가 11일 다시 문을 연다. 개막작은 이다. 이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이어지는 작품들의 주제는 ‘상실과 구원’이다. 동시대성에서 길을 찾으려는 연극들은 암울하고 불편할지라도 현재 우리 모습들을 무대에 올릴 작정이다. 1970~80년대 연극 전성기에 중심극장이었던 이 극장이 다시 부활하기 위해 내디디는 첫 걸음에 관심이 모아지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연극이 이야기를 하기 위한 예술이라면 동시대의 삶을 얘기하는 것이 가장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민하게 오늘을 읽어내려는 젊은 작가, 연출가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려고 해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서 느끼고 있는 상실감, 박탈감에 대해 충실히 분석하고 대변하는 그런 정서를 지닌 작품들을요. 물론 이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관객으로 최대한 모시려고 합니다.”남산예술센터 이규석 극장장(38)의 방향... -
대학로에 ‘창작팩토리 스튜디오’ 문연 연출가 김아라
“대학로에 오랜만에 돌아왔다”는 인사에 “아니다, 떠난 적도 없고 돌아온 적도 없다”는 말이 되돌아왔다. 최근 서울 혜화동에서 문을 연 ‘창작팩토리 스튜디오-09’ 주인장과의 첫 대화는 ‘귀환’을 둘러싼 작은 승강이로 시작됐다.1996년 안성 죽산으로 내려가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해온 연출가 김아라(53)가 대학로에 새둥지를 틀었다는 소식에 만났다. 그는 대학로에서도 변방축에 드는 혜화초등학교 부근 지하 1층에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지난달 29일부터 침묵극 을 공연하고 있다.“죽산의 작업공간을 청산하고 대학로에 왔다고 해서 특별한 감회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이곳에서 연극을 시작했고, 동인 활동을 한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도 여기에 있고, 머물지도 않았지만 떠난 적도 없어요. 주변에서 ‘돌아왔다’며 호기심을 가질 뿐이지 행동반경은 그대로인걸요. 제가 어느 한 군데 정착하는 사람은 아니니까요.”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대규모 야외극을 벌이는가 하면 국내에서는 한강둔치, ... -
한·일 합작뮤지컬 ‘침묵의 소리’ 민영기
2004년 3월28일자 일본 아사히 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났다. 태평양전쟁에 강제징용되었다 살아 돌아온 후 일본 정신요양원에서 60여년을 보낸 한 노인이 죽음을 맞이했다. 김백식이라는 노인은 현금 4만엔과 ‘조선적’이라고 적힌 외국인등록증만을 남겼다. 그는 실어증과 기억상실로 오랫동안 침묵의 세월을 살다갔다는 내용이었다.한·일 합작뮤지컬 는 이 작은 기사에서 시작됐다.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비극적으로 살다간 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참상과 젊은 남녀의 사랑, 우정, 가족애 등을 그리고자 한 것이다. 서울시뮤지컬단과 일본 긴가도 극단이 공동 작업한 작품으로 9월4일 한국에서 첫 공연된다. 노인의 젊은시절인 동진 역은 민영기(36·사진)가 맡았다. “역사적 사실을 담은 작품은 아무래도 조심스러워요. 하지만 식민지와 전쟁 그 자체보다는 인물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한·일 관객 모두 힘든 시대를 살아낸 인간의 모습에 귀기울이며 저마다 다양한 생각을 하리라 ... -
활 대신 지휘봉 잡는 첼리스트 장한나
첼리스트 장한나(27)가 ‘지휘자’ 행보를 본격적으로 내디디고 있다. 지난 월요일 미국 뉴욕에서 전화를 받은 그는 “최근 지휘자 로린 마젤 선생의 농장에서 3주간 레슨을 받았다. 하루에 6~9시간의 강행군이었다”고 말했다. 또 “몇몇 해외 오케스트라에서 이미 지휘 요청을 받았다”면서 “현재 세 곳과 연주 일정이 잡혔다”고 말했다. 알려져 있다시피 장한나는 2년 전 성남아트센터에서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그것을 ‘지휘자 데뷔’로 생각하던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한데 이제 마음을 굳힌 걸까. 장한나는 “지휘자로서 아직 걸음마를 시작하는 단계”라면서도 “앞으로 지휘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될 것”이라며 특유의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났어요. 마젤 선생은 제가 가장 배우고 싶어했던 지휘자랍니다. 앞으로도 그분에게 계속 배우게 될 것 같아요.” 올해 79세의 로린 마젤은 지난 6월 초 7년간 재임했던 뉴욕필하모닉의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