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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전속결이 빚은 후회
1970년대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남북한이 체제 경쟁을 하던 터라 교과서에는 남한과 비교되는 북한 사회의 부정적 실상을 소개하는 내용이 반드시 실렸다. 그중에는 결혼한 여성들도 노동 현장에 동원되기 때문에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어린 아이들이 울면서 탁아소에 맡겨진다든지, 여성들이 집에서 김치를 담그지 못한 까닭에 곳곳에 ‘김치공장’이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당시 남한에서는 집에서 육아를 하고 김치를 담가 먹는 것이 당연한 일상사였으므로 부정적으로 그려진 북한의 실상에 실소를 금하지 못했으며 측은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 사회는 어떤가. 어린 아이의 육아·보육 시설과 제도의 불비(不備)로 아이를 가진 젊은 부모들이 여간 고민스럽지 않다. 간간이 터지는 ‘김치파동’에서 알 수 있듯이 김치는 더 이상 가정에서만 담가 먹는 음식이 아니다.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교육 현장에서나 사회적으로 젖먹이에게 모유보다는 우유가 성장·발육에 더 좋다고 가르치고, 은연 중에 서양 선... -
편향적 이데올로기 ‘국격’
이데올로기를 부정적으로 이야기할 때 흔히 그 특성을 비합리성에서 찾는다. 이데올로기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모든 것들은 어떤 유토피아를 상정하고 있다.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바람직하고 좋은 그런 곳이 곧 유토피아다. 우리는 누구나 그런 유토피아가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아니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것이 곧 도래할 것 같은, 꼭 실현할 수 있고 반드시 성취해야 할 것 같은 그런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이데올로기다. 이런 점에서 이데올로기는 비합리적이라고 하는 것이다.이데올로기가 그리고 있는 이상적인 사회가 현실적으로 실천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나마 차선의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데올로기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발전 단계에 따라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성격은 각기 다르다. 또 성격을 달리하는 이데올로기가 대립과 경쟁을 하기도 하고, 서로 닮아가면서... -
시간의 흐름과 인간의 진보
시간을 생각해본다. 시간의 흐름이 우리네 인간의 의지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마는 그래도 인간은 끊임없이 시간에 의미를 부여한다. 부질없어 보이는 짓 같지만 인간은 그러면서 위안을 얻는다. 세월과 시간의 덧없음에 대한 상실감을 그렇게 보상받는 것이다. 시간적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인간. 그 유한한 존재가 달리 어쩌겠는가. 여기에서 극적 반전이 이루어진다. 인간을 규정하던 시간이 인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비록 시간과 인간 간 관계의 본질에는 변함이 없을지라도, 인간은 그렇게라도 해서 스스로 세상의 주재자임을 확인하고자 한다. 새해를 맞이한 지금, 시간의 의미가 더욱 새로운 것은 올해가 흔히 말하는 꺾어지는 연도인 2010년이기 때문이다. 2010년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시간은 인간에게 주기성으로 인식된다. 해가 뜨고 지고 또다시 뜨고 지는 낮과 밤의 반복,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의 반복에서 우리는 시간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반복성이 시간이 갖는 본질적... -
100년대계, 줏대없이 ‘이랬다저랬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년도 외고와 국제고 입시부터 도입되는 ‘자기 주도 학습전형’에서 응시자가 사교육 경험을 의무적으로 서술하도록 방안을 내놓았다가 비판이 일자 이를 철회했다고 한다. 원래 취지는 그렇게 해서 사교육을 받은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사교육 조장 혐의로 외고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거세지자 교과부가 나름의 처방을 내놓은 셈이다. 기술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도저히 교육적일 수 없는 이런 방안이나 내놓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최고 결정기구인 교과부의 적나라한 현주소다. 이런 교과부가 현재 중학교 2학년이 대학입시를 치르게 되는 2014학년도부터는 수능영어의 듣기평가 비중을 50%로 높이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정권 출범 당시 ‘아륀지’ 소동으로 불거졌던 영어 몰입 교육이 이런 식으로 구체화되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필자는 교육학자도 아니고, 더구나 영어교육 전문가도 아니다. 따라서 듣기평가 50% 상향조정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 당장 무어라 평가하기 어렵... -
평등 가치와 기업가 사면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만인 평등의 가치다. 100년을 산 노인이나 이제 막 19세가 된 청소년이나 동일한 가치의 선거·투표권을 갖는다. 연령, 성별, 재산에 상관없이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함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세상이 아무리 바뀌거나 기술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끊임없이 되묻고, 강조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근본가치다. 근본가치는 잠시만 소홀히 해도 훼손될 가능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소위 민주화를 성취했다고 평가받은 지난 십수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만인 평등의 가치나 법 앞의 평등 원칙에 대한 의문이 오히려 더 많이 제기되어온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시장경제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소위 ‘자유 시장경제’는 사유재산제를 전제로 국가의 간섭을 최소로 하되, 가격 기능에 의해 경제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그런데 경제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가격의 기능이 왜곡되기도 하고, 시장의 실패 현상이 나타... -
외고의 존재가치를 묻는다
외국어고등학교 폐지 논란이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폐지는커녕 폐지 논의의 핵심을 무색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고 말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외고 폐지 여부가 논란되었던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외고의 존재가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바로 이것이었다. 외고를 그대로 두고서는 사교육의 폐해를 완화 내지는 근절할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외고 폐지 주장이 등장했고, 국민들의 관심사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의 외고 개편안은 폐지논의의 핵심을 완전히 비켜가고 말았다.외고가 본래의 설립 취지에서 벗어나 소위 일류대, 일류학과 진학을 위한 편리한 도구로 전락한 이래, 일류대 진학의 전초 기지로 외고에 진학하기 위한 사교육이 아주 이른 시기부터 횡행해왔다. 심지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외고 진학을 위한 사교육이 시작되기도 했다고 한다.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외고 진학 후에도 사교육은 중단되지 않았다. 오히려 ... -
두바이 위기서 본 ‘일방통행식’ 경제의 한계
‘사막 위의 신화’라고 하였다. 한겨울에도 섭씨 30도가 훌쩍 넘는 무더위 속에서도 ‘스키 두바이’(인공 스키장)에는 스키와 썰매를 즐기는 사람이 넘쳐났다. 동화 속 상상의 세계가 현실에 펼쳐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두바이는 지난 몇 년간 그렇게 우리에게 비쳐졌다. 우리나라 건설사들이 그 꿈 같은 세계의 건설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암암리에 민족적 자부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여느 중동 국가와 달리 과감한 탈규제·개방정책으로 세계의 무역·금융·관광 허브로 거듭나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세계 최대의 인공섬 ‘팜 주메이라’나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버즈 두바이’ 등으로 구체화됐다. 두바이의 지도자 셰이크 모하메드의 리더십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고 발상의 전환으로 상상을 현실로 바꾸어내는 그의 생각은 21세기적 지도자에게 필요한 미덕으로 찬양되었다.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은 두바이의 역사(役事)에 많은 관심을 표명해왔으며, 이를 21세기적 성공의 모델로서 벤치마킹할 ... -
법치주의와 준법의무의 관계
프란시스 베이컨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성이 언어를 지배한다고 믿지만, 실상 언어가 지성에 반작용해 지성을 움직이는 일도 있다.” 언어가 인간의 지성에 오류와 잘못된 편견을 가져다 줄 수 있음을 경계한 말이다. 20세기에는 언어가 아예 ‘사유의 집’으로 격상된다. 언어가 없으면 사유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만약 언어가 올바르지 못하다면 어떨까. 올바른 사유가 불가능할 것이고 그에 기초한 실천도 올바르지 못할 것이다.현대 국가는 고도의 상징 질서의 복합체다. 상징의 많은 부분은 매우 추상적이지만 엄밀한 개념으로 채워져 있다. 그 개념들은 보편성을 취하고 있지만 상당 부분 구체적인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다. 국가의 근본 질서와 원리에 관한 것일수록 그 역사성이 더욱 깊다. 따라서 상징 질서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은 현재의 언어적 습관과 용법만을 살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시장, 자유, 평등, 민주주의, 자유주의, 자유민주주의, 복지 등 수많은 개념... -
‘루저 파문’ 부른 물신종교사회
“키 작은 남자는 루저.” 공영 방송의 토크 쇼에서 어느 여대생이 한 발언이다. 이것이 논란거리라 해서 해당 프로그램을 일부러 찾아서 보았다. 외모도 경쟁력이 된 시대인 만큼 큰 키의 남자를 소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이성(異性)에 관하여 저마다의 이상형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따라서 이 학생이 “키 작은 남자는 싫어요”라고 했다고 해서 가타부타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학생의 그 다음 말 즉 “요즘처럼 키가 경쟁력인 시대에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합니다. 남자 키는 180㎝는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한 부분이 사람들의 귀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인터넷에서 그 학생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등의 격한 반응은 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작 우리가 반응하고 숙고해보아야 할 것은 다른 데 있다.먼저 생각해볼 것은 공영 방송의 윤리 문제다. 한 개인의 사적인 견해일망정 그것이 어떤 편견으로 일반인의 정서와 상식을 크게 벗어난... -
‘거대담론’의 본질
공리공론(空理空論). 이데올로기라는 말의 태생적 본질이다. 칼 마르크스는 이를 자본주의가 내세우는 허위의식(虛僞意識)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그가 혹은 그의 계승자들이 주장하는 것들도 본질적으로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띠었고, 때문에 이데올로기라는 말은 정치·사회·경제체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사상에 대한 낙인 찍기의 도구가 되었다.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국가들이 하나 둘 붕괴되면서 이데올로기라는 말의 태생적 본질이 증명되는 듯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파국은 결국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공리공론과 허위의식이었음을 결과로 보여주는 꼴이니 그렇게 심산(心算)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이데올로기를 거대 담론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 거대 담론을 운위할 시대는 지나갔다고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도사려 있다. 이데올로기적 대립의 또 하나의 축인 자본주의는 엄연하고, 그가 내세우는 것 또한 여전히 거대 담론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거대 담론의 종언’이 일방적으로 주장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