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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비포선셋, 위고…어디로든 걸으면 예술이 되살아나
헤밍웨이가 사랑한 ‘레 되 마고’ ‘카페 드 플로르’, 지금도 영수증에 당당히 박힌 ‘문학 카페’…콘센트도 없고 테이크아웃도 안되지만 빛이 난다노트르담 대성당서 빅토르 위고의 역작을 떠올리고, 맞은편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찾아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의 애틋하고도 운명적인 재회를 떠올린다헤밍웨이는 스물두 살이던 1921년부터 7년을 파리에서 지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파리 생활을 추억하는 회고록을 썼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는 제목의 책이다. “젊은 시절, 파리에서 보낼 수 있는 행운이 그대에게 따라 준다면, 파리는 축제처럼 평생 당신 결에 머물 것이다. 내게 파리가 그랬던 것처럼.” 파리에서 생활하던 시절의 헤밍웨이는 가난한 무명 작가였다. 헤밍웨이는 왜 그 초라한 시절에 ‘축제’(feast)란 말을 붙였을까. 무엇이 그의 파리 시절을 아름다운 축제로 만들었을까. 파리에 머무는 동안 한 사람의 ‘아름다운 시절’을 생각했다... -
(19)상상해야, 조금씩 더 보이고 추억도 풍성해진다
수많은 문명을 꽃피운 아테네 그곳의 수식어는 늘 길고 화려‘조르바’처럼 열정이 가득하고‘플라카’엔 소크라테스의 숨결‘아테네란 무엇인가’ 내게 물으면‘아크로폴리스다’라고 답할 것 파괴와 복원 흔적 뒤섞인 아테네 상상하는 자들에겐 낭만과 환희를 안겨줄 것이다아테네는 오래전부터 가고 싶은 여행지였다. <그리스인 조르바> 때문이다. 아테네 피레우스 항구의 한 카페에서 화자인 ‘나’는 주인공 조르바를 만난다. 책 속에서만 진리를 찾던 엘리트 ‘나’는 크레타 섬의 탄광에서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조르바를 통해 진리를 깨닫게 된다. 작가 카잔차키스는 본인의 묘비에 이런 문구를 남겼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읽은 지 오래된 책을 다시 뒤적이며 알 수 없는 기대에 부풀어올랐다. 이스탄불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아테네에 도착했다.공항에서 아테네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
(18)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잘란잘란’ 자유와 힐링
발리는 네덜란드가 ‘마지막 남은 천국’이란 이미지로 포장, 원시 문화로 유럽인을 유혹하며 힐링의 대명사로신과 자연과 인간이 시공간을 공유하는 이곳…마음 비우고 어슬렁 거리며 걷는 휴식, 오롯이 누리시라직업이 여행작가인지라 여행을 가도 오롯이 휴식을 누리기는 쉽지 않다. 이번엔 큰 맘을 먹었다. 발리 출장 끝에 3일을 더 붙여 나만을 위한 휴식을 갖기로. 여행작가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늘 여행만 다녀서 좋겠다’라는 것인데,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여행작가 중에서 의외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 회사원에게 사무실이 일터인 것처럼 여행작가에게 여행지는 일터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휴일 하루조차 없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으면 일하지 않는 것 같은 불안감. 그런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힐링’이라는 뻔한 여행 목적엔 그 어디보다도 발리가 적절해 보였다. ■ 힐링의 대명사가 된 섬발리가 힐링의 대명사가 된 이야기는 1차 세계... -
(17)수수한 정경에 마음 빼앗겨, 한없이 걷고 싶은 이 길
미 건국 역사 숨어있는 유적 16곳둘러볼 수 있는 ‘프리덤 트레일’시장·항구 등 구경거리 넘쳐나한국·중국의 교육열에 힘입어하버드·MIT 캠퍼스 투어 인기존 하버드 동상 앞은 늘 붐벼찰스 강변 매일 달렸다는 하루키보스턴의 매력을 ‘정경’이라 표현극적인 아름다움 없이도 매력적미국 동부에서 뉴욕이 아닌 딱 한 군데를 고르라면 단연코 보스턴이었다. 최근 보스턴 직항노선이 취항하면서 궁금증이 커졌고, 보스턴 학살이나 보스턴 차 사건 같은 것을 세계사 교과서로 배웠던 까닭에 학습 의욕까지 증폭됐다. 미국 역사가 실질적으로 시작된 곳이어서 만약 미국 여행 순서를 정한다면 보스턴, 뉴욕, 워싱턴 등으로 이어지는 동부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는 동선이 자연스럽다고 늘 생각해왔다. 그리고 골드러시의 역사가 밴 중부를 거쳐 서부의 캘리포니아까지 이어지는 동선을 꿈꿔왔지만, 현실은 꼭 그렇게 이뤄지지는 않았다.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일정 속에서도... -
(16)숲을 헤치며 오르는 산악열차…발걸음 가볍게 ‘편백의 나라’로
해발 4000m 육박 ‘대륙 스케일’ 중국인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일제 수탈 목적 산림철도 재활용한 ‘빨간색 협궤 열차’ 인기만점운무가 키운 녹차밭 장관…종착지 신목역, 건물 없이 나무 플랫폼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아리산(阿里山). 자이(嘉義)라는 이름의 도시로 향했다. 자이는 아리산으로 가기 위한 관문 도시로 가오슝에서 북쪽으로 1시간 반이면 도착한다. 자이에서도 시골로 들어갔다. 이튿날 새벽부터 시작하는 산행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오가는 사람은 관광객 몇 명뿐. 썰렁한 마을에 세븐일레븐이 있는 것은 현지 식당 음식에 적응하지 못한 외부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는 걸 금세 눈치챘다.마을 어귀 낡은 간판을 달고 있는 작은 식당. 타이베이의 세련된 레스토랑에 익숙하다면 대만 시골 밥상에 당황할 수 있다. 이것은 연남동이나 강남 번화가에서만 밥을 사먹던 외국인이 전라도의 홍어집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충격과 비슷하다. 닭요리는 정직하게 ... -
(15)반 고흐 최후 역작들의 탄생지···그림 속 배경, 변함없이 그곳에
파리서 30㎞ 떨어진 작은 마을기차역·연결 통로 추모 그림들그림 그린 곳 소개 친절한 팻말시청사·들판·밀밭 모습 그대로사이프러스 나무도 회화적 요소그가 죽음 맞이한 라부 여인숙2층 ‘고흐의 집’ 벽면 가득 노랑69일간 체류하며 70여점 그려죽는 순간까지 품은 붓과 캔버스열정 떠올리며 위로 받은 여정파리의 여행 루트는 거의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모나리자’를 보고, 에펠탑이 보이는 뤽상부르 공원 잔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사진을 찍는다. 센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퐁네프 다리 아래를 지나가며 영화 <퐁네프의 연인>을 떠올려본다. 헤밍웨이가 자주 들렀다는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 가서 퀴퀴한 종이 냄새에 젖어도 본다. 화마가 스쳐간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서 비둘기를 날려가며 사진을 찍는다. 샹젤리제 거리에선 저절로 ‘오~ 샹젤리제~’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는 모네의 ... -
(14)단박에 빠져드는 마법…풍경도 음식도 사람도 참 담백하다
바삭하게 구운 빵에 신선한 마늘 올리브 오일 듬뿍 뿌려 먹으니 맛의 르네상스가 이런 거구나… 소금기 하나 없는 심심한 빵은 올리브에게 자리 내주고 겸손하다 아무런 양념 없이 숯불에 굽는 피렌체 스타일의 스테이크 고기 자체 육즙이 최고의 소스다 600년 된 궁전 같은 와이너리 좋은 와인 추천해 달라 했더니 와인엔 좋고 나쁨이 따로 없단다단지 두 명만 탈 수 있는 피아트 500. 흔히 친퀘첸토라고 부르는 작은 이탈리아 클래식카를 타고 토스카나를 달렸다. 세상에 나온 지 50년이 넘은 자동차는 쌩쌩 달리지 못하고 털털털 소리내며 굴러갔다. 하지만 이래 봬도 컨버터블카다. 기름 냄새 때문에 머리가 좀 아팠지만 뭐 어떠랴. 여기는 토스카나다. 컴퓨터 윈도 화면에서 자주 봤던 토스카나의 싱그러운 자연은 모든 근심과 걱정을 날려보내는 마법을 부린다. 올리브나무와 포도밭이 촘촘히 이어지는 구릉과 시리도록 파란 하늘, 마을에... -
(13)미국이 처음 시작된 독립의 역사 품은 곳 ‘필리’를 찾아라
자유 찾아 떠나온 가난한 이민자들이 독립혁명을 이룬 필라델피아, 미국인이 사랑하는 역사 유적지로 자리잡아길거리·이정표·비석엔 미국인의 자부심 드러나고…독립선언문 작성한 벤저민 프랭클린에 대한 애정이 도시 곳곳에 스며있다뉴욕서 더 유명한 ‘LOVE’는 사실 필라델피아가 원조…1976년에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해 조형물이 세워졌다필라델피아에서 빌린 에어비앤비에 도착한 순간, 뉴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한 물가를 실감했다. 최신식으로 지어진 럭셔리 스튜디오(원룸)가 하룻밤에 7만원도 안 했다(뉴욕에서는 후미진 곳의 방 한 칸도 15만원이 넘는다). 넓은 발코니에서 내려다본 거리엔 벽화가 아름다웠다. 필라델피아엔 그라피티 대신 벽화가 4000여개 있다. 1980년대 낙서와 다를 바 없었던 그라피티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1996년 뮤럴 아트(Mural Arts)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도시의 풍경을 주도하고 있다. 벽에 그리는 것은 똑같지만 그라피티와 달리 필라... -
(12)치열한 삶의 현장을 떠나, 유유자적 평화로움 속을 거닐다보면…이민 가고 싶은 나라를 만난다
‘낭만’이 살살 녹는다 무상교육·무상의료·워라밸의 일상에 아늑한 노후까지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곳…단순함과 여유가 넘친다 새삼스레 깨달았다 일이란 적게 할수록 좋고, 인생이란 지금 살아가는 것임을 토론토에 가면 ‘쫓기듯 살기보다 인생을 즐겨야지’ 느껴토론토(Toronto)란 이름은 이로쿼이 부족의 단어 ‘트카론토(tkaronto)’에서 기원했다. ‘물속에 나무들이 있던 장소(wood in the water)’라는 뜻이다. 원주민들은 호수에 나무 울타리를 세우고 그물을 걸어서 물고기를 잡고 살았다. 호수는 캐나다 원주민들의 젖줄이었다. 원주민들이 물고기를 잡고 비버나 들소, 순록 사냥을 하고 참나무로 집을 지어 평화롭게 살던 캐나다 땅에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초부터다. 당시 비버 털은 최고의 옷감으로 유럽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영국인 헨리 허드슨(Henry Hudson)은 1610년 허드슨 베이에 도착해 비버 털... -
(11)하얀 도시에 떠다니는 달콤한 음표
모차르트가 태어나 자란 곳이며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잘츠부르크 산 위엔 하얀 눈이, 산속엔 하얀 소금이 있고, 회색 지붕을 빼곤 온 마을이 하얗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 다시 감동하게 됐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들을 만나 좋았다잘츠부르크에 도착하니 알프스의 맑은 공기가 여행자를 반겼다. 기차역에 서서 멀리 바라보니 하얀 눈을 머리에 인 뾰족한 산이 눈에 들어왔다. 싱그러웠다. 봄과 여름의 중간이었다. 알프스가 이어지는 오스트리아 티롤과 잘츠부르크 지방은 겨울이면 동계 스포츠가 성행하는 곳이다. 유럽의 스키어들은 겨울이면 좋은 설질을 찾아 여기까지 온다. 지금부터 8월 말까지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열린다. 독일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과 함께 유럽 3대 음악 축제로 손꼽히는 이 축제는 1920년에 시작했으니 어느덧 100살이 되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듣고 있는 지금, 잘츠부르크가 선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