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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남 그리고 남북 사이, ‘중간’은 불가능한 영토일까
“앗, 선생님 어디선가 뵌 얼굴입니다.” 21세기 초, 군사분계선을 넘어 처음 북한 땅을 밟았다. 속초에서 배편으로 장전항에 도착했다.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이었다. 현실은 감회에 젖을 여유를 주지 않았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북측 남자 안내원이 기습적으로 말을 걸어왔다. 5시간 정도 소요되는 만물상 코스의 초입이었다. 그는 그러면서 남측 방문객들이 방북 기간 내내 목에 걸어야 했던 신분증을 멋대로 들춰 인적사항을 훑었다. 사진과 함께 생년월일, 직업, 주소 등이 적혀 있었다. 한국기자협회 대표단의 한 명으로 조선기자동맹 대표단을 만나기 위해 방북한 길이었다.인적사항을 확인한 그는 대뜸 “기자는 시대의 조산원입네다”라며 추켜올렸다. 그러더니 “하지만 잘못하면 시대의 쓰레기장이 됩네다”라고 덧붙였다. 제멋대로 대구였지만,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말이다. 문제는 이어진 그의 장광설이었다. 그즈음 경기도 양주에서 훈련 중이던 미군 장갑차에 여중생 효순·미선양이... -
동아시아 군비경쟁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오커스’
역사는 반복된다. 주먹에 관한 한 자신 있는 거구의 헤비급 권투선수가 있다고 치자. 갈수록 주먹이 세지는 동급의 상대가 있지만,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왔다. 어느 순간, 상대의 주먹이 만만치 않음을 발견한다. 그렇다고 챔피언 자리를 내줄 수 없는 법. 어르고 달래보지만 당최 여의치 않으면, 모종의 결단을 해야 한다. 거인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에서 미국의 선택은 ‘주먹’을 늘리는 것이었다.1957년 10월4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발사기지1에서 소련이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그때까지 록히드 U-2 정찰기를 소련 상공에 띄워 동태를 파악해왔던 미국은 충격에 빠진다. 소련의 인공위성이 미국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상상에 일반 국민들에까지 공포가 확산됐다. 소련은 미국이 1954년 9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취역시킨 핵추진 잠수함(핵잠)마저 4년 뒤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과 영국이 냉전이 한창이던 1958년 상호방... -
못난 조국이 내친 그들, 이국땅의 정체성 잃은 ‘검은 꽃’이 아니다
정확히 20년 전 가을날 저녁이었다. 멀리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찾아온 기자를 맞이한 김씨 집안 사람들의 얼굴에선 도무지 ‘한국’을 찾아볼 수 없었다. 농가의 조명이 밝지 않아서인지 살갑게 손 내미는 얼굴들이 더 흐릿하게 보였다. 백인의 얼굴도 있었고, 가무잡잡한 피부도 보였다. 한국인은커녕 황인종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비포장 외길과 녹슨 철로로 간신히 세상과 연결된 쿠바 동북단의 마나티항. 아바나에서 700㎞를 달려가 한인 후손 에스민다의 가족을 만난 자리였다. 그들의 입에서 엄마의 음식 이름이 나온 것은 놀라운 반전이었다. “김치, 지지미, 콩장, 부침개….” 그 순간, 조금 더 넓은 개념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단일민족’ 중년남의 뇌리에 어렴풋하게 찾아들었다.못난 왕과 탐욕스러운 고관대작들이 쥐새끼처럼 나라를 갉아먹던 구한말, 고향을 등지고 이역만리로 떠났던 한인들은 많다.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 간도가 첫 귀착점이었고, 한 번 떠난 길은 제2... -
다 잊히기 전, 우리도 말해야 한다… ‘그 땅의 20년’은 무엇이었는지
지난 4월14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 2층의 트리티룸에 들어섰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계획을 공식 발표하는 자리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뜸 그곳이 2001년 10월7일 조지 부시 대통령이 미군의 아프간 침공 사실을 발표한 자리임을 상기시켰다. 9·11테러로 2977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사실도 되새겼다. 회견 전 부시 전 대통령과 통화했음을 공개하면서 아프간에서 복무한 미국 청년들의 노고에 감사한다는 점에서 완벽한 의견일치를 보였다고 소개했다.바이든은 이 자리에서 올해 9·11테러 20주년 전까지 미군이 전원 아프간에서 떠날 것이라고 공표하면서 개인적 소회를 감추지 않았다. 그만큼 9·11테러와 아프간 침공이 미국민들에게 주는 감상이 유별났기 때문일 게다. 자신이 부통령이 된 이후 지금까지 12년 동안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사망한 미군 장병의 정확한 숫자를 적은 카드를 소지해왔다면서, 이날 현재 아프간에서만 2448명이 숨지고 2만722명이 다쳤다고 밝혔... -
북·미 관계, 사실상 손 놓은 미국…돌파구 못 찾는 한반도 문제
우선 한·미가 먼저 북한에 종전선언을 제안한다. 평화협정과는 달리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는 선언일지언정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다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한·미가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해 북한으로 하여금 대중 입장을 재정립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경제지원은 신뢰 구축의 또 다른 수단인 동시에 북한 비핵화의 촉진제다. 미국은 북한의 인프라를 개발하기 위해 10년 무이자 국제펀드 조성을 가능케 하는 역할을 한다. 북한은 이를 통해 대중 경제의존을 낮출 수 있다. 남북 자유무역협정(FTA)은 이러한 인프라 건설재원 마련의 보완재가 될 수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투자 흐름을 주도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은 한국이 맡는다.2019년 하노이 북·미회담 실패 뒤 북한은 미국에 ‘새로운 셈법’ 요구 중국과는 애증, 한·미와는 불신 북, 미국과 수교해도 핵 포기 못해 이 단계에서 한·미 동맹과 북한은 군사적 긴장을 낮춰야 한다. 군사관계의 정상화다. 서해 충돌... -
올림픽은 과연 어떠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어야 하는가
도쿄 올림픽을 보는 세계의 시선 ‘복잡’…개막 전부터 이례적 상황결국 개막, 선수들의 투혼과 열정은 코로나 와중에 작은 행복 선사전 세계의 안전을 담보로 모험, 상업주의 오염에 대한 비판도 여전향후 올림픽은 어떻게 치를 것인가…바흐·IOC의 생각이 궁금하다“올림픽은 계속돼야 한다(The Games must go on)”고?지난해 1월20일 요코하마에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탑승한 80대 홍콩 노인이 닷새 만에 병원을 찾아갈 때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 않았다. 배가 홍콩에 정박한 뒤 몸상태가 좋지 않았던 그는 병원을 찾았고, 2월1일 코로나19 감염 사실이 확인됐다. 불행의 전조였다. 영국 선적 크루즈선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거대한 배양접시가 됐다. 사흘 뒤 승객 10명이 확진을 받자 일본 영해에 있던 배는 요코하마항에 선상 격리됐다. 코로나19가 미증유의 대확산으로 급속하게 진행되던 시기였다.3월16일까지 712명의 각국 승객들... -
쿠바는 “살려달라” 울부짖는데…그렇게 탐내던 미국은 장벽만 높인다
“폭풍우가 사과를 나무에서 떨구면 사과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북미동맹에 올 수밖에 없다.” 존 퀸시 애덤스 제6대 미국 대통령(1825~1829)에게 쿠바는 ‘사과’와 같은 존재였다. 국무장관 시절 애덤스는 스페인 외교장관에게 이런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아이작 뉴턴이 중력을 설명하면서 예를 들었던 사과에 비유한 것이다.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50년 내 쿠바는 미국에 병합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미국은 그러나 사과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지 않았다. 제임스 녹스 포크 제11대 대통령(1845~1849)은 스페인으로부터 1억달러에 쿠바를 매입하겠다고 공식 제안했다. 스페인의 답은 “미국에 파느니 바다에 빠뜨리겠다”는 것이었다. 50만명 정도의 흑인노예를 확보할 수 있는 쿠바는 미국에도, 스페인에도 돈이 되는 섬이었다. 1897년 쿠바 독립전쟁이 발발한 뒤 윌리엄 매킨리 미국 대통령은 그 가격을 3배 높여 제안했다. 스페인은 이번에도 거절했다.... -
바이든 “두 개의 강대국” 불렀을 때, 미국과 러시아 사이 훈풍이 불었다
‘구동존이’…미국이 변했다지난 16일 제네바 미·러 정상회담 바이든이 푸틴에 건넨 메세지는 ‘서로 이견이 있음을 인정하기’ 미국이 러시아와의 갈등 관계서 ‘공존’으로 선회했음을 드러내 재정립되는 미·러 관계푸틴을 ‘킬러’라고 공언한 바이든 회담서 “two great powers” 미·러를 두 개의 강대국으로 지칭“투자 바란다면, 생각을 바꿔라” 경제난 시달리는 러시아에 공동의 경쟁국 ‘중국’ 각인시켜 7월16일 푸틴의 입에 쏠린 눈미·러 정상회담 한 달 뒤는 러·중 우호조약 체결 20주년 푸틴이 ‘어떤 생각’하고 있는지 ‘다음 단계’ 관측할 수 있는 계기‘서로 이견이 있음을 인정하기(agree to disagree).’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이뤄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지난 16일 제네바 미·러 정상회담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과 인정하지 않는 것은... -
내일, 네타냐후 ‘운명의 날’…그가 내려오면 그 나라가 바뀔까
40대 총리로 방한했던 그가 권력에 목맨 정치인이 될 줄 몰랐다트럼프와 닮은꼴이라지만…15년 ‘공포의 정치’, 그와 그 나라가 원조네타냐후가 싫어서 손잡은 ‘이종결합’…이스라엘의 변화는 제한적종교와 인종을 앞세운 ‘포퓰리즘의 실험실’로 계속 남을 것이다명색이 국제전문기자이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현장이 너무 많다. 현장의 공기를 마시지 못하고 쓰는 글은 생명력이 없다. 지극히 사적인 여행일지언정 한번이라도 밟았던 땅의 이야기에는 숨결이 들어간다. 대안은 ‘서울로 찾아온 현장’을 만나는 것. 남산 자락의 어느 호텔이었던가. 내외신 기자회견을 자청한 40대 이스라엘 총리를 만난 건 1997년 8월 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70세를 넘어 권좌에 더 있기 위해 온갖 무리수를 두는 노회한 정치인이 될지는 몰랐다. 방한 한 달 전 예루살렘에서 폭탄테러가 발생, 그 수습에 경황이 없었을 그는 외교 일정을 늦추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분노의 돌멩이와 ... -
미사일 주권 회복, 명분만큼 평화도 가까워졌나
다양한 분야서 협력 강화한 회담북한으로부터의 실제적 위협 대신중국의 가상 위협 대응에 집중해‘우리 안보에 필요한’ 범주 밖 결정동북아 군사균형에 미칠 파급력 커‘미국의 아웃소싱’ 위협 자초 비판도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대북정책 재검토를 완료한 뒤 3주가 지난 21일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회담은 여러 ‘꼬마 동맹’을 탄생시켰다. 지역적으론 거반 전 세계를 다루었고, 분야별 현안을 총망라한 A4용지 5쪽이 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지난달 16일 미·일 정상회담 뒤 발표된 ‘새로운 시대를 위한 미·일 글로벌 파트너십 공동성명’에 비해 정확히 1쪽이 더 많다. 만기친람식 광폭 성명이었다.한·미관계가 공간적으로 넓어지고,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이 강화되는 걸 반대할 필요는 없다. 로컬 동맹이 글로벌 동맹으로 바뀌었으며, 기왕의 군사동맹에 더해 경제동맹, 기술동맹, 기후동맹, 코로나19 백신 동맹, 우주개발 동맹, 라틴 아메리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