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하·샤이비츠 동시 개인전
동시대 회화 본질과 새 가능성 탐구
추상화를 통해 끈질기게 회화의 본질과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서양의 두 작가 작품이 한자리에서 만났다. 서울 종로 학고재갤러리에 동시에 마련된 박영하 작가(69)와 독일의 토마스 샤이비츠(55·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 교수)의 작품전이다.
국적이나 인종, 재료, 작업 태도나 표현방식 등 많은 게 다른 두 작가다. 하지만 추상회화의 맛과 그 힘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또 믿는 화가들이다. 자신의 예술철학을 끊임없이 다듬으며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 관람객에게 신선한 예술적 감흥을 전하는 작가들이다.
박 작가는 ‘내일의 너’라는 이름 아래 회화 34점·드로잉 8점을 선보인다. 절대 다수가 신작으로 작가의 작업 열정을 잘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자연에 가까운 색감과 질감, 어디선가 본 듯하면서도 새롭게 다가와 갖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자연스러운 추상적 형상으로 유명하다.
한국적 정서와 미적감각이 녹아든 작품들이다. 자연색을 내기 위해 작가가 만든 안료를 화면 위에 숱하게 쌓아 올려 자연스러운 흔적·질감으로 만들어낸다. 자연의 재현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자연이다. 자연인 작품을 통해 인간 삶을 사유하게 하는 것이다.
전시명이자 작품명인 ‘내일의 너’는 작가의 부친이자 유명 시인 박두진(1916~1998)이 그에게 던져주고 떠난 화두다. 박 작가는 “예술가는 일반인보다 한발 앞서야 한다는 점에서 내일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존재로서 회화의 본질을 고민하기 위해 이 화두를 그림으로 옮긴다”고 말한다.
“추상회화는 무한한 자유와 새로운 발견”이라는 작가는 “소박하면서도 자유롭게 숨 쉬는 삶의 공간으로서의 평면, 이것이 끈질기게 추구하고 소원해온 회화적 지향점”이라고 밝혔다.
새 가능성의 회화로 주목받는 샤이비츠는 ‘제니퍼 인 파라다이스’란 전시명 아래 회화 21점·조각 2점을 출품했다. 역시 대부분 신작이다. 그는 르네상스 회화부터 이 시대 각종 광고·사진·만화·인터넷 등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뽑아 변형·재구성해 포토샵 작업방식으로 캔버스에 표현한다.
무채색보다 연두·주황의 형광색, 자연스러운 질감보다 인공적인 매끈함, 곡선보다 직선의 기하학적 도형이 두드러진다. 다루기 까다로운 형광색을 쓰면서도 화면의 색감 조화가 뛰어나 그의 내공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그는 비닐 페인트 등 이 시대 재료들을 의도적으로 적극 사용한다. 추상의 경계를 오가며 재료부터 표현방식까지 새로운 회화를 탐구하는 것이다.
전시명이기도 한 작품 ‘제니퍼 인 파라다이스’는 그의 작품 철학을 상징한다. 이 작품명은 포토샵 창시자 중 한 명인 존 놀이 1987년 당시 여자친구 제니퍼를 촬영해 세계 최초로 합성사진을 만든 뒤 붙인 제목이다.
샤이비츠는 포토샵 활용이 이미지의 변형과 조합 등 이미지에 대한 기존 개념을 전복시킨 점을 주목하며 이 시대의 회화를 강조하는 것이다. 전시는 6월17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