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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도 난다

5월이면 공원들과 도로 곳곳이 행복해 보이는 가족들로 채워지는 날이 있다. 그런데 간혹 놀이기구와 나들목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 고단한 피난민 행렬처럼 보이곤 한다. 심지어 전쟁이 일어난다면 보게 될 풍경이 저렇지 않을까 하는 데에까지 생각이 이르면 스스로를 방정맞다 질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북이도 난다’에는 상상이 아닌 실제의 풍경이 있다. 그 속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게 될 어린이들이 있다.

[영화다시보기]거북이도 난다

국내에서 개봉되었던 이란 영화들 중에는 유독 어린이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키아로스타미를 도와 영화를 찍었지만 그보다 더 집요한 바흐만 고바디의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그리고 마지드 마지디 감독의 ‘천국의 아이들’이 대표적이다.

그 영화들은 어떤 면에선 불편하다. 이란 어느 마을의 남루하고 복잡한 회백색 골목처럼 기름기라곤 없는 건조한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른 척해도 될 것 같은 먼 나라의 가슴시린 현실도 봐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매번 마음 불편함으로 끝나고 말 것임을 알기에 더욱 불편할지도 모르는 일. 물론 그 중 ‘천국의 아이들’은 ‘남매에게 신발은 한켤레, 오빠는 오전반, 동생은 오후반’이라는 설정으로 극에 긴장감과 재미를 더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극심한 빈부격차와 가난을 넌지시 보여준다.

불편함 정도가 아니라 고통스러움에 가까울 ‘거북이도 난다’의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아예 그 현장에 서기로 작정한 듯하다. 그는 자신이 총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고 말했고, 비극과 함께 순장당하는 아이들을 담았다. 그리고 겁탈당해 낳은 아이를 기르는 아그린, 각각 팔과 다리를 잃은 헹고와 파쇼, 앞을 보지 못하면서도 천진난만한 리가가 우리에게 바라는 건 일시적인 동정이 아니다.

물론 이는 정치적이다. 호소력이 있고 효과적이기에 아이들을 이용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쿠르드계인 바흐만 고바디 자신도 어렸을 때 가족을 잃었고, 직접 전해듣거나 보아온 사실들을 시나리오에 반영했다.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는 말이다. 기실 정치와 이상이 출발해야 할 자리는 도서관이 아니라 현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거북이도 난다’와 같은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감동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낯설고 독특한 영화를 찾아보고 가련한 아이들이 안쓰러워 눈물을 흘림으로써 만족하는 것이라면, 또는 우리는 저들보다는 나으니 행복하지 않으냐며 감사하다고 해버린다면 이 얼마나 잔인한가. 차라리 사랑이라는 감정마저 사치로 느껴질 만큼 괴로워하다 용기를 얻게 된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같은 맥락에서 아이들을 세상과 떼어놓는 것이 순수함을 지켜주는 방법이며 예의라는 불문율이 있다면 잘못되었다고 해야겠다. 초등학교에서 배웠던 노래 하나가 떠올라 흥얼거리다보니 어쩌면 세상 어린이들을 만나보고 울 수 있게 해주는 게 아이를 아이답게 만드는 건 아닐까 싶어서다. 이 동요가 이렇게 슬플 수도 있음을 ‘거북이도 난다’ 때문에 알았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아가면/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온 세상 어린이가 하하하하 웃으면/그 소리 들리겠네, 달나라까지…”

〈나도원|웹진 ‘가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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