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날 미치게 하는 남자’

- 야구는 화성남자와 금성여자를 녹인다 -

‘날 미치게 하는 남자’(Fever Pitch)는 상큼하고 낭만적인 로맨틱 코미디다. 보스턴 레드삭스 팬과 기적적인 2004년 시즌을 포함하고 있지만 야구영화는 결코 아니다. 서로 다른 성격의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다투고, 화해하는 정통 로맨스의 길을 걷는다. 단순히 감정적인 언어만을 남발하지 않는, 마음으로 홈런을 치는 남녀의 진짜 로맨스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리뷰] ‘날 미치게 하는 남자’

고등학교 영재담당 수학선생 벤(지미 팰론)은 현장 수업에서 유능한 비즈니스 컨설턴트 린지(드류 베리모어)를 만난다. 벤은 첫 만남에서 그녀에게 끌리고 데이트 신청을 한다. 너무도 차이가 나지만(월급, 외모에서도 분명 차이가 있다) 둘의 사랑은 무르익는다. 그렇지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자 둘 사이를 훼방 놓는 경쟁상태가 나타난다. 사람이 아니다. 보스턴 레드삭스라는 야구팀이다. 벤은 24시간 레드삭스에 미쳐 사는 ‘골수팬’으로 23년 동안 순애보를 지켜왔다.

대부분의 로맨스 코미디 영화처럼 중반을 지나면서 두 사람의 불화가 시작된다. 여자는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는 것보다 레드삭스의 플로리다 전지훈련 캠프를 찾아가는 남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단순히 게임일 뿐이라며 설득하지만, 벤에게 야구는 교주와 같다. 그녀의 눈에 벤의 아파트는 레드삭스의 기념품을 파는 가게처럼 보인다. 스크랩을 비롯해 각종 기념인형, 티셔츠, 수건에는 레드삭스의 마크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심지어 전화기는 야구 글러브 모양새며 벽장엔 정장보다 선수의 번호가 새겨진 레드삭스의 유니폼들로 자리를 채우고 있다.

[영화리뷰] ‘날 미치게 하는 남자’

영화초반 벤은 완벽한 남자같다. 린지가 아플 때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며, 자고 있는 동안 화장실 청소까지 깔끔하게 해 놓는다. 익살맞고 지적이며 대인관계도 원만하다. ‘이유 없는 싱글은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그렇지만 야구 시즌이 돌아오자 그는 180도 바뀐다. 모든 스케줄과 대화는 레드삭스와 궤를 같이 한다. 처음엔 열정 있어 보이던 벤의 이런 모습은 점점 광적인 집착으로, 추종자로 비쳐진다. 린지는 벤이 자기보다 레드삭스를 더 사랑하고, 그와 이미 결혼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는다. 사실 벤에게 있어 야구는 살아가는 열정이며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다.

영화는 남자가 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여자가 남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비교해 보여줌으로써 현대인의 사랑 감정을 가볍게 건드린다. 겨울남자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여름남자는 야구를 사랑한다. 과연 여자는 이를 받아들일까? 영화는 사랑하는 이를 이해하고 그가 하는 것을 같이 좋아해 줄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있다.

평범한 연애담을 야구와 섹스를 결합시켜 풀어낸 연출력이 돋보인다. 더구나 실제 월드 시리즈 경기장에서 이뤄진 촬영은 2004년을 기억하는 야구팬들에겐 엄청난 선물이다.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2000), ‘어바웃 어 보이’(2002) 처럼 닉 혼비의 원작을 영화화했다. 연출은 할리우드의 괴짜라는 패럴리 형제. 패럴리 형제의 가장 성숙한 영화로 기억될 듯하다. 만약 크레디트에 그들의 이름을 보지 않았으면 아마 이것이 화장실 유머의 왕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10월 7일 개봉.

<미디어칸 장원수기자 jang7445@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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