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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사무라이’… 떠밀린 삶. 처절함 혹은 공감

[영화]‘황혼의 사무라이’… 떠밀린 삶. 처절함 혹은 공감

황혼의 사무라이

감독 야마다 요지|출연 사나다 히로유키·미야자와 리에

때는 메이지유신 직전, 그러니까 봉건 중세와 근대의 충돌이 시작될 무렵이다. ‘국화’와 ‘칼’이 각자의 향과 날을 표면에 드러내며 일본 사회문화의 새 원형이 태동되던 시기. ‘황혼의 사무라이’의 요체는 여기에 있다. 제목의 ‘황혼’은 주인공이 근무를 마치면 집안을 보살피기 위해 늘 정시에 퇴근한다는 의미와 함께 쇠퇴기에 접어든 무사 시대를 뜻하는 중의적 표현이다. 영화는 격동 속의 황혼을 맞은 사무라이를 통해 거대 구조 속에 의지와는 다른 일을 겪고 행해야 하는 개인의 고초를 통찰한다. 그 방식이 지혜롭고 묵직해서 장인의 솜씨가 느껴지는 이 영화는 2002년 일본 아카데미 작품상 등 10여개 부문을 휩쓸고 그해 키네마 준보 선정 일본 최우수 영화에 뽑힌 수작이다.

사무라이 신분이지만 아내는 폐병으로 세상을 뜨고 치매 어머니와 어린 두 딸을 부양하는 세베는 꾀죄죄하기 짝이 없는 하급무사다. 아내 병치레에 빚만 늘어나고 밭일에 부업까지 해야 겨우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생활인’ 세베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막부 통치의 규율과 제도. 채소와 꽃을 키우고 두 딸이 자라나는 것을 보는 것이 삶의 낙인 이 사무라이에게 검을 휘두르고 할복을 하는 결기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여자 아이에겐 글공부를 시키지 않던 시절 “글을 읽으면 세상을 읽는 힘이 생긴다”며 딸에게 논어를 읽히고, 집안 어른이 당사자 얼굴도 보이지 않고 혼사를 진행하던 시절 재혼을 강권하는 큰삼촌에게 “결혼이 가축 들이는 일도 아니고, 여자한테 무례한 일”이라면서 거절한다. 하지만 격동하는 세상은 세베를 농사꾼으로 남도록 가만두지 않는다. 절친한 친구의 여동생이자 소꿉동무였던 도모에가 신분 높은 가문에 시집 갔다가 술주정뱅이 폭력 남편에게 시달린 끝에 당당히 이혼한 이후, 도모에를 도와 전근대적 남편과 맞서게 된 세베는 점점 시대의 격랑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영화]‘황혼의 사무라이’… 떠밀린 삶. 처절함 혹은 공감

이 영화의 감독이 일본 내 기록적인 장수 시리즈 ‘남자는 괴로워’를 만든 야마다 요지라는 점을 떠올리면 말단 샐러리맨과 다르지 않은 세베의 일상이 쉽게 이해가 된다. 빈부차 혹은 가난이 주는 고통과, 노동을 통해 밥벌이하고 안분지족하는 주인공의 면모에선 감독의 좌파적 시각도 엿보인다. 어머니의 죽음을 맞는 5살배기 딸의 독백에서 시작해 수십년 뒤 중년이 된 딸의 회고로 끝 맺는 영화는 자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버지 세베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시대와 시대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도 꾀하고 있다.

막부에 의해 숙청 대상이 된 늙은 무사와 세베의 종반 결투신은 이 영화의 아름다움이 집결돼 있는 장면이다. 서로 칼을 맞대지만 다를 바 없는 처지에서 파적(破寂)의 미학을 선보이는 두 사무라이의 교감이 마음을 울린다. 15세 관람가, 상영 시간 128분, 8일 개봉.

〈송형국기자 hank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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