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 칼럼]김계관이 프로듀서스를 본 까닭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프로듀서스는 두 뮤지컬 제작자가 세상을 상대로 사기치는 내용이다. 우리는 프로듀서스 밖의 세상에도 그런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지금 그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투자자의 돈 털 궁리?-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변신이 모두에게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어떤 이들에게 부시의 변신은 불쾌한 사건일 뿐이다. 그런 이 가운데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있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대북정책을 전환하면서까지 2·13 북핵합의를 도출한 부시 대통령의 변신을 따졌다. 그의 주장에는 경청해 볼 만한 대목이 있다. 그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핵프로그램 존재 가능성을 ‘높은 신뢰도’로 평가하던 미정부가 2·13합의 이후 ‘중간 수준 신뢰도’로 낮춘 점을 비판했다. 평가를 낮췄다면, 그 변경 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미정부는 새 증거를 제시하거나, 기존 사실을 번복하지도 않고, 신뢰도를 낮췄다. 말이 안된다. 이것이 볼턴의 문제제기이다. 북핵 2차 위기가 왜 발생했는가. 바로 HEU때문이었다. 미중앙정보국(CIA)은 2002년 11월19일 의회에 이렇게 보고했다. ‘북한이 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하는 공장을 건설중이다. 2005년이면 공장을 완전 가동해 매년 두개 이상의 핵무기를 생산할 것이다.’ 이 정보를 근거로 부시는 대북 중유공급을 중단, 제네바협정을 파탄냈다. 한국은 그런 조치가 핵동결해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렸지만, 부시는 듣지 않았다. 예견된 대로 북·미는 대결로 치달았고, 한·미관계는 균열되고, 한반도 긴장은 높아갔다. 김정일은 미국이 족쇄를 풀어준 덕에 영변핵시설을 재가동해 플루토늄량을 늘리고, 미사일 발사도, 핵실험도 다 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HEU문제는 별 게 아니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2002년 10월 통역자로서 제임스 켈리와 함께 방북했던 김동현 고려대 교수의 증언이 그 의문을 조금은 풀어준다. 그에 따르면 HEU문제는 제네바협정을 깨기 위한 구실일 뿐 부시는 이미 김정일과 대결하기로 결정했었다고 한다. 과연 부시는 바라던 대로 김정일과 원없이 대결다. 그러나 김정일을 굴복시킬 수도, 바꿀 수도 없었다. 변한 것은 부시였다. ‘북한과 양자대화 하지 않는다’ ‘잘못된 행동에 보상없다’ ‘선핵폐기없이 협상없다’는 부시의 원칙은 지금 다 깨졌다. 중유 제공, 경수로 공급문제는 다시 살아났다.

볼턴의 주장대로 사태가 이렇게 된데 대해 부시는 미국인에게 해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4년 5개월간의 대소동으로 한국인에게 고통을 준 것에 대해서도 뭔가를 해야 한다. 사과를 하면 좋지만, 행동이 더 낫다. 북·미관계 개선의 길을 흔들림없이 가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뒤따르라는 것이 아니다. 클린턴의 제네바협정은 북한 붕괴라는 잘못된 전제 아래 핵동결이란 제한된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었지만, 2·13합의는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핵을 폐기한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그는 이미 클린턴을 뛰어 넘었다.

-북·미 ‘핵 뮤지컬’ 대박 꿈꿔-

성급한 이들은 북·미간에 수교프로그램이 다 짜여져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겨우 BDA문제 해결이라는 첫 단추를 채우기 시작했을 뿐이다. 비핵화와 북·미수교는 지금 딸 수 있는 과실이 아니다. 핵시설 폐쇄도 남아 있고, 불능화도 남아 있다. 그리고 핵폐기가 있다. 결과는 미리 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밟은 뒤에나 알 수 있는 그런 것이다. 김정일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있을 것이다. 김정일과 부시 두 사람이 복잡한 관계정상화의 경로를 참을성 있게 차근차근 밟아나갈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다만,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지난주 북·미협상차 뉴욕을 방문할 때 관람했던 뮤지컬 프로듀서스에 암시가 있을지 모른다. 김정일·부시의 핵대결이 한반도 평화에 투자했던 수많은 사람을 곤경에 빠뜨린 것처럼 프로듀서스의 두 뮤지컬 제작자도 최악의 뮤지컬로 투자자의 돈을 털 궁리를 한다. 공연을 망치면 투자자에게 이윤을 주지 않아도 되므로 투자금을 챙길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그리고 김정일·부시가 그런 것처럼 두 제작자도 최악의 시나리오, 최악의 배우, 최악의 연출자를 동원해 최악의 공연을 준비한다. 그러나 최악의 뮤지컬은 훌륭한 풍자극으로 소문나면서 대박을 터뜨린다. 김정일·부시도 핵실험이란 최악의 상황에서 대화를 시작했다. 그들의 합작품이 이제 막 베이징의 무대 위에 오르고 있다. 그들도 박수를 받을 것인가.

〈이대근/정치·국제에디터〉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