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슨 매컬러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산수유나무에 꽃이 핀 것을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 검은 빛 가지에는 푸른 잎사귀 하나 없는데, 노랗고 작은 꽃잎들이 싹처럼 돋아나 있다. 놀랍도록 가냘프고, 놀랍도록 굳건하다.

[책읽기 365] 카슨 매컬러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봄은 그렇게 갑자기 온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수수한 꽃들이 태연히 검은 가지에서 태어나는 순간. 거역 못할 부드러움을 품은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순간. 모든 단단한 것들, 죽은 것들의 껍데기를 뚫고 여린 것들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해마다 오는 계절인데도 그때마다 놀라는 것은, 봄이 생명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일까.

카슨 매컬러스의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문학세계사)을 읽은 것은 지난해 이맘때였다. 소설의 배경은 여름이지만, 그래선지 앙상한 겨울나무에 잎사귀 없이 핀 꽃 같은 인상으로 새겨져 있다. 매컬러스는 줄리아드에 진학하기 위해 뉴욕으로 갔지만, 등록금을 잃어버리며 글쓰기의 길에 들어섰다. 세상을 떠나기까지 뇌출혈, 심장발작 등의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펜을 놓지 않았던 그녀가 스물두 살에 발표한 첫 작품이 이 책이다. 여섯 명의 인물들이 고독 속에서 숭고함을 갈망하다 좌절하는 과정이 독특한 슬픔이 어린 문체로 그려졌다.

생명은 얼마나 이상한 힘을 가진 것이기에, 그토록 고통에 찬 삶을 보낸 사람의 손끝에서 이토록 강렬한 갈망의 몸짓을 태어나게 한 것일까. 마른 가지 같은 생애에서 서둘러 피워낸 이 꽃의 진실함. 가냘프면서도 굳건한, 한없이 정직한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숙연히 마음이 흔들렸던 기억이 난다.

〈한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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