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 울리는 종부세

이정우|경북대 교수·경제학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조마조마하더니 기어코 이명박 정부가 큰일을 저지를 모양이다. 지난번에는 미국 가서 쇠고기 수입을 덜컥 선물로 주더니 이번에는 우리나라 최고 땅부자들에게 매년 2조원을 선물로 주겠다고 한다. 종부세를 이름만 남기고 아예 없애겠다는 것이다. 종부세 과세기준을 6억원 초과에서 9억원 초과로 올리고, 세율은 대폭 낮추고, 더구나 나이 많은 땅부자들에게는 추가적 세금감면까지 하겠다고 한다. 말이 안 돼도 정도가 있지, 이건 무리와 반칙의 진열장이다. 이렇게 되면 종부세는 유명무실한 존재가 된다. 집은 수십억원대인데, 나이가 많아서 종부세 낼 소득이 없다면 매각이나 상속 때까지 세금을 연기해주면 될 일이지 나이 많다고 세금을 바겐 세일하는 것은 기상천외한 발상이다. 종부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걸핏하면 징벌적 과세, 세금폭탄, 좌파정책, 이런 주문을 외우고 다닌다. 하지만 이 중 맞는 말은 하나도 없다. 어떤 경제학 교과서를 보더라도 수많은 세금 중 이론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세금은 토지 보유세라고 되어 있다. 과다한 세금을 반대하는 시장만능주의 우파 경제학의 원조 밀턴 프리드먼조차 세금 중에서 가장 덜 나쁜 세금이 토지 보유세라고 찬양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종부세를 좌파정책이라니.

- 땅부자들 위한 2조 ‘선물’ -

[시론]조종 울리는 종부세

종부세가 도입된 이후 나아진 점은 스스로의 노력 없이 땅값 폭등으로 생긴 수억, 수십억원대의 불로소득에 대해 당연히 내야 할 최소한의 세금을 내게 된 것이다. 사필귀정이다. 우리의 고질병인 부동산 투기의 신화가 무너지는 좋은 징조가 여기저기 나타나는 것도 그 밑바닥에는 종부세가 있다. 광란의 부동산시장이 이제 겨우 안정세를 보인다고 그 사이 망국적 부동산 투기의 역사를 다 잊었단 말인가. 종부세의 조종(弔鐘)이 울리고 있는데, 토지 보유세가 옳다고 가르쳐온 경제학자들은 다 어디로 갔나. 종부세가 과중한 부담을 주는 것도 결코 아니다. 종부세 도입에도 불구하고 땅부자들이 내는 부동산 세금은 선진국의 절반도 안 된다. 선진국의 부동산 소유자들은 대략 1%의 재산세를 내고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한국의 땅부자들은 0.3%의 세금에도 아우성이다. 역대 정부가 이들에게 지나치게 세금을 봐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는 종부세가 너무 무거운 게 아니고, 과거 내던 재산세가 너무 낮았던 것이다. 만일 종부세 후퇴가 현실이 된다면 매년 세수가 2조원 이상 줄어들 텐데, 이 돈은 어떻게 하나. 세수 결손을 메우려고 다른 세금을 2조원 더 걷는다면 이는 우선적으로 과세해야 할 좋은 세금을 줄이고, 부작용이 큰 나쁜 세금을 늘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조세 부담의 형평성을 따지더라도 종부세 후퇴는 불공평 과세로 가는 지름길이다. 최고 부자 2%에게 안겨준 2조원의 선물은 결국 중산층, 서민의 부담이다. 그 수혜자 속에는 장·차관, 국회의원, 청와대 참모들이 즐비하다. 이러고도 민심이 떠나지 않는다면 그건 기적이다. 중국 옛말에 “왕은 배요, 백성은 물이라.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고 했다. 물은 성질이 순하지만 배가 물을 무시하면 배가 뒤집히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우리나라 부동산 부자들은 땀 흘려 일하는 정직한 사람들이 평생 고생해도 만질 수 없는 거금을 공짜로 벌어놓고도 그 불로소득의 1000분의 3도 세금으로 내기 싫단다. 전 재산을 사회에 쾌척하고,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을 보라.

- 불공평 과세로 가는 지름길 -

오로지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우리나라 부자들은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나라 걱정은 하지 않고 지역구 인기만 생각하는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세금폭탄’이란 말도 안 되는 말을 만들어내 땅부자들을 자극해온 보수언론들이 더욱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최소한의 의무조차 외면하는 부자들, 양식 없는 보수언론, 이들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이명박 정부, 이런 사람들이 지배하는 한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기는 요원하다. 이들은 입으로는 선진화를 외치면서 행동은 역주행이다. 선진국이 되고 안 되고는 소득수준에만 달린 게 아니다. 사람들의 수준에 달려 있다. 특히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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