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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인문사회과학 없이는 ‘AI 강국’도 없다
    인문사회과학 없이는 ‘AI 강국’도 없다

    지난주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키디데스 함정’을 넘어선 협력을 제안한 것은, 중국이 경제력과 군사력을 넘어 마침내 미국과 대등한 반열에 올랐음을 대내외에 선언한 장면이었다. 이러한 급부상의 배경에는 세계를 뒤흔든 ‘딥시크(DeepSeek)’를 비롯한 중국형 소버린 인공지능(AI)의 도약과 이를 뒷받침한 정부의 파격적인 전략 지원이 자리하고 있다.한국도 반도체와 서버, 개발자 수만으로는 한국형 AI를 만들 수 없다. 한국 사회의 언어와 역사, 제도와 상식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지식 기반이 함께 구축돼야 한다. AI 시대일수록 인문사회과학은 변방이 아니라 중심에 있어야 한다.AI 경쟁이 격화할수록 각국은 기술뿐 아니라 지식과 정보 체계까지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 전쟁과 공급망 위기, 기술 패권 경쟁은 이제 누가 더 빠른 기술을 갖느냐를 넘어, 누구의 기준과 가치로 세계를 해석하느냐를 겨루는 단계로 들어섰다. 이런 시대에 한국...

    2026.05.20 20:18

  • [시론]모든 정치는 지역적이어야 한다
    모든 정치는 지역적이어야 한다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팁 오닐 하원의장은 ‘모든 정치는 지역적이다(All politics is local)’라는 말을 자주 했다. 정치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역 기반이 중요하고 주민들과 밀착된 정치 활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치 초년병 시절 동네 주민들이 당연히 지지해줄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선거운동을 소홀히 하다가 아깝게 낙선했을 때 그의 아버지가 건넨 조언에서 비롯된 소신이라고 한다.6·3 지방선거가 두 주 앞으로 다가왔는데, 여기에서 선출되는 지자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은 오닐 의장의 소신을 말 그대로 실천해야 하는 정치인들이다. 지자체장들은 공무원 조직을 지휘해 자신이 책임진 지역의 발전 방향을 정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며, 의원들은 지자체장과 집행부를 감시하고 민원을 해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국가 전체의 일을 주로 다뤄야 할 국회의원이 시군구 의원이 처리할 법한 작은 지역 현안에 매몰되는 것이 문제라면, 역으로 지자체장과 ...

    2026.05.18 20:12

  • [시론]4월에야 받아보는 교과서
    4월에야 받아보는 교과서

    15년여 전, 연세대 캠퍼스의 고즈넉한 담장과 넝쿨로 덮인 건물 옆에 나무 덱으로 만든 휴식 공간이 들어섰다. 그런데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장애 학생들은 계단 때문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학교는 뒤늦게 새 시설 일부를 뜯어 긴 경사로를 만들었다. 처음부터 장애인을 고려했다면 다시 공사할 필요도 없었고 비용도 훨씬 적게 들었을 것이다. 그 후 대학은 학내 모든 건물의 신축, 증개축 설계 과정에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의견을 듣도록 했다.덱 문제는 한 번의 재공사로 해결됐다. 그러나 해마다 같은 일이 반복되는 곳이 있다. 점자교과서다. 비장애 학생들은 2월 말이면 새 교과서를 받지만, 통합교육이 이루어지는 교실의 시각장애 학생은 3월이 지나서야 전 과목 교과서를 받아든다. 교육부가 2월 초 검인정과 최종 점검을 마치면 교과서 출판사가 인쇄에 들어가고, 그때서야 점자교과서 제작사는 파일을 넘겨받는다. 초중고 교과서는 모두 합치면 약 2000종에 이른다. 학교와 과목별로 사용하는 교과서...

    2026.04.27 19:54

  • [시론]우리는 ‘기후 유권자’다
    우리는 ‘기후 유권자’다

    역대 최고 기온이 해마다 경신되고, 예측하기 어려운 폭우와 가뭄이 더 이상 뉴스 속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여름이면 폭염에 지쳐 쓰러지는 이웃을 보고, 장마철이면 극한 호우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들의 소식을 접한다. 이제 기후위기와 기후재난은 과학 잡지의 표지나 먼 미래 세대에게 떠넘길 숙제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의 식탁 물가를 흔들고, 주거 안전을 위협하며, 일자리의 지형까지 바꾸어놓는 생존의 문제다.그러나 우리의 정치는 어떠한가. 이 거대한 파도 앞에서 여전히 무심하고, 무감각하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무책임하다. 정치권은 선심성 개발 공약으로 표를 좇고 단기적인 정쟁에만 몰두한 채, 기후위기의 실체를 외면한다. 사회 근간을 흔드는 변화 앞에서 손을 놓고 있다. 이런 무능과 태만을 깨울 수 있는 유일한 열쇠, 오직 유권자의 손에 달려 있다.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과연 ‘기후 유권자’인가....

    2026.04.22 20:09

  • [시론]도그마에 빠진 검찰개혁, 제2의 윤석열 부르는가
    도그마에 빠진 검찰개혁, 제2의 윤석열 부르는가

    2024년 미국에서 트럼프가 부활했다. 미국 진보 진영이 ‘정치적 올바름’(PC주의)이라는 도그마에 매몰된 채 대중의 삶과 현실의 문제를 외면한 탓이다. 이념적 선명성에 치우친 정치가 역풍을 불렀고, 전 세계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이재명 정부는 정치검찰의 표적·별건 수사를 가능케 한 핵심 권한인 수사개시권을 폐지했다. 그런데 불똥이 민생 수사와 밀접한 보완수사권으로 번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여러 차례 보완수사권의 예외적 필요성을 언급했고, 제한적 보완수사권이라는 대안이 제시됐지만, 여당 일각에서 완전 폐지 주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우려스럽다. 맹목적 도그마가 트럼프를 불러냈듯, 현실을 외면한 교조적 개혁은 오히려 ‘제2의 윤석열’을 낳는 토양이 될 수 있다.수사와 재판은 대면을 원칙으로 한다. 표정과 말투, 몸짓을 관찰해야 서류만으로는 알 수 없는 진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직접심리는 현대 공판중심주의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런데 보완수사권이 완전히...

    2026.04.15 19:57

  • [시론]콘텐츠 전성시대, 이야기와 서사의 위기
    콘텐츠 전성시대, 이야기와 서사의 위기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기술의 진보와 함께 만개한 글로벌 OTT 시대, 화려하고 밀도 높은 K콘텐츠의 서사에 피로를 느낀 대중은 오히려 새로울 것 없어 보이는 역사 기반의 인간적 이야기와 만듦새를 둘러싼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뜻밖의 공명을 보였다.특히 실패한 인물에 대한 동일시와 상상은, 일상에서 몸과 마음이 소진되고 정서적 허기를 느끼는 오늘날 대중의 감각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공감은 입소문으로 이어지며, 이른바 영화와 극장이 위기에 직면한 시대에 하나의 반전 신호를 만들어냈다. 초기에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휴민트>와의 경쟁 구도가 예상됐고, CG와 일부 출연자의 연기에 대한 아쉬움도 제기됐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진솔한 서사의 힘으로 3월 말 기준 한국 영화 역대 관객 수 3위라는 기록을 세웠다.동시에 이 현상은 콘텐츠가 주도하는 문화 시대의 긴 그림자를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낸다. 연출과 완성도를 둘러...

    2026.04.08 19:57

  • [시론]BTS, 백기완, 오세훈
    BTS, 백기완, 오세훈

    BTS와 백기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기이한 조합이다. 사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K팝 그룹 BTS와 민중운동의 산증인이자 뛰어난 민중예술가로 ‘재야의 큰어른’ 역할을 해온 고 백기완 선생은 별 관련이 없다. 이 둘을 연결시킨 것은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오 시장과 서울시는 BTS의 공연에는 사실상 ‘초법적 특혜’에 가까운 방식으로 광화문광장을 통째로 내어주면서도, 가수 정태춘 등 ‘진보 예술가’들이 5월1일 노동절 전야제로 준비하고 있는 ‘백기완 문화예술 한바탕’에는 광장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이 문제는 이 두 행사를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이자 상징인 ‘광장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들고 있다BTS는 K컬처의 상징이자 자랑스러운 문화상품으로 나 역시 그들을 열렬히 응원한다. 하지만 이들의 공연을 위해 소속사인 하이브에 광화문광장 전체를 단돈 3000만원에 통째로 빌려주고 지방 구급대원까지 포함해 1만여명의 공무원을 근무시간이 아닌 주말...

    2026.04.06 20:00

  • [시론]왜 지금 개헌인가
    왜 지금 개헌인가

    현대 민주주의 이론가 중에서 로버트 달은 첫손가락에 꼽힐 정치학자다. 미국정치학회장을 지낸 그는 말년에 자기 나라의 헌법에 관심을 가졌다. 86세에 출간한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에서 달은 미국 헌법과 정치 문화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는 헌법 제정자들을 건국의 아버지로 떠받들고, 헌법을 신성한 문서처럼 숭배하는 것이 미국 민주주의의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미국의 헌법 제정자들은 정당의 출현이나 보통선거권 같은 현대 민주주의의 변화를 예견하지 못했다. 그들이 만든 헌법은 민주주의의 확대가 아니라, 오히려 다수의 지배를 견제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여성과 노예, 무산자에게는 참정권을 주지 않았다. 선거권이 확대되긴 했지만, 대통령은 여전히 선거인단이 간접선거로 선출한다. 미국이 우리 같은 직선제를 택했다면, 조지 W 부시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상원 의석의 배분도 인구 비례와 관계가 없다. 선출되지 않은 종신 대법관들이 의회의 입...

    2026.03.16 20:00

  • [시론]‘민주시민교육’은 경험이다
    ‘민주시민교육’은 경험이다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시민이 공적 사안을 이해하고 참여할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최근 탄핵 국면에서 시민들이 헌법적 가치를 지켜낸 경험은 민주주의의 위기가 제도보다 시민의 판단과 행동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었다. 민주시민교육 강화도 학생들이 ‘관전자’가 아니라 ‘판단하는 주체’로 성장하도록 돕는 과제다. 그러나 선언만으로 역량이 길러지진 않는다. 핵심은 민주주의의 현재를 학생의 판단과 참여 경험으로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있으며, 이런 성찰 없이 해법부터 제시하는 접근은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을 놓칠 위험이 크다.이러한 위험은 국가교육위원회 민주시민교육특위와 교육부 학교시민교육자문위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도덕·윤리 전공 비중이 높은 것은 정치와 민주주의를 교실의 경험으로 조직해온 시민교육 전문성이 중심에 놓여 있는지 묻게 한다.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은 학생들이 현실의 정치·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갈등 속에서 판단하며 토론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있다. 그러나 현재의 ...

    2026.02.26 20:04

  • [시론]새 학기 교과서 없는 시각장애 학생 방치는 위헌
    새 학기 교과서 없는 시각장애 학생 방치는 위헌

    1983년 봄, 청와대 인근 서울맹학교에서 잠시 고등부 1학년생 네댓 명을 상대로 방과후 공부를 가르친 적이 있다. 당시 맹학교는 침술과 안마를 가르치는 기관이라 다른 직업을 갖고자 대학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은 별도로 영어, 수학 등을 배워야 했다. 대학생이던 나는 그들의 책을 보고 기겁했다. 한 손에 들어오는 영한사전이 점자책으로는 서가를 가득 채울 만큼 방대했다. 알파벳 ‘A’ 한 편이 일반 사전보다 두꺼워 사용 후 제자리에 꽂아두지 않으면 사전으로 기능할 수도 없었다.일반학교에서 2월 말 배포되는 새 교과서가 맹학교 학생들에게는 1학기 중, 심지어 여름방학이 지나서 제공된다는 사실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인쇄된 교과서가 나온 후 비로소 점자교과서 제작에 들어가는데, 민간기관이나 봉사단체의 수작업에 의존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공부하고 싶어도 읽을 책이 없는, 그야말로 책 기근(book famine)의 참담한 현장이었다.통합교육이 본격적으로 실시된 2...

    2026.01.05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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