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늘 좋기만 한걸까?

백승찬기자 myungworry@kyungh

(35) 럼 샷·크리스마스 이야기

가족의 울타리가 편합니까, 징그럽습니까.

오늘 끝나는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2편의 프랑스 영화를 보았습니다. 공교롭게도 2편 모두 가족 이야기를 다루는데, 그 양상이 무척 대조적입니다.

럼 샷

럼 샷

클레르 드니의 <35 럼 샷>은 애정 깊은 부녀를 중심에 둡니다. 때론 부녀가 아니라 부부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없는 이유는 영화 후반부에 나옵니다. 부녀 사이가 너무 끈끈하게 붙어있다보니,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는 이들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아르노 데플레셍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의 가족은 한 마디로 ‘콩가루’입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아빠의 아내’라고 부릅니다. 어머니와 딸은 말썽쟁이 아들에게 냉랭하다 못해, 어떻게든 집에서 쫓아내려고 안달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이 골치 아픈 가족이 모여서 이런 저런 소동을 겪는다는 내용입니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대체 왜 이들이 굳이 한 자리에 모여 싸움박질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 지경입니다. <35 럼 샷>은 올해 베니스,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칸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여 호평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가족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는 데서 비롯합니다. 누군들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 사이에서 태어나고 싶지 않겠습니까만, 그건 선택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아무리 못나도 내 자식, 아무리 꼴보기 싫어도 내 부모입니다. 그렇게 하늘이 정해준 울타리인 가족 안에서 우리는 삶을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언젠가 분리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자던 첫날 밤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좁은 하숙방에서 불을 끄고 누운 순간, 전 세상에 무방비로 홀로 내쳐진 기분이었습니다. 세상이 맹수처럼 달려들어 제 육신과 영혼을 갈갈이 찢어놓으려 할 때, 아무도 절 감싸주지 않을 듯 두려웠습니다. 밤은 영원하고 아침은 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이야기

크리스마스 이야기

하지만 가족과의 분리는 아프지만 적절한 선택이었습니다. <35 럼 샷>은 가족과 떨어지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평생 사랑하는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 삶의 궤적은 그걸 허용하지 않습니다. 딸이 이웃집 사내와 결혼한 그날, 아버지는 묵묵히 피로연장에 앉아있습니다. 그리고 35잔의 럼을 들이켜는 자신만의 의식을 치릅니다. 마치 독한 술을 들이켠 채 수술의 아픔을 견디는 거친 사내처럼 말이죠.

반면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가족과의 완전한 분리는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정말 증오하는 타인이라면, 크리스마스 같이 소중한 명절은 물론 평소에도 아예 만나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나 이 가족은 결국 한 자리에 모입니다. 잊고 살면 그만이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이름이 가족입니다. 굳이 만든 것도 아닌데, 그 인연 한번 끈끈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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