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을 낚아라’…영화계 입소문 마케팅을 쏘다

시사회 입소문을 통해 하반기 흥행에 안착한 영화 <과속스캔들>, <미인도>의 장면.

시사회 입소문을 통해 하반기 흥행에 안착한 영화 <과속스캔들>, <미인도>의 장면.

직장인 김모씨(34)는 주말에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 한 포털 사이트의 영화평점을 보고 결정했다. 9점을 훨씬 웃도는 높은 평점에 끌려 선택을 했지만 영화를 보고 난 소감은 “왜 이 영화가 평점을 9점이나 받았을까”하는 의문과 불쾌감뿐이었다.

최근 개봉한 외화가 온라인 입소문 ‘알바(아르바이트)’ 논란에 휩싸이면서 온라인 영화평점에 대한 문제점이 고개를 들었다. 결국 이 일은 영화카페 측의 실수로 빚어진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영화계는 해묵은 ‘알바를 동원한 입소문 마케팅’ 논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가슴을 쓸어내렸다.

영화전문 사이트 ‘무비스트’에서 ‘네티즌 평점 알바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나요’라는 논쟁에서는 대다수의 네티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포털의 네티즌 평점에 대해 의구심을 보냈다. 이런 네티즌의 의혹은 결국 특정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며 포털에 별 다섯 개의 호평을 남기거나, 별 한 개의 혹평을 남길 경우 ‘혹 알바가 아니냐’라는 의심까지 받는 촌극이 발생한다.

이에 대해 한 영화 홍보 관계자들은 “요즘 알바를 써서 평점 조작을 할 만큼 홍보 마케팅이 미련하지도 않으며, 또 그렇게 할 만 한 돈도 없다”며 “언론에서 계속 알바 논쟁을 부추기는 측면이 강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인터넷을 통한 네티즌의 파괴력만큼은 실감한다고 밝혔다. 일단 온라인상에 논쟁의 붙으면 그 영화는 흥행 대박은 아니더라도 손해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보하는 사람들이 인터넷 상의 20자평 평점쓰기나 예고편 보기 이벤트에 시사회 티켓을 걸고 진행하는 것도 온라인의 빠른 확산과 파급력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알바 몇몇이 대세를 바꿀 수는 없다” -

입소문 홍보로 가장 보편적이고 널리 사용되는 것이 시사회. 대개 영화는 개봉 전에 기자와 배급사 등 영화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자·배급시사회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시사회를 진행한다. 기자 시사회가 끝난 뒤에 홍보 관계자들은 극장 출구에 서서 “영화 어땠냐”는 질문을 한다. 영화가 별로라고 느낀 기자들은 “영화 잘 봤습니다”라며 자리를 황급히 피하고, 감동을 받았거나 만족을 느낀 기자들은 “영화 괜찮던데요”라고 답한다. 후자의 말을 들을 때 홍보 관계자들의 얼굴엔 화색이 돈다. 그렇지만 전자의 말을 들었을 때, 밤늦게까지 색다른 홍보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짠다.

한 영화 홍보사 관계자는 “기자들과 극장 관계자들이 입소문 마케팅의 첫 단추이자, 실제 마케터들”이라며 “보통 그 영화가 흥행이 될 지, 안 될지는 기자시사회가 끝난 뒤 4시간도 안 돼 충무로에 쫙 퍼진다”고 말했다.

영화가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다고 생각하면 보통은 일반인 대상 시사회를 적극적으로 유치한다. <과속스캔들>은 개봉 전 진행된 5만 명 시사회와 유료 관객들의 입소문을 통해 “재미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면서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흥행 가속도를 붙였다.

220만명 이상을 동원하며 하반기 흥행작으로 인기를 끌었던 <미인도>는 시사회를 통해 “야하다” “노출신이 장난 아니다”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장기 흥행 레이스를 달렸다. 이런 입소문은 30대 후반 중장년층 여성을 극장으로 발길을 돌려놓게도 만들었다. <미인도>의 관계자는 “30대 여성관객들의 많은 지지를 받아 흥행몰이에 성공했다”며 “신윤복의 격정적인 사랑이 여성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입소문이 난 것 같다”고 밝혔다.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시사회에서의 좋은 평가에만 기대해서는 안 된다. 과거에는 신문·방송·잡지 등의 리뷰에 영향을 받아 영화를 선택했다면, 요즘 관객은 수많은 매체의 정보를 취합해 스스로 선택한다. 따라서 기자들의 리뷰보다 인터넷에 올라온 다른 관객의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최근 블로그나 카페에 영화감상문을 올리는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 다각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자발적으로 다른 관객에게 영화의 완성도를 직접 커뮤니케이션하도록 유도하는 온라인 마케팅 효과가 확인되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네티즌이 자발적으로 이런 움직임을 보일 때 작은 영화가 뒤늦게 탄력을 받아 흥행돌풍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이를 두고 실체를 알 수 없는 입소문 효과라고 한다.

문제는 이런 입소문 마케팅 효과를 잡기 위해 주위 사람들의 추천인양 자사 영화띄우기가 행해지면서 평점 올리기나 칭찬 도배가 이루어지는 경우다. 한때 충무로에서는 경쟁 영화의 입소문을 떨어뜨리기 위해 그 영화에 대해 낮은 평점을 조직적으로 준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떠돌기도 했다.

이에 대해 대다수의 홍보 관계자들은 펄쩍 뛴다. “자기 영화에 대해 좋은 글을 올리거나 칭찬 메시지를 띄우는 경우는 있지만 그렇게 해봤자 기껏 한자리수 밖에 되지 않는다. 영화 대세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작품의 완성도와 입소문이 같이 가야 흥행-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소문 마케팅에 몰두하는 이유에 대해 한 영화 홍보 관계자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개봉이 다가오면 불안하다”며 “포털 사이트나 영화관련 사이트에 평점을 올리고 싶은 욕구가 안 생길 수 없다”고 밝혔다.

영화 홍보사 오락실의 이보나 실장은 “좋은 평가가 쭉 올라온다고 ‘알바’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호평이든 혹평이든 그 역시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성향일 뿐”이라며 “갈수록 연령 및 대상을 고려한 타깃마케팅 등 홍보가 다양화되는 측면은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작품의 완성도와 입소문이 같이 올라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화전문 사이트 ‘무비스트’의 서대원 편집장은 “언제부터인가 영화가 첫 주에 ‘죽고 사느냐’가 판가름이 나면서 입소문 마케팅에 더욱더 의존하게 됐다”며 “예전처럼 조직적이지는 않지만 이벤트 프로모션을 통해 자사의 영화를 띄워보려는 시도는 계속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홍보를 책임진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어떻게 보면 당연하겠지만, 이 과정에서 잘못 오역된 정보를 주거나 네티즌을 낚시질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장원수기자 jang7445@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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