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유시민·강상중…‘내 젊음을 뜨겁게 달구었던 책과 사유들’

김재중기자

지금의 청춘들에게 말을 걸다

“갈림길과 장애물이 나타날 때마다 도움 받았던 낡은 지도였다, ‘과거의 책’들은…”

청춘의 독서…유시민 | 웅진지식하우스
청춘을 읽는다…강상중 | 돌베개

[책과 삶]유시민·강상중…‘내 젊음을 뜨겁게 달구었던 책과 사유들’

책의 계절이다. 청춘의 뜨거움과 푸름을 담았던 책을 기억하고 계시는지. 장정일 시인은 ‘열 다섯 살,/ 하면 금세 떠오르는 삼중당 문고’라고 시작되는 시 ‘삼중당 문고’에서 ‘파란만장한 삼중당 문고/너무 오래되어 곰팡내를 풍기는 삼중당 문고/어느덧 이 작은 책은 이스트를 넣은 빵같이 커다랗게 부풀어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네’라고 읊었다. 그런가 하면 사계절 출판사 강맑실 대표는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최근호에 실린 글에서 “책이 경쟁사회에서 남을 누르고 이기는 도구로 전락해가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경험은 확장되고 생각은 깊이를 얻어야 한다. 그리하여 독서는 한 사람의 행동 변화, 더 나아가서는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는 힘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유력 정치인에서 ‘지식 소매상’으로 돌아온 유시민씨(50)와 도쿄대 최초의 재일 조선인 출신 교수 강상중씨(59)가 각각 내놓은 <청춘의 독서>(1만3800원)와 <청춘을 읽는다>(이목 옮김·1만2000원)는 공교롭게 겹친 출간시기와 헷갈릴 정도로 유사한 제목 외에도 닮은 점이 많다. 두 책 모두 그들의 청춘을 뜨겁게 달구었던 책들을 중년을 넘긴 나이에 꺼내들어 회고한다는 점에서 장정일적이고, 그 책들이 저자들의 사유를 넓히고 행동의 변화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강맑실적이다.

[책과 삶]유시민·강상중…‘내 젊음을 뜨겁게 달구었던 책과 사유들’

학생운동에 투신해 재적과 복학을 거듭하고 사회에 나와 칼럼니스트로서, 정치인으로서 항상 논쟁의 중심에 서 있던 유시민씨는 현재 재야에서 침잠하고 있지만 세인들은 그를 여전히 ‘정치적 화약고’로 바라본다. 그는 “날이 저물어 사방 어두운데, 누구도 자신 있게 방향을 잡아 발걸음을 내딛지 못한다”면서 자신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면서 “갈림길과 장애물이 나타날 때마다 도움받았던 낡은 지도” 14권을 호명했다. 이 책들을 읽었던 20~30년 전의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동시에, 대학 신입생이 된 그의 딸을 포함한 이 땅의 청춘들에게 말을 걸어보려는 시도다.

대학입시를 한 달 앞두고 읽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그에게 “가난의 책임이 나 한 사람뿐 아니라 사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안겨줬고, 대학 신입생 시절 지하서클 선배들의 권유로 읽은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벌거벗은 임금님’으로서의 미국에 눈뜨게 해줬다. 자취방의 침침한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을 읽고는 “조각배를 타고서 거센 너울이 일렁대는 바다에 나간 것처럼 온몸이 일렁”거림을 느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을 풀지 못했기에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도, 주사파도 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책과 삶]유시민·강상중…‘내 젊음을 뜨겁게 달구었던 책과 사유들’

그는 영등포 구치소에서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고는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지 편집자 서문에 인용된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시구를 자신의 항소이유서에 덧붙였다. 그는 25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아무리 혹독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지켜내는 사람. 땀 흘려 일하는 사람. 때로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이라 할지라도 인간에게 유용한 것을 만드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모습이 주는 감동”이 여전히 자신의 마음에 남아 있음을 발견한다.

재일 조선인으로 태어나는 순간 예고됐던 깊은 방황과 질곡을 10대 후반에서부터 20대 후반까지 온몸으로 경험했던 강상중씨가 써내려간 독서노트에는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 보들레르의 <악의 꽃>, T·K生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의 사상>,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담겨 있다. 자신이 젊은 시절 읽었던 책들을 통해 지금의 청춘들에게 말을 거는 것은 올해 상반기에 번역된 그의 책 <고민하는 힘>과도 맞닿아 있다. “현대라는 시대가 왠지 1960년대에서 70년대의 시대로 회귀하는 것 같은 느낌”도 그로 하여금 ‘과거의 책’을 다시 펴보게 했다

독서는 책의 저자,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독자인 내가 나누는 대화이다. 오래 전 읽었던 책을 꺼내 다시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나누는 대화이기도 하다. 1970~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이땅의 중년들은 최인훈(가운데 그림 위)과 리영희가 쓴 책들이 그들의 생각을 키우고 행동의 변화를 가져왔다며, 이땅의 젊은 청춘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일러스트 | 이강훈

독서는 책의 저자,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독자인 내가 나누는 대화이다. 오래 전 읽었던 책을 꺼내 다시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나누는 대화이기도 하다. 1970~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이땅의 중년들은 최인훈(가운데 그림 위)과 리영희가 쓴 책들이 그들의 생각을 키우고 행동의 변화를 가져왔다며, 이땅의 젊은 청춘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일러스트 | 이강훈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강씨가 열일곱 살 때 처음 접하고 “날카로운 언어의 칼이 나를 푹 찔러 심장을 깊숙이 도려내는 듯한 아픔과 함께 놀라움을 느꼈다”는 <악의 꽃>에 관한 부분이다. 존재를 스스로 파괴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여 있던 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천사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악마다. 천사를 바라지 마라. 우리는 악마를 바란다”는 보들레르의 분노와 퇴폐는 역설적이게도 어두움과 자살로부터 구원해줬다는 것이다.

‘독서의 계절이지만 사람들이 가장 책을 읽지 않는 계절’이라는 가을이다. 모두가 독서노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유년 시절 혹은 청년 시절 자신의 머리와 마음을 강타했던 책들을 꺼내보는 건 어떨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내가 이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책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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