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꼬물꼬물·뿌앙… 몸의 소리를 들어봐!

노경실 동화작가

세상을 읽는 책과 그림이야기

▲발가락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 논장

[세상을 읽는 책과 그림이야기](44)꼬물꼬물·뿌앙… 몸의 소리를 들어봐!

어제 오후, 붐비는 지하철에서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신종플루로 모두 예민해져 기침조차 눈치보며 하는데, 누군가 “뿌앙!” 하며, 전혀 조심스러워하거나 참으려고 애쓴 마음 결코 한 뼘도 없는 지독한 소리를 냈다. 여기저기서 비난의 소리가 들렸다. 심지어는 욕설마저 나왔다. 나도 얼굴을 찡그린 채 뻔뻔한 범인(?)을 상상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몸은 움직이고 있다. 눈을 깜빡이고, 코로 숨이 들어가고 나오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폐에서는 활발히 공기를 바꾸고, 심장은 쉴 새 없이 그러나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뻗어 있는 혈관을 통해 붉은 피가 순환하고, 아침·점심 식사를 한 위장은 바쁘게 분해작용을 하고….’ 내가 알고 있는 몸 안의 움직임이 대강 이 정도인데, 과학적으로 살펴보면 머리카락 움직임부터 뇌 속을 거쳐 발바닥 세포까지 그들의 쉼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우리는 몸 속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뿐이다. 만약 우리의 숨이 멈추면, 그들의 소리도 멈출 것이다. 아니, 그들이 소리 내지 않으면 우리도 생의 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이다.

<발가락> 그림책은 몸의 소리, 즉 몸의 마음을 잘 듣고 우리에게 사람의 말로 번역해서 들려주는 듯하다. 대부분 새끼발가락에서 엄지발가락 쪽으로 갈수록 높이가 높아지다가 다시 새끼발가락 쪽으로 가면서 낮아지는 발가락 모양을 보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계단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바다에 나란히 떠 있는 열 개의 섬을 상상해 보면서 만든 그림책 이야기는 우리도 양말을 벗고 발가락 하나 하나를 세심하고 다정하게 만져주며 대화를 나누고 싶게 만든다.

하루종일 바삐 뛰어다니다가 쓰러지듯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다가 한 쪽 발이 이불 밖으로 삐죽 나오자, 얼른 이불을 다시 덮으며 비몽사몽 중얼거린다. “발가락들아, 잘 자.” 생전 처음 해 본 말이다. 그리고 눈을 감고 곧 코를 골지만 발가락들은 이불 속에서 호호헤헤 시끄럽다. 발가락들은 아직 자고 싶지 않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그때부터 두 개의 발, 즉 열 개의 발가락들은 즐거운 여행과 신나는 모험을 시작한다. “우리는 뛰어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는 열 개의 계단이 될 수 있고, 먼 태평양의 섬들이 될 수도 있어. 이제 해변에서 모래 장난을 할까! 우리는 눈 속의 펭귄이 될 수 있고, 열 개의 탑이 될 수도 있어. 맛있는 음식이 될 수도 있지!” 발가락들은 아예 이불 밖으로 나와서 다양한 변신놀이를 즐긴다. 바닷가에 나란히 놓인 양동이와 모래성, 눈 위에서 웅크리고 있는 여덟 마리의 펭귄과 두 개의 알, 수평선을 바라보며 쉬고 있는 사람들…. 발가락들은 커다란 다리나 탑이 있는 도시가, 고깔모자 쓴 열 명의 난쟁이가 되기도 한다.

수신 확인: 굳은살이 단단히 내려앉은 우리의 열 발가락 형제들에게 장하다고, 미안하다고, 애쓴다고, 그래도 난 네 주인이라고 인사하는 토요일 아침. 왜 찡해지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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