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불세출의 희극인

박성수 논설위원

한국 코미디계에서 구봉서·서영춘·배삼룡 3인방을 빼놓고는 웃음의 역사를 논할 수 없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개성미가 이들을 코미디계를 이끈 불세출의 스타로 만들었다. 해방 이후 수많은 희극인들이 명멸했지만 유랑극단식 코미디, 코믹영화, TV 코미디 등 장르를 넘나들며 대중의 사랑을 받은 코미디언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여적]불세출의 희극인

극장 간판을 그리던 서영춘은 출연 펑크를 낸 한 희극배우 대역으로 나선 것이 데뷔의 계기가 됐다. 남을 실컷 웃겨놓고 본인은 엄숙해지는 표정 연기가 일품이었다. “인천 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 없이는 못 마십니다”로 시작하는 만담식 코미디는 ‘국민개그’처럼 퍼지면서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구봉서는 가수 김정구 친형이 이끄는 악극단에 출연하면서 연예계와 인연을 맺었다. 공전의 히트를 친 영화 <오부자>에서 ‘막둥이’라는 애칭이 붙으면서 스타덤에 올랐고, 정극(正劇) 코미디로 이름을 알렸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드셀라….” 그가 유행시킨 무려 72자에 달하는 코믹 대사는 한국 희극사에 흔치 않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비실이’라는 별명과 함께 등장한 배삼룡의 연기는 웃음의 맛이 달랐다. 당시로서는 볼 수 없었던 엎치락 뒤치락하는 슬랩스틱 연기로 개성을 살렸다. 지금도 인기가 식지 않는 ‘개다리춤’을 처음 선보였고, 바보 연기는 전매특허였다. ‘배삼룡표 바보 연기’는 심형래 등 후배들에 의해 변주되면서 지금까지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1973년 그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을 때의 일이다. 배삼룡을 사이에 두고 TBC와 MBC 간 쟁탈전이 벌어졌다. 그를 추적하고 회유하는 등 신경전이 극에 달했다. ‘코미디 전쟁’으로 불리면서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코미디 프로가 연기자 중심에서 작가 중심의 콩트 나열식 코미디로 전환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삼룡씨가 투병끝에 어제 세상을 떠났다. 자기 꾀에 넘어가는 헛똑똑이를 연기했던 바보 연기의 정수는 이제 다시 볼 수 없게 됐다. 웃음은 보통사람보다 못난 사람을 연기할 때 터진다고 한다. 스스로 자세를 낮춰 타인에게 웃음을 베풀었던 한 희극인의 연기를 팬들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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