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국민참여재판 ‘그림자 배심원’ 참여해보니…

이범준 기자

지난 5일 서울남부지법에서 강도사건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이날 법정에는 정식 배심단 외에 지난달 도입된 ‘그림자 배심단’도 있었다. 그림자 배심원은 실제 배심원처럼 재판부에 유·무죄를 권고하지는 않지만 배심원 역할을 경험해보고 법원의 자문에 응하는 역할을 한다. 이날 재판에는 기자가 그림자 배심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스포츠 머리의 피고인이 고개를 숙인 채 법정에 들어섰다. 전과 기록이 10개에 가깝다. 40대 후반에 이미 8년을 복역했다고 한다. 검사는 강도를 당했다는 50대 남자를 증인석으로 불렀다. “기원에 갔다가 계단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머리를 얻어맞았어요. 그리고 바지 주머니에서 53만원과 신용카드를 가져갔습니다.” 피해자는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아는 것은 안다고 답했다. 믿음이 갔다. 이유 없이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피고인 맞은편에 앉은 검사는 겸손하고 차분해 보였다. 그런 검사가 주장하는 내용도 대략 맞는 듯했다.

검사가 신문하는 동안 변호인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변호인도 포기한 피고인이구나. 유죄인가보다.’ 싱겁다는 생각이 들 무렵, 변호인이 스마트폰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현장 사진이었다. 사진이 대형 법정 화면에 비춰졌다. 변호사는 피해자에게 어떻게 맞았으며 어디서 넘어졌는지 설명을 요구했다. 피해자는 횡설수설했다.

피해자는 앞에서 맞았는데 뒤통수를 가격당했다고 했다. 검사는 현장상황을 제대로 몰랐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사고로 오른팔을 쓰지 못한다는 병원 진단서까지 냈다. 피고인은 울먹이며 “돈은 가져갔지만 절대로 때리지는 않았다”고 했다.

기자를 포함해 그림자 배심원 6명이 머리를 맞댔다. 대부분 강도혐의 유죄라고 했다. 기자는 합리적 의심을 품어보려 했다. “피고인은 1991년 강도로 복역한 뒤에는 절도만 해왔습니다. 강도죄 처벌이 엄한 걸 아는 사람이 20년 만에 강도를 저질렀을까요.” “피해자가 얼굴을 못 봤다는데도 피고인은 절도를 인정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거짓말을 할까요.”

하지만 나머지 배심원 5명은 끄떡없었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주장했다. “유죄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고 합니다. 합리적 의심이 남는다면 무죄입니다.” 이후 투표에 들어갔다. 상대방이 설득되지 않자 기자는 스스로를 의심했다. 그리고 생각을 바꿔 유죄에 손을 들었다. 결과는 전원일치 유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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