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나의 로망 나의 삶, 모터사이클

이원규 | 시인

“나는 폭주족이 아니라 우리시대의 기마족이다”

‘내 집’을 꿈꾸지 않는 대신 선택한 것이 모터사이클. 멈추는 그곳이 곧바로 텐트를 칠 수 있는 ‘나의 집’이다. | 이원규 시인 촬영

‘내 집’을 꿈꾸지 않는 대신 선택한 것이 모터사이클. 멈추는 그곳이 곧바로 텐트를 칠 수 있는 ‘나의 집’이다. | 이원규 시인 촬영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숨 쉬는 것과 더불어 걷는 것이다. 날마다 직립보행의 자세를 증명하며 누군가를 만나거나 무언가를 하기 위해 어디론가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그 다음이 자전거를 타는 것. 꽃샘추위에 움츠리다 기지개를 켜며 대자연의 일부로서 더불어 살아 있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깨달음의 시간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 세상의 ‘탈것’들 중에 가장 매력적인 것은 모터사이클(바이크)이다. 일본식 영어인 ‘오토바이(이륜자동차)’라는 말이 널리 쓰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오래전부터 ‘폭주족’과 ‘위험천만한 과부제조기’의 합성어인 ‘병든 말(言)’이 되었다. 해마다 3·1절이 되면 텔레비전 등의 매체들은 독립운동의 정신보다 ‘청소년 폭주족과 경찰들의 전쟁’을 더 강조하는 듯하다. 분명 이륜차 문화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해결보다는 사회적 약자인 일부 청소년과 생계형 택배기사들에게 반복해서 돌을 던지기만 한다. 기름값 폭등으로 서민들이 스쿠터 등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책적인 대안은 없이 책임전가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에서 바이크를 탄다는 것은 폭주족이 되어 손가락질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나 또한 그렇다. ‘지리산 시인’이라는 다소 낯부끄러운 별명도 있지만 늘 그 뒤에는 ‘지리산 폭주족’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얼마 전 가수 정태춘씨 모친상에 문상 갔을 때 영화배우 권해효씨를 만났는데 “길·인·생에 왜 모터사이클 얘기 안 써요? 매주 수요일자 신문을 보며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데” 하는 것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 생의 유일한 탈것인 모터사이클 얘기를 쏙 빼놓은 것이다. 자동차 운전면허도 없는 나는 오직 걷거나 바이크를 탔으니 내가 가본 그 모든 곳에는 나의 발과 바이크가 함께했던 것이다. 내게 있어 바이크는 단순한 레저가 아니라 ‘로망’인 동시에 ‘생활’이었다.

영화 <이지라이더> <할리와 말보로맨>,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그리고 영화배우 이완 맥그리거의 세계일주는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로망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보다 더 멋진 동영상을 보았다. 인터넷카페인 ‘바이크매니아’에서 보내온 3분짜리 실화 동영상이었다. 놀랍게도 여기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주인공인 타이완 사람들의 평균연령은 81세였다. 그런 데다 모두 심장질환에 퇴행성관절염을 앓고 있으며, 한 명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암 선고를 받고 치료 중이었다. 그들은 죽기 전에 꿈을 꾸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타던 바이크로 전국일주를 하는 ‘같은 꿈’이었다. 낡은 바이크를 고치며 체력보강 등 6개월간의 준비를 한 뒤 마침내 13일 동안 타이완 전국 투어를 했다. 한 사람은 죽은 아내의 사진을 바이크에 부착하고 달렸다. 길 위에 목숨을 걸고 자신들이 태어나 자란 타이완을 북에서 남으로 주행거리 장장 1139㎞를 달렸다. 힘겨운 도전이었지만 모두들 큰 사고 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생의 마지막이 아니라 생의 환희 같은 것이었다. 로망이자 삶 그 자체였다.

옛 사람들이 말을 타고 산천을 누비던 기분은 어떤 걸까. 말에 올라 바이크를 탄 기분을 내고 있는 필자. | 이원규 시인 촬영

옛 사람들이 말을 타고 산천을 누비던 기분은 어떤 걸까. 말에 올라 바이크를 탄 기분을 내고 있는 필자. | 이원규 시인 촬영

옛사람들이 말을 타고 산천을 누비던 것과 가장 닮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바이크를 타는 것이 아닐까. 풀 대신 휘발유를 먹고 달리는 ‘현대식 말’. 그리하여 나는 폭주족이 아니라 여전히 기마족이다. 지리산에 와서 뭔가 한 게 있다면 그것은 단지 많이 걷고 많이 달리는 것이었다. 한반도 남쪽 곳곳을 줄잡아 3만리를 걸으며 세상사 안부를 묻고, 그동안 13대 이상의 바이크를 갈아타며 70만㎞ 이상을 달리며 두두물물들에게 눈인사라도 했으니 거리상으로 지구 15바퀴 이상을 돈 셈이다. 마침내 국도와 지방도 어디든 안 가본 곳이 없는 ‘인간 내비게이션’ 수준이 되었다.

내게 있어 20년이 넘지만 여전히 낯부끄러운 시력(詩歷)과 유일하게 견줄 만한 게 있다면 라이딩 경력이다. 스무 살 무렵, 어머님의 땔감나무나 도탄(광산 폐석더미에서 버려진 석탄을 훔쳐오는?)을 실어주기 위해 시작한 험한 산길의 라이딩은 그 이후 나의 광부 시절을 지나 지금에까지 이어졌으니 ‘아버지의 부재 같은 시’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며 구체적이었다. 바이크를 타는 것은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의 정면에 서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몸을 기대며 눈물을 흘리며 길과 바람에게 목숨을 내맡기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내 몸이 바람인지, 바람이 내 몸인지, 바이크를 타고 시를 쓴 것인지, 시를 쓰며 바이크를 탄 것인지 선뜻 분간이 서지 않는다.

바이크는 속도와 반속도의 길 위에서 내게 참으로 많은 것을 일깨워주었다. 봄이면 북상하는 꽃의 속도로 지그재그 지방도를 따라 전국을 일주하고, 가을엔 남하하는 단풍의 속도로 달렸다. 걷는 것에 비해 질주는 분명 위험한 일이지만 따지고 보면 세계적인 자살률이 횡행하는 이 땅에서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꼭 필요한 것은 고도의 집중력, 그 집중력이 바로 삶의 밑천이 아닌가. 바이크, 그 눈물의 속도는 백척간두 진일보이자 경계에 막 피어나는 꽃이었다. 단 한순간의 방심도 용서치 않는 눈빛 매서운 스승 같은 존재였다.

어쨌든 자동차 운전을 못하는 나는 그저 죽을 때까지 함께할 생각인데, 사실 ‘시인과 모터사이클’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위험하지 않으냐”는 비웃음을 많이 듣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뭔가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게 겨우 시 쓰기와 라이딩뿐이니 이를 어찌하겠는가. 누가 뭐래도 나는 시를 쓰며 바이크를 타고, 바이크를 타며 시를 쓰는 일이 찹쌀궁합이라 믿을 뿐이다. 삶의 급격한 경사를 만나면 내 몸과 마음도 그만큼의 긴장을 팽팽히 유지하고, 코너를 만나면 또 그만큼의 기울기로 유연하게 내 몸을 던져야만 비로소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나갈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절절한 삶의 자세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할 뿐이다. 외딴집에 웅크려 있다가 문득 집을 나서면 아찔한 질주 속에서 언뜻언뜻 마주치는 죽음의 선명한 얼굴과, 이 세상에서 가장 느린 속도인 시속 700m로 마치 한 마리 자벌레처럼 기어가는 ‘오체투지’ 참회의 얼굴이 얼마나 다르고 또 같은지 날마다 온몸으로 체득하고 또 체득할 뿐이다.

요즘 내가 타는 말은 두 마리인데, 중고 ‘R1200 RT’라는 경주마 같은 녀석과 비포장을 달리는 엔듀로 바이크인 15년된 ‘아프리카트윈’이라는 당나귀 같은 녀석이다. 비록 중고이긴 하지만 이 바이크 두 대가 나의 전 재산이니 지리산의 빈집을 전전하는 시인으로서 참으로 불균형이 극에 달한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입산 시절부터 내 집을 꿈꾸지 않는 대신 선택했으니 그동안 모터사이클이 진정한 나의 집이었다. 집을 등에 지고 다니는 달팽이가 아니라 타고 다니는 한 마리 달팽이요, 멈추는 바로 그곳이 곧바로 텐트를 칠 수 있는 나의 여인숙이었던 것이다. 다만 이렇게 시를 쓰고 바이크를 타며 산다는 것은 굳이 ‘자발적 가난’이라는 사치스러운 말을 쓰지 않더라도 매우 궁핍한 것을 견뎌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불구의 세상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이자 자본주의적인 무한경쟁 시대의 낙오자 혹은 방외인으로서 당연히 감당해야 할 미덕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며칠간 칩거를 하다 섬진강 외딴집을 나선다. 861번 지방도를 타고 지리산을 넘어야 한다. 지리산생명연대의 후배 활동가들과 회의를 해야 하고, 죽어가는 낙동강을 둘러보고, 순천대 문창과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러 달려가야 한다. 섬진강 물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가 돌아서서 키를 꽂으며 내 심장의 펌프질과 피의 기울기를 RPM 5000, 6단 고속으로 조절한다. 4차선 국도를 질주하며 잠시 생사를 넘나드는 워밍업을 하고는 곧바로 산길로 접어든다. 구절양장 지리산의 S자 커브가 내 생의 이력처럼 줄이어 나타난다. 돌아보면 섬진강이 보이지만 옆을 보면 천 길 낭떠러지가 있고, 앞을 보면 순식간에 해발 1100m의 성삼재 고갯길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옆도 보지 말아야 한다. 두려운 나머지 주춤거리며 자꾸 낭떠러지만 바라보면 어느새 그곳으로 떨어질 뿐이다. 집중 또 집중, 고개를 돌려 S자 커브의 탈출구 라인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고 몸이 가고, 마침내 쓰러질 듯 원심력으로 코너를 돌아 끝내 가고자 하는 곳으로 치고 올라가는 것이다. 모든 생이 그러하듯이 자꾸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곳으로 가게 되어 있다.

요즘은 엔듀로 바이크에 맛을 들여 틈만 나면 나의 당나귀를 탄다. 지금은 길이 아닌 길, 비포장 옛길을 찾아나서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죽기 전에 전국의 모든 옛길,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고갯길들에게 안부를 물으며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게 나의 유일한 살맛이 되었다. 그동안 108마력의 슬픔으로 이 세상을 달려왔다. 나는 폭주족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기마족이다. 그러하고 또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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