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뜻 모를 노래 가사 풀어내니 심봉사가 눈 뜬 기분이지요”

황경상 기자

‘창악집성’ 펴낸 하응백씨

‘능청능청 저 비 끝에 시누 올케 마주 앉아/ 나두야 죽어 후생 가면 낭군 먼저 섬길라네.’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경상도 민요 ‘상주 모심기 노래’의 일부다. 언뜻 비 오는 날 시누와 올케가 마주 앉아 넋두리를 주고받는 구슬픈 광경이 떠오른다. 그런데 갑자기 왜, “죽으면 나도 낭군을 먼저 섬기겠다”는 것일까.

문학평론가 하응백씨(50)는 이렇게 ‘뜻 모를’ 국악 가사(사설)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옛 문헌과 자료를 뒤졌다. 경상도 지방에는 여동생과 아내가 동시에 벼랑 위에서 떨어졌는데 오빠가 아내를 먼저 구하는 바람에 누이는 죽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능청능청 저 비리 끝에 야속하다 우리 오빠.’ 국악인 박수관이 채집한 유사 형태의 노래다. 노래 속의 ‘비’는 ‘벼랑’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 ‘비리’가 와전된 것이었다. 자칫 서정적으로 들릴 뻔하던 노래가, 오빠를 원망하는 죽은 누이의 ‘한 맺힌’ 목소리로 변하고 마는 순간이다.

[책과 삶]“뜻 모를 노래 가사 풀어내니 심봉사가 눈 뜬 기분이지요”

가사의 뜻이 전해지지 않으니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감정이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수들이 노래 가사에 혼신의 힘을 담아 전달하는 모습에서 ‘나는 가수다’에 감동을 받는 것인데 국악은 그게 어려워진 것이죠.” 지난 29일 서울 경운동 사무실에서 만난 하씨의 말이다. 집필에 도움을 받은 이창배의 <가창대계>처럼 소리꾼 중심의 가사집은 많았지만, “소리꾼과 듣는 사람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시도”는 처음이라는 것이다.

가곡, 가사, 시조창에서부터 각 지역의 민요, 좌창, 잡가, 가야금병창, 송서, 불가에 이르기까지 300여곡이 넘는 우리 ‘소리’들에 일일이 해설을 붙여 1000여 페이지가 넘게 정리한 <창악집성>(휴먼앤북스)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5년 전 인사동 술집을 드나들다 소리꾼들의 에너지에 흠뻑 취해 함께 어울렸습니다. 한데 그분들조차 ‘이 부분은 뜻을 모르겠다’고 해서 찾아주다 보니 점점 쌓였던 것이죠.”

소리꾼들은 이 책을 보고 ‘심봉사가 눈을 뜬 기분’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그는 국악 가사의 뜻이 실전된 이유도 “과거에는 지식인과 일반 대중, 소리꾼들이 함께 어울리면서 가사를 보강했지만 지금은 그러한 소통이 단절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책과 삶]“뜻 모를 노래 가사 풀어내니 심봉사가 눈 뜬 기분이지요”

‘노래’의 특성상 다양하게 전승돼온 가사들의 본래 뜻을 살피고 원본을 확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부르는 맛’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원문을 살리려 애썼다. 그런 애정은 책을 보면서 장구를 치고 노래 부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본문의 활자를 크게 키우고, 가사를 한 장 내에 편집해 연주 시 책장을 넘기지 않도록 배려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평생 문학으로 밥 먹고 살아온” 하씨가 우리 전통 노래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원래 시는 노래였고 노래는 시였으며, 그것이 길어지면 소설”이라는 생각에서다. 성석제는 옛 노래 ‘추풍감별곡’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를 썼다. 황석영은 틈틈이 <한국구비문학대계>를 들춰보며 옛 이야기의 유형을 살핀다고 한다. “우리 문화의 원형에서 눈밝은 작가나 시인들이 뽑아 쓸 것이 많아요.”

하씨는 서도민요 ‘긴아리’의 한 대목을 짚었다. ‘물 위에 계시기 물 아래 살지, 할레도 두 번씩 들쎌물 있구나(임은 물 위에 있고 나는 물 아래 있기에 만날 수 없다, 하루에도 두 번씩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기에 아득히 그립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한 편의 현대시로도 손색이 없는 압축미가 담긴 ‘영원한 이별의 전주곡’ ”이다. 하씨는 더 많은 이들이 이런 느낌을 향유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전통 민요의 음원과 텍스트 해석을 함께 담은 전자책을 출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책과 삶]“뜻 모를 노래 가사 풀어내니 심봉사가 눈 뜬 기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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