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권력의 언론 장악 환상 보여준 부산일보 사태

부산의 유력 일간지 부산일보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석간인 이 신문의 엊그제호(11월30일자)가 돌연 발행되지 않은 것이다. 그 이유 또한 이례적이다. 이 신문은 편집권을 둘러싼 노사갈등을 겪고 있었는데, 편집국이 이날자 신문 1면과 2면에 사측의 노조위원장과 편집국장 징계 남발을 비판하고, 부산일보를 소유한 정수재단의 사회환원을 촉구하는 기사를 완성해 인쇄에 들어가려 했으나 사장 지시로 윤전기 가동이 중단된 것이다. 창간 65년이 된 이 신문이 정상발행을 하지 못한 것은 1988년 7월에 이어 두번째다. 당시에는 재단의 편집권 침해에 항의하는 노조 파업으로 신문이 6일 동안 못 나왔다. 이번 것은 총파업도 아닌 상황에서 사측이 발행을 거부한 이 분야 초유의 사태가 아닌가 한다.

신문은 사기업이면서 공적 문제를 다루는 독특한 공익적 존재다. 일간신문이 매일 나오는 것은 사활적 의미가 있다. 신문은 천재지변은 물론 전시에도 나온다. 이 때문에 우리는 긴 역사의 부산일보가 이러한 본령을 저버려야 할 무슨 절박한 사정이 있었는지 묻게 된다. 도대체 부산일보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이 신문이 겪는 노사갈등의 중심에 있는 것이 정수재단이다. 부산일보 주식 100%를 소유한 정수재단은 사장 선임권을 갖고 있고, 편집권은 1988년 총파업 이후 노사협약에 따라 편집국장이 행사한다. 두 권한은 항상 충돌할 여지를 안고 있었다. 노조는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정수재단의 실질적 소유주인 만큼 신문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는 정수재단과의 완전한 분리가 필수적이라고 한다. 이런 취지에서 노사는 경영진 선임 때 사원들의 뜻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정수재단과 협의키로 합의까지 했다. 그러나 최필립 정수재단 이사장은 경영진 인사권은 노조가 개입할 수 없는 재단의 고유권한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노조위원장은 불법 노조활동을 이유로 면직 통보됐고 편집국장은 대기발령됐다. 그 다음 닥친 것이 신문 발행 중단이란 사태다.

이 상황 전개를 보면서 우리는 결론 몇 개를 얻는다. 첫째, 신문의 주인은 사주가 아니라 사원, 조합원이며 최종적으로는 독자다. 부산일보 사태가 이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둘째, 박근혜 전 대표 자신은 정수재단에서 손뗐다고 주장하지만 신뢰하기 어렵다. 최 이사장은 그의 최측근이다. 11월30일자로 작성된 기사 자체는 윤전기를 멈춰야 할 만큼 대단한 내용을 담은 것이라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신문 발행 거부란 초강수를 쓴 것은 신문 제작보다는 다른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는 부산일보에 대한 영향력과 지배권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정수재단과 박근혜 전 대표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가 정수재단을 사회에 환원하고 부산일보에서 손을 완전히 떼야 할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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