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나안’

백은하 기자

우즈벡 카레이스키들이 한국에 오기까지

잠을 청하는 아이에게 아빠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옛날 아주 머나먼 나라에 착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어…. 어느 날 어떤 아저씨가 착한 사람들을 머나먼 나라에 보내버렸대.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아주 오랫동안 여행을 했고, 그중엔 끝까지 여행을 못한 사람들도 있었대. 마침내 사람들이 도착했어. 해가 가고, 후손들이 태어나고, 그리고 네가 태어났단다…끝이야!” 아이는 말한다. “아직 끝이 아니야. 마침표를 찍어야 끝이지.”

영화 <하나안>의 감독 박루슬란은 구소련 당시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 당한 카레이스키, 즉 고려인 4세다. 감독이 자신과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하나안>은 75년 전 시작된 이 비극의 역사가 여전히 끝이 나지 않았음을, 여전히 ‘징글징글한’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어린 시절부터 함께 어울렸던 4명의 친구가 있다. 스타쓰(스타니슬라브 장)는 마약딜러들의 손에 한 친구가 살해당하자 그들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형사가 된다. 하지만 어렵게 잡아들인 범인이 더 큰 힘에 의해 석방되자 스타쓰는 형사일을 그만둔다. 다른 친구 한명마저 마약 중독자가 되어 ‘달콤한 죽음’을 맞이한 후 스타쓰 역시 자신을 놓아버린다. 그가 마약을 구하기 위해 돈을 구걸하며 몰락해가는 과정은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만큼 참혹하다.

[리뷰]영화 ‘하나안’

‘하나안’은 약속의 땅 ‘가나안’의 러시아식(XAHAAH) 표현이다. 그들에게 ‘한국’은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안’이 될 수 있을까. 스타쓰가 마침내 한국 땅에 도착하기까지의 고행의 우즈베키스탄 탈출기는 길고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박루슬란 감독과 주인공 스타니슬라브 장은 유년기를 함께 보냈던 오랜 친구로 그들의 삶은 그대로 영화 속 현실이 되었다.

타슈켄트사범대학 한국어학과를 졸업한 박루슬란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장편 데뷔작 <하나안>은 지난해 토론토, 부산, 로카르노, 뮌헨 국제영화제 등에서 상영되었고, 하와이국제영화제 넷팩상, 2012년 타이베이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박루슬란 감독은 현재 2009년부터 한국에 체류 중인 주인공 스타니슬라브 장의 한국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 <하나안 PS>(가제)를 촬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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