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솔로들의 색다른 성탄파티

이서화 기자

대한문 농성촌에 성금

크리스마스인 25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선 전날 전국에서 열린 청춘남녀들의 짝짓기 행사인 솔로대첩과는 사뭇 다른 솔로파티가 열렸다. ‘빈농해방을 위한 좌파솔로들의 씁쓸한 크리스마스 파티’란 이름의 행사다. 여기서 ‘빈농’은 ‘부농(분홍)’의 반대말로 ‘핑크빛’ 연애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뜻한다. 손끝이 얼어붙을 정도의 매서운 추위 속에 이날 모인 20여명의 좌파 솔로들은 ‘연애’ 대신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과의 ‘연대’로 외로움을 이겨내자고 말했다.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 행사를 제안한 박미로씨(22·가명)는 “사람들이 외롭다고 하면서 연애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연애만이 과연 방법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연인끼리 밥 먹고, 영화 보고, 커피 마시는 데 자기네 카드를 쓰라는 한 신용카드 회사의 TV 광고를 보더라도 지금 우리의 연애가 너무 소비주의에 물들어 있다”며 “연애가 아닌 다른 다양한 관계맺음의 가능성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연애’보다는 ‘연대’를 통해 외로움을 달래자는 ‘좌파 솔로들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가한 시민들이 25일 서울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에 연대의 뜻을 전달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연애’보다는 ‘연대’를 통해 외로움을 달래자는 ‘좌파 솔로들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가한 시민들이 25일 서울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에 연대의 뜻을 전달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파티에 참석한 오병헌씨(24)는 “연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쓰는 것이 정말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연애를 위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 살을 빼고 성형을 하고 각종 문화적 기능을 갈고닦는 그러한 경쟁에서 어떤 사람들은 처음부터 도태돼 연인을 얻지 못하거나 경쟁 자체에 낄 수도 없다”고 말했다. 외로움과 쓸쓸함을 연애가 아니라 사회적 연대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날 참가자들은 쌈짓돈을 털어 대한문 앞 ‘함께살자! 농성촌’에 전달했다. 연애 대신 쌍용차 해고노동자, 강정마을 주민들, 용산참사 유족들과 연대하는 성탄절을 보낸 셈이다.

인천 녹색당에서 활동하는 진달래씨(24)는 “친구들이랑 크리스마스날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녹색당 의제도 알릴 겸 피켓을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진씨는 “연애를 못하면 그 이유가 자동적으로 연애 못하는 개인 탓으로 돌려지는데 이것은 빈곤 같은 사회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박아버리는 것과 비슷하다”며 “지배적인 연애 담론에서 벗어나 연대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좌파솔로들은 대표적인 데이트 명소인 명동을 가로질러 명동성당까지 행진한 후 이날 행사를 마무리했다. 이들은 이후 연애 너머의 관계맺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모임을 꾸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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