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노동자 법의 사각지대 “60명 머리 감겨 손에 샴푸 독 올라도 자비 치료”

김한솔 기자

“하루 12시간 노동, 교육생이라 월급은 80만원”

김병철씨(21)는 지난해 11월부터 약 2개월 동안 한 프랜차이즈 미용실에서 교육생으로 일했다. 전국에 160여개 매장을 갖고 있는 유명 프랜차이즈 미용실이었다. 일은 고됐다. 쉬는 시간도 없이 하루 12시간씩 근무했다. 한 달에 80만원을 받았다.

연장근무수당은 없었다. 출근시간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해 매장 앞에서 홍보 전단을 돌린 날도, 손님이 많아 평소보다 훨씬 늦게 퇴근한 날도 미용실에서 주는 돈은 같았다. 하지만 지각할 때는 달랐다. 10분당 5000원씩 꼬박꼬박 떼였다. 지각비는 월급에서 깎으니 내지 않을 방법도 없었다.

김씨가 맡은 업무는 미용보조, 매장청소, 미용기구관리, 고객응대 등이었다. 손님이 많은 날엔 하루에 60번 손님의 머리를 감겼다. 손에 샴푸 독이 올라 피가 나기도 했다.

본사에서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교육비는 교육생들이 부담해야 했다. 김씨는 “월급 80만원으로는 교육에 필요한 미용도구를 사기 어려워 교육시간에 멍하니 서 있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한 미용기술경연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기량을 겨루고 있다. 청년유니온은 18일 최저임금보다 낮은 평균 시급 2871원을 받으면서도 과도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는 미용실 교육생들의 실태를 폭로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 미용기술경연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기량을 겨루고 있다. 청년유니온은 18일 최저임금보다 낮은 평균 시급 2871원을 받으면서도 과도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는 미용실 교육생들의 실태를 폭로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청년유니온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전국 198개 미용실 매장 종사자들을 상대로 실태조사를 벌여 18일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미용업계 종사자들의 평균 월급은 93만원이었다. 시간당 2971원이다. 올해 법정 최저임금 4860원의 약 61%에 불과하다. 최저임금보다 높은 시급을 주는 미용실은 조사 대상 중 한 곳도 없었다. 대신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법정 최대근무시간인 52시간보다 훨씬 많은 64.9시간이나 됐다.

오랜 시간 서서 일하면서 염색약 등 독한 약품을 다루는 미용업계 종사자들은 하지정맥류, 허리디스크, 피부질환 등을 많이 겪는다. 하지만 산업재해 보상을 받지 못해 치료비는 대부분 자비로 부담하고 있었다.

유명 프랜차이즈 미용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지연씨(22·가명)는 “직원이 앉아 있으면 ‘망해가는 매장’이라고 생각해 매장에 손님이 없어도 서서 기다리도록 한다”며 “하루 종일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은 20~30분 정도인 식사시간이 전부”라고 말했다.

미용실 노동자 법의 사각지대 “60명 머리 감겨 손에 샴푸 독 올라도 자비 치료”

미용업계 종사자들의 처우가 이처럼 열악한 것은 미용실 측에서 이들을 노동자가 아니라 미용사로 가는 중간단계에 있는 ‘교육생’으로 대우하기 때문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은 “교육생들은 헤어 디자이너로 승급하기까지 통상 3년의 교육과정을 거치는데, 이 기간 동안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감내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기중 법무법인 기린 노무사는 “교육과정에 있는 노동자도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므로 이들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말했다. 한지혜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미용 교육생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임금을 체불한 프랜차이즈 본사를 고발하고, 고용노동부에 이들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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