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거리가 내 무대, 저 행인이 다 관객… 이것이 바로 ‘버스킹’이다

글·사진 강수진 기자

홍대 인근 ‘길거리 공연’ 주무대

십센치, 딕펑스 등도 거리 출신 “우리 음악을 들려주며 즐기고파”

사전신청제, 상인 민원 문제도… 공존과 완충의 콘텐츠 고민해야

‘버스킹(Busking)을 아십니까?’

십센치, 장재인, 홍대광, 딕펑스, 김지수, 좋아서하는밴드 등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던 팀들이다. 요즘 젊은층은 거리의 공연을 일컬어 ‘버스킹’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가요계를 휩쓴 밴드 ‘버스커버스커’(Busker busker)의 이름도 이 ‘버스킹’에서 유래했다.

3월로 접어들었지만 찬바람이 여전한 지난 2일 오후 서울 서교동 홍대 인근 ‘걷고 싶은 거리’. 예닐곱의 ‘버스킹’ 팀이 행인들의 발걸음을 불러세웠다.

서울 마포구 홍대 앞은 ‘버스킹’의 메카다. 개성 넘치는 청춘들이 거리로 나와, 각자의 사연과 이야기로 노래하고 춤춘다.

서울 마포구 홍대 앞은 ‘버스킹’의 메카다. 개성 넘치는 청춘들이 거리로 나와, 각자의 사연과 이야기로 노래하고 춤춘다.

군입대를 준비 중이라는 남성 2인조 ‘연두’는 박수를 제법 많이 받는 팀이었다. 자작곡은 물론 기존 히트곡인 ‘강남스타일’ ‘있다 없으니까’ 등을 어쿠스틱으로 편곡해 소개했다. 악기 ‘젬베’를 치던 전양원씨(20)는 “버스킹을 나선 지 한 달 정도 됐다”며 “남들의 버스킹 무대를 밤새도록 즐기다가 직접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기타를 치는 이병린씨(20)는 “행인들은 우리에게 작지만 자유로운 관객”이라며 “이들 앞에 서서 공연하면 실력도 는다”고 말했다. 이른바 ‘버스킹 박스’(돈통) 역할을 하는 기타 케이스에는 천원짜리 지폐가 하나둘씩 차기 시작했다. 이날 두 사람은 4만원을 벌었다. 밥값, 건전지값, 차비 등에 충당했다. 초반에는 완전히 허탕을 치곤 했다. 많을 때는 8만~9만원까지 쌓인다.

‘음악공작단’이라는 음악팀은 버스킹을 위해 대전에서 첫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대전 둔산동, 대흥동 등을 중심으로 3~4년 정도 버스킹 경력을 쌓았다는 원대연씨(25·우송정보대)는 “개강 전 자신감을 좀 얻어가기 위해 서울로 왔다”며 “우리가 만든 음악을 들려주고 싶고, 반응도 살피고 싶었다. 스스로 음악을 즐기고자 하는 것도 버스킹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고충이 없을 수 없다. 조남길씨(22·상근예비역)는 “전기를 끌어 쓰기가 쉽지 않고, 취객의 시비나 시끄럽다는 주변의 민원이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고 했다.

버스커들 대부분은 작은 마이크에 휴대용 앰프, 간단한 악기를 지참한다. 전기를 제공받기 힘든 만큼 건전지는 필수다. AA건전지 6개를 넣으면 1시간가량 공연할 수 있다. 거리의 악사들이 버스킹에 나서는 이유는 갖가지다. 내일의 가수를 꿈꾸는 17세 고등학생 ‘씬드롬’(본명 조강석·영락고)은 집에서 만든 자작곡과 자신의 이름을 좀 알려보기 위해 친구들과 길거리를 찾았고, 스트리트 댄스 안무단체인 ‘예술 연합 더 팝’은 오는 14일 홍대 비보이극장에서 열리는 화이트데이 댄스 파티를 소개하고자 거리에서 공연했다. ‘돈통’을 놓는 경우도, 일부러 안 놓는 경우도 있다. 음악을 하는 행위 자체를 중시하는 이들이다.

온 거리가 내 무대, 저 행인이 다 관객… 이것이 바로 ‘버스킹’이다

홍대 인근 ‘놀이터’(홍익어린이공원)는 버스킹의 메카다. 버스커버스커 등 스타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어김없이 거리의 래퍼들이 공연하고 있었다. 공연을 지켜보던 김희은양(17)은 “길거리 공연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트위터로 “오늘 버스킹할 사람”이라고 글을 띄워 래퍼 10여명이 이곳을 찾았다. 놀이터를 빌려 일일장터를 꾸민 주최 측으로부터 소리를 좀 줄여달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상인들의 반응은 구분됐다. 놀이터 인근에서 안경점을 운영하는 박모 점장(40)은 “홍대 상인들은 그래도 다른 지역보다는 길거리 공연에 관대한 편일 것”이라며 “이들의 공연이 있는 날이면 손님들의 수나 분위기 모두 더 좋아진다”고 말했다. 또 “버스킹이 지금보다 더 활성화되길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디밴드 십센치가 무명 시절 자주 찾은 곳으로 유명한 서교동 주차장 사거리 ‘마을마당’ 인근의 상점 직원 마지혜씨(31)는 “이곳은 생각보다 주택이 많다”면서 “지난해 한 팀이 악기를 상당히 갖추고 너무 시끄럽게 해서 주변 민원이 컸다. 어느 정도의 에티켓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씨가 손을 들어 가리킨 ‘마을마당’ 팔각정 기둥에는 ‘야간공연 금지’ ‘앰프 사용 금지’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홍대 인근이라 해도 장소에 따라 버스킹을 할 수 있는 방식은 다르다. 문화공연을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된 ‘걷고 싶은 거리’에서는 마포구청 홈페이지에 ‘공연 신청서’를 낸 뒤 공연할 수 있다. 순수성을 검토한 뒤 무료로 공연하도록 한다. 공원의 경우는 규정이 다소 까다롭다. 마포구청의 공원녹지과 정유진 주임은 “원칙적으로 공원의 경우 구조물 등을 설치해 사용할 경우 ‘도시 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사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온 거리가 내 무대, 저 행인이 다 관객… 이것이 바로 ‘버스킹’이다

3년차 버스커 겸 언더 래퍼 ‘트럼프킹’(20·본명 최고려·한양대)은 “버스커 대부분은 신청서를 내지 않고 즉석으로 공연을 하는 편”이라며 “쫓겨나는 것도, 다시 거리를 찾는 것도 역시 버스킹 문화의 일부”라고 말했다. 또 다른 버스커 김기봉씨(23·세한대 실용음악과)는 “우리 같은 학생들에게 공연장의 무대는 비싼 편”이라며 “거리의 공연이 참 좋긴 한데 상인들과의 갈등이 좀 적었으면 한다”고 했다.

버스킹이 활성화되면서 이를 제도화하는 자치단체들도 있다. 용인시는 지난해부터 ‘용인 거리 아티스트 제도’를 운영해 호응을 얻었다. 1년에 한 번 거리 아티스트를 뽑아 용인 주요 거리 12곳에서 공연을 하도록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식대와 교통비 약간과 앰프, 마이크, 간이의자 등을 제공한다. 지난해 15개팀이 신청했고, 올해는 오는 20일까지 마감 보름여를 앞두고 벌써 25개팀이 신청서를 냈다. 용인문화재단 남석희 과장은 “시민과 버스킹팀 모두가 만족해서 올해는 제도를 확대 시행하기로 했다”며 “상가가 버스킹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원이 발생할 경우 공익성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방식 등으로 유동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도는 도 차원에서 ‘거리로 나온 예술’이라는 제도를 올해 처음 시행한다. 부천, 안산, 안양 등 15개 시·군 거리와 공원, 역사 등지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팀을 선정해 지원한다. 서울 한강시민공원, 서울메트로 등도 비슷한 제도를 운영 중이다.

음악평론가 차우진씨는 “버스킹은 예술이 청중과 소통하는 데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버스킹을 좀 더 쉽게 허용하면서도 아티스트와 상인들의 충돌을 줄일 수 있는 문화 지점 혹은 완충 지점을 고민하고 양성할 필요가 있고, 버스커들도 더 깊은 콘텐츠를 고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 버스킹(Busking)

길거리에서 연주하다란 뜻의 ‘버스크’(Busk)에서 유래한 말이다. 거리에서 행인들을 상대로 공연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버스킹을 하는 사람을 일컬어 ‘버스커’라 부른다. 아일랜드 더블린, 프랑스 파리 등이 버스킹 도시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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