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열전

(8) 티타노보아

티타노보아가 악어를 삼키고 있는 모습.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 홈페이지

티타노보아가 악어를 삼키고 있는 모습.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 홈페이지

“내 그림은 모자를 그린 것이 아니었다. 내 그림은 코끼리를 삼키고서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 뱀을 그린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어른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보아 뱀의 속이 보이도록 다시 그림을 그렸다. 어른들에게는 언제나 설명이 필요하다.”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에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데 이용한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은 터무니없이 크다. 그래서 두렵지 않다. 하지만 영화 <아나콘다>에서 제니퍼 로페즈를 잡아먹으려 했던 뱀은 무섭다. 충분히 있음 직한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 속의 아나콘다보다 훨씬 더 큰 뱀이 있었다. 관광버스처럼 길고 승용차만큼 무거운 뱀과 맞닥뜨렸다고 상상해보자. 복도에서 만난다고 하더라도 도망치면 살 수 있다. 문이 좁은 방으로 들어가면 살 수 있다. 쫓아 들어오려면 말 그대로 문을 비집고 들어와야 할 정도로 뱀의 몸통이 굵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뱀을 직접 본 사람은 없다. 5800만년 전에 사라진 동물이다. 크기에 걸맞은 이름이 붙어 있다. 티타노보아.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거인족 티탄과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코끼리를 삼킨 그 보아 뱀의 익숙한 조합이다. 몸 길이 15m에 무게가 1135㎏에 달했던 티타노보아는 선사시대의 거인이자 동물계의 경이 그 자체였다. 6600만년 전에 공룡의 멸종과 함께 중생대가 끝나고 신생대가 시작한 직후인 6000만년 전에 등장하여 200만년 동안 따뜻하고 습한 환경에서 번성했다.

가장 큰 육상동물

2009년 스미스소니언 열대연구소, 플로리다대학교, 콜롬비아 지질광업연구소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탐험대는 콜롬비아 라과히라 반도에 위치한 세계 최대 노천 광산 중 하나인 세레혼 탄광을 조사하고 있었다. 풍부한 화석 매장지로 유명한 이 지역은 이전에 다양한 선사시대 동식물 화석이 발견되어 전 세계 고생물학자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고대의 척추동물 화석은 거의 발견되지 않던 곳이었다.

탐사팀에 속한 대학생 조너선 블로흐와 카를로스 자라미요가 척추와 갈비뼈 화석을 하나씩 발견했다. 그런데 뼈의 크기와 모양이 특이했다. 연구팀은 당장 탐사대원들로 하여금 그 일대에서 나머지 뼈를 찾게 했고 이어 더 많은 척추뼈, 갈비뼈 등을 발견했다. 모두 비정상적으로 큰 뼈들이었다. 뼈의 크기로 보아 이전에 알려진 그 어떤 뱀보다 훨씬 큰 파충류 화석임을 알 수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큰 척추동물의 뼈가
2009년 콜롬비아 탄광서 발견됐다
연구 끝에 밝혀진 ‘거대한 보아뱀’

몸 길이 15m·무게 1135㎏ ‘압도적’
공룡 멸종 이후 가장 큰 비해양 동물

뱀 총 3500종 중 해 끼치는 건 200종
생태계 유지에 중요한 생물인 뱀
기억하세요, 제헌절 전날은 ‘뱀의날’

티타노보아(왼쪽)와 현생 아나콘다 척추(오른쪽).

티타노보아(왼쪽)와 현생 아나콘다 척추(오른쪽).

연구진은 화석을 실험실로 옮겨 비교해부학적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 화석이 실제로 뱀의 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척추뼈의 크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결과 길이는 12.8±2.2m로 지금까지 기록된 뱀 가운데 가장 컸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일부분의 뼈밖에 없는데 어떻게 전체 크기를 추정할까? 뱀은 골격을 구성하는 뼈의 수가 증가하기보다는 척추뼈가 커져서 몸크기가 커지므로 현생 뱀의 몸과 척추 크기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면 화석 척추의 크기로 화석 뱀의 몸 크기를 파악할 수 있다.

발굴지 이름을 따서 티타노보아 세레조넨시스(Titanoboa cerrejonensis), 즉 ‘세레혼 지방의 거대한 보아 뱀’이라는 학명이 붙은 뱀은 즉시 대중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많은 박물관들이 티타노보아 복제 모형을 전시하였으며 수많은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다.

연구를 지휘한 토론토대학의 진화생물학자 제이슨 헤드는 티타노보아처럼 커다란 뱀이 존재했다는 사실에서 다른 통찰을 얻었다. 티타노보아 같은 거대한 냉혈동물이 살았다는 것은 당시의 환경이 이전에 추정했던 것보다 훨씬 따뜻하고 습했다는 점을 시사했다. 티타노보아의 발견은 당시 기후 환경에 대한 다른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그렇다면 티타노보아가 살았던 시절 콜롬비아는 어떤 환경이었을까? 뱀은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지 못하는 외온성 변온동물이다. 대형 외온성 변온동물은 일반적으로 열대지방에서 발견되는데 적도에서 멀어질수록 그 크기가 작아진다. 각기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는 같은 동물의 최대 몸 크기를 비교하면 연평균 기온을 추정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당시 남아메리카 적도 지역의 연평균 기온을 32~33도로 계산했다. 이 값은 현대 열대림의 기온을 6~8도 초과하지만 강우량이 더 많았기 때문에 생물이 사는 데 있어 현대와 큰 차이 없었을 것이다.

6600만년 전 거대한 소행성 충돌로 공룡이 멸종한 후 1000만년 동안의 자연사에서 열대 척추 동물 페이지는 백지 상태였다. 발견된 화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대한 뱀이 등장했다. 소행성 충돌이 적도를 따라 열대우림을 탄생시켰다. 2009년 처음 티타노보아가 발견된 지역은 바짝 마른 탄광 지대이지만 과거에는 거대한 습지의 일부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큰 민물거북과 멸종된 악어의 잘 보존된 아름다운 골격과 함께 다양한 물고기 화석도 발견했다. 이 지역은 바다와 가까운 큰 강줄기 유역이었음을 말해준다. 티타노보아는 아마 당대에 가장 큰 비해양 동물이었을 것이다.

생명체가 넘쳐나 티타노보아가 번성하기에 이상적인 조건을 제공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뱀은 너무 무거워서 나무에서 살 수는 없었다. 그래도 괜찮다. 누가 감히 그를 건드리겠는가. 물 가까이에서 땅을 차지하고 살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활동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먹이를 기다렸다.

무엇을 먹었을까? 초기 연구자들은 티타노보아가 거대 거북이나 악어를 쉽게 제압하여 통째로 삼킨 후 몇 달에 걸쳐서 소화시켰을 것이라고 봤다. 1년에 고작 서너 번 먹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근처에서 껍질이 깨진 거대한 거북도 발굴되었는데 대형 생명체의 공격을 받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티타노보아의 공격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거북일 가능성이 높다.

뱀은 일반적으로 자신과 거의 같은 무게의 먹이를 삼킬 수 있다. 만약 주변에 들소가 있었다면 들소도 잡아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포유류는 주된 먹이가 아니었다. 당시는 포유류들이 오늘날처럼 다양하게 생태계의 틈새를 채우기에는 아직 시간이 모자란 시기였다.

두개골이 알려준 진실

2004년까지 발견된 티타노보아의 화석은 총 30개체 186개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생식과 배설을 담당하는) 총배설강 앞쪽의 흉추(가슴 부위 척추)였다. 흉추에 뒤쪽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짧은 전지갑상돌기(prezygapophyseal)가 있다는 점은 다른 보아 뱀과 같지만 T자형의 견고한 척추는 매우 독특한 특징이다.

2011년 다른 탐사대가 세레혼에서 티타노보아 세레조넨시스의 두개골 3개를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두개골에 관한 구체적인 논문을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2013년 척추동물 고생물학회 발표 초록에 간략하게 언급했을 뿐이다.

두개골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두개골의 길이는 40㎝였다. 현존하는 보아 뱀의 두개골 길이와 몸 길이 비율을 티타노보아에 적용하면 몸 길이는 이전의 추정보다 훨씬 긴 14.3±1.3m로 최대 15.6m에 달한다(길이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와 같지만 무게는 6분의 1에 불과하다). 티타노보아의 두개골과 기타 뼈에 관한 골학 연구는 티타노보아가 태평양 섬 마다가스카르 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신대륙과 구대륙의 뱀을 연결하는 최고의 역사적 증거이며, 분화시기를 5800만년 전으로 제한한다.

티타노보아는 다른 보아 뱀보다 입천장 이빨과 경계 이빨의 위치가 높다. 뱀은 이중관절 경첩 역할을 하는 정방형뼈(방골, quadrate bone)로 위턱과 아래턱이 연결되어 있다. 이 뼈 덕분에 위턱과 아래턱을 최대 150도까지 벌릴 수 있는데 티타노보아의 정방형뼈는 낮은 각도로 향해 있다. 구개골에서 익상골, 익상골에서 사두골 사이의 관절이 매우 줄어있는데, 이것은 다른 친척 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다. 이빨 자체는 살짝 강직되어 있는데, 이것은 턱뼈에 강하게 결합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티타노보아는 최고 포식자 노릇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물고기를 잡아먹는 데 특화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왜 멸종했을까?

아무튼 분명히 지배적인 동물이었을 티타노보아를 멸종으로 이끈 재앙적인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거대한 동물은 상대적으로 화석으로 남기 쉽고 또 자주 발견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티타노보아는 2009년에야 처음 발견되었으며, 이후 몇 차례 더 화석이 발견되었지만 거대한 규모에 비해 발견된 횟수가 지나치게 적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티타노보아가 살던 지역의 생물다양성이 지금까지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화석을 찾으려면 맨땅이 드러나야 한다. 작은 조각이라도 땅 위로 드러나야 발견된다. 공룡 화석이 발견되는 곳은 주로 중국, 몽골, 미국 등의 사막지대다. 열대우림의 경우 화석을 품고 있는 암석이 풀과 나무로 가려져 있다. 화석 탐험지로 적당하지 않다. 실제로 대부분의 화석은 고위도 지역에서 발견된다. 사막이 많기 때문이다. 현생 생물 다양성의 보고는 열대우림이지만 자연사를 밝혀주는 보고는 고위도의 사막지대다. 티타노보아 화석이 발견된 것은 열대우림이 노천광산으로 개발되면서 자연이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티타노보아의 멸종 원인은 아직 알 수 없다. 화석을 찾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티타노보아의 운명이 유별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원인을 짐작할 수 있다. 첫째 가설은 지구가 식었기 때문이다. 지구 온도가 내려가면서 열대우림의 온도도 내려갔다. 티타노보아 같은 거대한 외온성 변온동물은 체온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더 많이 먹어야 했지만 덩치가 커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점차 작은 뱀 종들이 등장했다. 작은 뱀과의 먹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가설에는 많은 의문이 따른다. 요즘 열대우림이 줄어드는 이유는 온도가 내려가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구가 더워지고 인간에 의해 숲이 줄어들기 때문 아닌가!

티타노보아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스가 멸종한 지 불과 600년 만에 열대 생태계를 지배했다. 현재 전 세계에 살고 있는 뱀은 총 3500종. 이 가운데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종은 약 200종에 불과하다.

뱀은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생물이다. 얼마나 중요하고 귀한 생물인지 매년 7월16일을 ‘세계 뱀의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니까 제헌절 전날은 뱀의날이다.

■필자 이정모

[멸종열전]따뜻하고 습한 지구에서 번성한 ‘역사상 가장 큰 뱀’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고 있는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하려면 지난 멸종 사건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과학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살아 보니, 진화>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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