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노장 배우들의 볼 맛 나는 연기

문학수 선임기자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를 쓴 김광탁은 40대 중반의 극작가입니다. 이 연배의 아들들은 아버지와의 다정한 추억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저 덤덤하고 무뚝뚝한 부자 관계가 일반적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갈등을 품고 사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아마 이 연극의 작가도 그랬을 거라고 짐작해봅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 특히나 암 같은 병으로 고통과 싸우다 세상을 떴을 경우에는 아들의 가슴에 일종의 회한이 오래도록 남습니다.

이 연극은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바치는 레퀴엠과도 같습니다. 레퀴엠은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음악이지요. 아버지를 보낸 작가가, 간암과 싸우던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보냈던 순간들을 한 편의 희곡 속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그래서 극적인 상황과 대사들이 매우 세밀하고 현실적입니다. 무대에서 90분간 펼쳐지는 이야기는 한 편의 연극이라기보다 마치 실제 상황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언젠가 연습실에서 작가와 아주 짧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명치끝에 뭐가 걸린 듯하더니, 이 작품을 쓰고 나서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어요”라고 하더군요.

무대는 어느 농가주택입니다. 안방문과 부엌, 대청마루가 있고 마당에는 아버지가 집을 지을 때 심었던 세 그루 나무가 제법 무성한 잎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마당 귀퉁이에 수돗가, 그 옆에 화장실도 있습니다. 평범한 시골집이지요. 중년 이상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우리집’의 모습일 겁니다. 이 무대는 연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습니다.

관람 포인트는 뭐니 뭐니 해도 배우들의 무르익은 연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모두 다섯 명의 배우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아버지와 어머니로 등장하는 두 노장 배우, 신구와 손숙의 연기는 그 자체로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할 만합니다.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된 아버지가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화장실로 가는 장면, 그 비틀거리는 뒷모습이 묘하게 가슴 아립니다. 아버지는 걸핏하면 “홍매야, 홍매야”하며 아내의 이름을 부르지요. “어디 가지 말고, 내 곁에 있으라”고 어리광을 피웁니다. 아내는 남편이 간신히 잠들면 “우리는 별로 금실 좋은 부부도 아니었는데, 당신이 가려고 하니 내 마음이 너무 아파”라며 자신의 가슴을 쥐어박습니다.

지난해 초연 때의 배우들이 이번에도 모두 등장하는 까닭에 연기 호흡이 매우 안정적입니다. 아들과 며느리로 등장하는 정승길과 서은경, 이웃집 정씨 역할을 맡은 이호성도 차진 연기력을 선보입니다. 특히 이호성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이 연극에서 나훈아의 <고향역>을 엉터리로 열창하면서 관객의 배꼽을 흔듭니다.

간암으로 죽어가는 아버지의 이야기이지만 눈물 콧물 빼놓는 최루성 연극은 아닙니다. 담담하고 세밀한 묘사로 긴 여운을 남깁니다. 특히 저는 작가 김광탁과 연출가 김철리가 임종 장면을 연극 속에 넣지 않은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역시 아버지’입니다. 30일까지 공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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