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 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 - 전수안 전 대법관과의 인연

문정희 | 시인

▲ 내 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 | 라인홀트 메스너

[문정희의 내 인생의 책](3) 내 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 - 전수안 전 대법관과의 인연

한국 역사상 두 번째라는 여성 대법관이 취임을 하며 나의 시 ‘먼 길’을 낭송했다는 아침 신문을 읽고 나의 가슴은 순간 기쁨으로 출렁였다. 여성 대법관이 취임사로 시를 읽는 나라! 그것이 신문 1면에 실리는 나라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이다.

“나의 신 속에 신이 있다/ 이 먼 길을 내가 걸어오다니/ 어디에도 아는 길은 없었다/ 그냥 신을 신고 걸어왔을 뿐/…/ 삶이란 비상을 거부하는/ 가파른 계단”. 나의 시 ‘먼 길’을 나는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 보았다.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헌신하는 진정한 여성 대법관이라는 그분에 대한 소개를 듣고도 정작 직접 만난 것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진지하고 겸손한 분이었다. 조촐한 식사 후 수줍은 듯 내게 선물한 책이 바로 세계 최고의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의 <내 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이다.

행동하는 철학가, 세계 최고의 등반가, 메스너는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4봉을 완등한 모험가이다. 5년간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면서도 이순의 나이에 고비를 횡단하는 그에게 사막은 무(無)의 세계로의 여행이며 마음속 한가운데를 향한 꿈이었다. “사물과 자극이 없는 곳에서 인간은 우선 자기 자신에게 놀라 움찔한다. 그리고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 무에 기겁을 하고 물러난다. 이런 긴장 속에서 자기 안에 있는 사막을 발견한다.”

어느 철학서보다도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이 책은 표지에 쓰인 대로 마음속에 있는 사막 한가운데로부터 어딘가에 있을 반짝이는 오아시스를 향해 계속 나아가는 한 권의 서사시집이다.

전수안 대법관은 그 후 나의 시 ‘내가 한 일’이라는 시로 퇴임사를 하고 지난한 고봉 등정을 마친 등반가처럼 훌훌 법복을 벗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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