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명물로 뜨는 다문화청소년밴드 ‘FLY’

배문규 기자

‘서로 다르지만 우리 함께’ 노래하며 춤춘다

필리핀 등 외국인 부모 아이들 음악 나누며 문화 장벽 허물어

엄마의 ‘성화’로 시작했지만 블랙홀처럼 헤어나올 수 없죠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보광동의 한 음악연습실. 체구보다 더 커 보이는 악기를 둘러멘 아이들이 악기소리보다 더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오늘은 ‘삘’(feel)이 안 나오네. 입만 벌리고 소리 안 내면 안돼요.”

서울 이태원초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다문화청소년밴드 ‘FLY’ 멤버들이 지난 12일 보광동의 한 음악학원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서울 이태원초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다문화청소년밴드 ‘FLY’ 멤버들이 지난 12일 보광동의 한 음악학원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까불던 아이들은 연주가 시작되자 자못 진지해졌다. 앰프를 타고 울리는 전자음 사이로 보컬 이진군(13)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 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YB의 ‘나는 나비’가 클라이맥스에 달하자 아이들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이진군은 아버지가 영국인, 기타를 치는 채양진군(11)은 어머니가 필리핀인이다. 아버지가 인도인인 쵸프라 까야군(11)이 드럼을, 몽골에서 온 김희영군(11)이 키보드를 맡고 있다. 한국인 가정의 김선호군(10·기타)과 표재중군(11·일렉기타) 등 11명이 멤버다. 10명은 이태원초등학교에 재학 중이고, 이진군도 이 학교를 졸업했다. 다문화청소년밴드 ‘FLY’(Families Love You)의 멤버들이다.

“한국애들 피부색이 더 다르던데요. 선크림 대충 발라서 탄 애 안 탄 애 제각각….”

학교에서 피부색이나 출신국 때문에 차별이 있지 않느냐고 묻자 이군은 익살스럽게 되받았다. 채군의 엄마인 루씰린 리바야씨(43)는 “(낯선 곳에서 살면서) 소극적이던 아이가 밴드를 하면서 밝아져 친구 집에서 자고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외국인 학생이 가장 많은 이태원초등학교 학생들이 음악으로 언어와 문화의 벽을 허물고 있다. FLY는 교내는 물론 마을축제와 거리공연에도 나서면서 이태원의 명물로 떠올랐다.

이태원초에는 매주 18개국 국기가 번갈아가며 게양된다. 전교생 410명 중 48명(12%)이 외국인 부모를 두고 있다. 다문화가정 학생들이 많다보니 외국인 부모들이 자국 문화를 소개하거나 외국어를 가르치는 수업도 한다.

이 학교 학부모 10여명이 2012년 ‘서·다·우’(서로 다르지만 우리 함께)라는 모임을 만들고, 마을축제를 기획했다. FLY는 이 과정에서 결성됐다. 2011년 남편을 따라 인도에서 한국으로 온 서·다·우 대표 강민영씨(43)는 “까야가 한국말에 익숙해지면서 여유가 생길 무렵 결혼이민자와 장애인 가정에 눈길이 갔다”며 “아이들의 끼로 모임을 만들고 소통하고 싶어 밴드를 제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밴드는 지난해 이태원2동 어린이공원에서 열린 마을축제에 참가했다. 당시 부른 ‘나는 나비’에 착안해 밴드 이름을 ‘날다’는 뜻의 FLY로 붙였다. 마을축제 수익금은 필리핀 다문화가정을 위해 사용됐다. 강씨는 “아이들이 사랑의 힘으로 활짝 날아다니라는 뜻”이라고 했다.

지난 10월에는 요즘 한창 뜨는 경리단길에서 거리공연을 열었고, 관객들 호응도 폭발적이었다. 엄마들의 ‘성화’로 시작한 밴드지만 아이들은 “지금은 블랙홀처럼 헤어나올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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