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김산 ‘魂의 귀국’

“67년 만에 아버지의 혼이 조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리랑’ 독립운동가 김산의 아들 고영광씨가 아버지에게 추서된 건국 훈장 애국장 훈장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아리랑’ 독립운동가 김산의 아들 고영광씨가 아버지에게 추서된 건국 훈장 애국장 훈장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님 웨일스 소설 ‘아리랑(Song of Arirang)’의 주인공인 좌익계열 독립운동가 김산(본명 장지락). 그가 ‘트로츠키파 일제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중국공산당에 처형당해 순국한 지 67년. 그의 아들 고영광씨(68)가 광복 60주년을 맞아 아버지의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에 맞춰 한국에 왔다.

“아버지는 일제 첩자가 아니라 일제조차 회유할 수 없는, 꼿꼿한 분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만났던 분들을 두루 만나봤는데 그 분들은 한결 같이 ‘네 아버지는 멋쟁이 혁명가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순국 67년만에 명예회복-

고씨는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일본과 중국 국민당의 자료를 뒤졌다. 그는 ‘장지락은 번복시킬 수 없는 자다’라고 기술된 일본 경찰 문서를 찾아내기도 했다.

이에 자신감을 가진 고씨는 1978년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 달라고 중국공산당에 탄원했다. 5년 만인 83년 고씨는 중국 공산당 중앙조직부로부터 ‘김산의 처형은 잘못된 조치다. 그에게 덮어 씌워졌던 불명예를 제거하고 그가 지녔던 명예를 모두 그에게 되돌린다’는 결정을 받아냈다. 고씨는 당시 중국공산당 중앙조직부장이었던 후아요방(胡耀邦)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독립운동가 김산이 저희 아버지인 사실을 서른이 넘어서야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일본 첩자란 누명을 썼으니 어머니(조아평·趙亞平)도 아버지를 꼭꼭 숨기고 사실 수밖에 없었지요.”

고씨의 어머니는 “아들 이름을 ‘영광’이라고 지으라”며 보낸 아버지의 편지조차 읽고 없애버려야 했다. “어디서 돌아가신지도 모르는데 당연히 아버지 김산의 유품은 한 점도 없습니다. 아버지는 유품 대신 혼을 남겨주신 거지요.”

김산은 아들을 낳고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1937년이었다. 김산은 그 해 님 웨일스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인생역정을 그녀에게 구술했고 그녀에게 아리랑을 들려줬다. 그리고 그 다음해 가을, 김산은 짧은 33년의 인생을 마감한다. 님 웨일스는 41년 미국에서 ‘한 조선인 혁명가의 생애’라는 부제를 붙여 ‘아리랑’을 출간했다.

-“아버지 태어난지 100주년 뜻깊어”-

고씨의 어머니는 개가를 했고 고씨는 새아버지의 성을 따라 고씨가 됐다.

“어려서부터 독립생활을 했습니다. 초·중·고·대학을 혼자 힘으로 다녔지요. 문혁 때 사람들이 하는 김산의 얘기를 들었어요. 어려서 어머니가 하시던 것과 똑같더라고요. 그래서 김산에 대해 자료를 찾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묻고 다닌 거죠.”

그는 대학을 나와 하얼빈 공대 교원으로 근무했고 78년부터는 베이징에서 국가계획위원회 과학기술사로 일했다. 아마 평범하지 않은 그의 이력이 아버지의 복권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의 조국인 한국은 여전히 아버지를 외면했다. 해방 이후, 좌익 독립운동가였던 김산은 이념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는 남한 정부에 의해 철저히 숨겨졌고 님 웨일스의 ‘아리랑’도 출간되지 못했다. 오히려 김산이 적으로 꼽았던 일본에서 ‘아리랑’이 먼저 나왔다.

군사정권을 건너 광복 60주년, 김산은 조국에서 자신의 명예를 되찾았다. 정부는 지난 15일 김산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아버지가 태어난 지 100년 되는 해에 훈장을 받아 더 뜻깊은 것 같습니다. 이젠 아버지의 혼도 조국으로 돌아온 겁니다. 67년 만의 귀국이지요. 아버지가 해방 뒤에도 살아계셨더라면 아마 남북통일을 위해 일하셨을 겁니다.” 고씨는 아버지의 훈장을 든 채 천장을 올려다봤다. 아버지 김산의 혼이 거기서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윤성노기자 ysn0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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