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 검증없이 대서특필

한국 과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구 성과가 뒤늦게 ‘과장 발표’ 논란에 휘말렸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김현탁 박사팀의 연구는 정부의 예산지원과 함께 정부 산하기관이 직접 연루돼 있다. 비록 한국물리학회가 정식으로 문제삼지는 않았지만 진상조사에 나선 자체만으로도 파장이 예사롭지 않다.

◇조사 배경=학회가 회원의 연구 성과에 대해 진상조사를 벌이는 것은 일종의 금기로 돼 있다. 이런 관행을 깨고 사태 파악에 나선 것은 물리학계 전체의 신뢰성과 연관돼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또 국내의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세계 물리학계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도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그만큼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이 과정에 참여한 한 물리학자는 “연구 성과가 적당한 수준에서 알려졌다면 학회가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주요 연구기관인 ETRI에서 한 개인의 주장이 여과없이 받아들여지고 이후 청와대에서 ‘최고과학자 선정’ 운운하는 일련의 사태를 보며 물리학계가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논란은 뭔가=물리학회나 관련 학자들은 김박사팀의 연구 성과에 대해서는 “실험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실체’와 달리 과대 포장된 것이 아니냐는 게 논란거리다.

발표 당시 언급된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업적’ ‘56년간의 미해결 과제 규명’ ‘만유인력 이후의 최대 발견’과 같은 표현이 대표적인 사례다.

분과위원회에 의견을 낸 한 물리학자는 “김박사가 논문을 발표한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의 ‘영향력 지수’(국제 학술기관이 평가한 인용 빈도)는 3~4 정도로 열심히 연구하는 국내 학자들은 한번쯤 발표하는 곳”이라며 “저널의 수준만큼만 평가하면 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연구원과 김박사는 “연구 내용을 직접 보지 않고 다른 연구진의 성과를 재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연구 내용을 빨리 발표하기 위해 해당 저널을 택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박사는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언급한 일본 야수모토 다나카 박사에 대해 “일본 학회에서 만나 획기적인 연구 성과라는 칭찬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연구 결과가 미칠 경제적 파급효과도 논란거리다. 당시 연구원측은 경제 파급효과가 1백조원에 달한다고 했다가 뒤늦게 88조원으로 수정했다. 이마저도 정확한 분석수치가 아니라 20년 뒤 반도체 시장에서 소자가 차지하는 비중(1%)을 곱해 계산한 값이다.

국내 한 금속산화물 연구자는 “산화물 박막을 초미세(나노) 구조로 만드는 국내외 과학자들의 업적에 비해 김박사의 구조물은 수백마이크론 크기여서 수준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이번 논란을 놓고 일부에서는 “특정대 중심의 물리학계가 지방의 연구 성과를 홀대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파장은 어디로=물리학회와 연구팀 간에 극한적 대립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물리학회 김채옥 회장은 “김박사를 초청해 강연을 들어보고 판단하자거나 공식의견을 내자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학회 회원의 화합을 중시해 공식 견해로 채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박사팀에 대한 지원은 계속될 전망이다. ETRI는 지난 4년간 29억원을 김박사팀에 지원했다. 임상규 과학기술혁신본부장과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도 지난주 ETRI를 찾아 브리핑을 들었다. 박기영 보좌관은 “과학계의 우려는 전해들었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 계획은 계속 검토 중”이라며 “추후 성과물을 보고 판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은정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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