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로 돌아갈래요” ‘문과 침공’ 1년 뒤, 이과생들은 떠날 준비 중

김나연 기자

자연계로 반수·전과 시도하는 이과생들

“문과 공부 적응 안돼 강의 못 따라가···

더 좋은 대학 왔지만 전공 흥미 못 느껴”

지난 9일 충북 청주시 세광고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수능 성적표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지난 9일 충북 청주시 세광고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수능 성적표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고려대학교 인문계열 학과 1학년 허유민씨(19)는 고등학생 때 컴퓨터를 좋아하는 이과생이었다. 관련 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지난해 수능에서 기대보다 낮은 성적을 받아 인문계열 학과로 교차 지원했다. 허씨는 15일 기자와 통화에서 “A대학교 공학계열 정도까지 지원할 수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교차 지원했다”고 했다.

허씨는 올해 여름방학에 반수를 결심하고 지난달 17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다시 봤다. 그는 “하고 싶었던 공부와 괴리가 있어 우울감을 느꼈다”며 “학교 강의도 따라가지 못하게 되자 차라리 휴학 후 반수를 하자고 생각했다”고 했다.

의대 지망생이던 B씨(21)는 지난해 교차지원을 해 한국외국어대학교 어학계열 학과에 진학했지만 올해 다시 자연계열 대학에 수시 원서를 넣었다. 그는 “인문계열 공부에 적응하지 못했다”며 “원래 성적대로라면 C대학교 자연계열에 지원할 수 있었는데 단순히 대학만 보고 인문계열 전공을 선택해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원래 이과생이었다가 올해 고려대학교 어문계열 학과에 입학한 D씨(21)는 자연계열 학과로 전과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전공에 흥미를 느끼기는 했지만 취업이 힘들다 판단했다”며 “전과를 위해 자연계열 강의를 미리 수강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문·이과 통합수능 첫해였던 지난해 ‘문과를 침공했던 이과생들’이 반수와 전과를 통해 다시 이과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 수능에서 이과생들이 주로 선택하는 ‘미적분’과 ‘기하’의 표준점수가 문과생들이 선택하는 ‘확률과통계’보다 3점 높게 나오면서 이과생들이 상위권 대학 인문계열로 교차 지원하는 사례가 많았다.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가 지난해 서울 주요 대학 정시모집 인문계열 지원자 1630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8개 대학의 인문계열 학과에서 이과생 교차지원 비율은 절반 이상이었다. 서강대(80.3%), 서울시립대(80.0%)는 80%를 넘었고 한양대(74.5%)와 연세대(69.6%)가 그 뒤를 이었다. 진학사가 지난해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서도 이과생 교차지원 비율은 서강대 63.51%, 서울시립대 55.83% 등으로 절반을 넘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올해 반수나 전과 등을 통해 이과로 복귀하려고 하고 있다. 지난 4월 입시기관 유웨이가 인문계열로 교차 지원한 이과생 45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반수 의향이 있다’는 응답자는 27.5%. ‘상황에 따라 재도전할 수도 있다’는 응답자는 28.4%를 차지했다. 올해 수능 응시자 중 ‘졸업생 이상 수험생’의 비율은 31.1%로 26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올해 입시 절차가 끝나면 인문계열 학과로 진학했던 이과생들이 학교를 이탈한 상황이 명확하게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학교에서 자연계열로 전과하는 학생까지 합치면 ‘이과로 돌아가는 학생’의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대학 이름만 보고 인문계열에 갔다가 못 버티고 나온 반수생들이 상당히 많다”며 “상위권 대학은 전과하기도 어려워 이탈자가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인문계열 학생들의 ‘이과 복귀’ 현상은 대학 분위기에도 영향을 준다. 서강대 인문계열 1학년 E씨(19)는 “2학기가 되자 같이 놀던 동기 중 절반 가까이가 반수를 위해 휴학해 동떨어진 기분이었다”고 했다. 조상식 동국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등록과 동시에 휴학해 반수 같은 전략을 짜는 학생들이 많아 학사 관리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며 “대학에서 중도 탈락자를 관리할 때 교차지원 이과생들을 위험군으로 분류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소모적이라며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대학에도, 학생에게도 마이너스인 구조”라며 “문·이과에 따라 생기는 유불리 문제를 반드시 시정하고, 학생들이 정말 가고 싶은 과를 갈 수 있게 하는 선진적 시스템을 벤치마킹 해야 한다”고 했다. 조상식 교수도 “중고등 교육에서부터 융복합 교육과정을 선행해야 교차지원 후 발생하는 문제가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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