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따라, 붓따라’최고 서예가들

우리시대에 글씨는 누가 가장 잘 쓸까. 미술사가 유홍준씨(명지대 교수)의 ‘완당평전’과 그 출간기념 작품전으로 추사와 서예 바람이 일면서 새삼 한국 현대서예 명필은 누군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업 서예평론가 정충락·손병철씨 2인과 함께 지난 세기 명필과 당대 명필권의 서예가들을 꼽아본다.

명필은 글씨만 잘 쓴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쓰는가라는 철학적인 문제에 직결돼 있다. 심상을 표현하는 예술인 만큼 쉽고 솔직해야 한다. 숭문(崇文)을 통해 글씨와 글의 동시수용, 상호보완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한국서예는 계속 중국·일본에 뒤질 수밖에 없다.

안중근 의사와 김구 선생 같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 거는 기개와 정신을 글씨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매국노 이완용과 친일 서예인 김돈희 같은 인물의 글씨는 제아무리 좋아도 전혀 값이 나가질 않는다.

그런 면에서 3·1 독립운동 민족대표의 한분인 위창 오세창(1864~1953)은 민족 서예의 높은 봉우리다. 자신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서예가며, 많은 서화를 수집한 수집가이자, 문자의 근원을 본격 연구한 학자이다. 그에 비하면 해강 김규진(1868~1933)은 글의 재미, 글씨의 재미, 사진·미술의 재미를 즐긴 대가였으며, 석재 서병오(1862~1935)는 글·글씨·전각·예술적 놀이를 아는 걸출한 서화가였다.

이러한 예술정신은 해방 후에도 이어졌다. 소전 손재형(1903~81)은 추사 이래 최고의 문자 조형예술가로 꼽힌다. 그의 글씨는 한문 5체가 다 용해돼 있으면서도 독창적이었다. 역사적으로 없었던 일이다.

검여 유희강(1911~76)은 반신불수로 왼손으로 글씨를 쓰면서 검여풍을 더욱 확실하게 다진 서예가이다. 일중 김충현(81)은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인물이다. 20대에 서예교과서를 만들었으며 고전을 바탕으로 김충현식의 글씨를 썼으나 와병중이어서 안타깝다. 아우 여초 김응현(75)도 당대 명필이라 하나 형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다.

‘현대 전각의 아버지’ 철농 이기우(1921~93)와 중국 제백석풍을 수십년간 연구한 회정 정문경(80)도 빼놓을 수 없는 지난 세기의 전각을 겸한 대표적 서예가이다.

그러면 21세기는 어떠한가. 나이에 관계없이 행초는 월정 정주상(77)이 가장 잘 쓴다. 한창 활동중인 50대 중진들을 살펴보면 목간·한간을 포함한 예서·행초서는 권창륜(59)이 단연 우뚝하다. 행서의 인영선(56) 역시 명불허전이다. 그 실력은 지난주 전시를 통해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전서·행초엔 정보인(60)·전도진(54)·전종주(52 )·안종중(56)이 뛰어나다. 현대적 서예로는 김양동(59)과 김구해(55)가 매력있는 글씨를 보여준다.

고전을 재미있게 표현한 작가는 이번주 예술의전당에서 작품전을 갖고 있는 정도준(54)과 이돈흥(55)을 들 수 있다. 한글에선 신두영(58)과 정문장(58)이 확실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어 조수현(54)이 질박한 행서를 구사하고, 선주선(49)은 5체에 두루 능하며, 대구 조용철(51)은 생경한 행초가 맛이 있다.

이밖에 현대서예의 여태명(46)·석용진(44), 전통과 현대서예를 넘나드는 이숭호(46), 한글의 조형성을 부단히 계발하고 있는 최민열(49)의 활약상이 눈길을 끈다. 채순홍(46)·조성주(51) 등은 스스로 글을 짓는 부단한 노력과 실험, 조형의지로 무장하고 있어 한국 서예의 앞날을 밝게 해주고 있다.

/이용전문위원 ly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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