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후보 탐구](2)집안내력과 가계-노무현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가계는 ‘보통사람’들이다. 가족·친인척을 둘러봐도 내로라할 명망가는 없고, 가난한 서민층이 많다. 노무현이 집안의 ‘큰바위 얼굴’인 셈이다. 노무현은 1946년 9월1일(음력 8월6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서 아버지 노판석(盧判石·76년 작고)씨와 어머니 이순례(李順禮·98년 작고)씨의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당시 이씨 나이는 43세. 형 건평씨(60)는 “난산이어서 아침무렵 읍내 남산병원장을 불러왔고, 끝난 뒤 의료기구를 씻던 기억이 난다.

병원장은 ‘애가 너무 커서 힘들었다’고 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어머니가 생전에 ‘무현이를 잉태할 때 꿈을 함부로 말하지말라’고 당부했다”며 건평씨가 전해준 태몽에는 말(馬)이 등장한다. “백말이 말뚝에 매어있는 데 할아버지가 고삐를 주면서 타고 가라 했다. 엄청나게 큰 말이 발굽을 내딛는 소리가 우렁찼다”는 내용이다.

노무현의 본관은 광주다. 광주 노씨 광주파의 32대 손(孫)이고, 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이 32대 위에서 갈라진 교하파다. 16대조는 정승을 했고 10대조 해은(海隱)공은 벼슬하다 임금의 오해를 사 이 지역에 내려와 은거했다고 한다. 9대조(경남 고성)를 거쳐 8대조부터 김해에 정착했고, 그의 부인(전주 최씨)은 어사 박문수가 임금에게 추천해 지금도 마을에 열녀비가 서 있다.

부친 판석씨는 같은 본산리 출신인 어머니 이씨 부친에게 한학을 배우다 눈에 들어 사위가 됐다. 판석씨는 일제말기 3년간 일본(타이어 재생공장)과 중국 상하이에서 돈을 벌어왔으나 사기를 당해 다 날렸다. 노무현의 친구 조용상씨는 “까막눈들의 편지를 써주고 읽어준 자상한 분”, 부인 권양숙씨는 “속이 깊었던 무골호인”으로 기억한다. 다만 “배고파 죽어도 아버지는 방법을 몰랐고, 수동적이었다”(건평씨)고 하듯 경제적 능력이 없어 어머니의 구박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75년 3월 노후보가 사시에 합격하자 “고생 끝났다”며 기뻐하다 열달만에 눈을 감았다.

어머니 이씨는 강단있고 생활력이 강했다. 노무현은 “환갑이 넘도록 가난과 싸우며 고구마순과 딸기를 이고 30~40리 길 마산까지 내다 팔았다”고 말했다. 마을 이장을 지낸 이재우씨(진영농협 조합장)는 “입담이 좋아 방송국에서 흉년 취재오면 무현이 어머니가 마이크 앞에 섰다”고 말했다. “까마귀 와도 먹을 게 없어 그냥 간다”는 말도 인터뷰때 나왔다.

건평씨가 전하는 판석씨 부부의 아슬했던 기억은 “6·25때 마을에서 좌익들이 죽창을 들고다니며 아버지도 함께 하자고 다그쳤다. 어머니는 ‘파출소 가면 총·칼·법이 있는 데 잡혀가면 죽는다’고 막았고, 아버지는 산으로 피신했다. 뒤에 좌익들은 총살당했고 ‘우익 저년’ 소리듣던 어머니의 지혜가 모두를 살렸다”는 것. 권양숙씨는 “남편은 지기 싫어하는 것부터 어머니를 닮았다”고 말했다.

노무현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법률공부를 한 큰형 영현씨(73년 작고)다. 부모의 교육열을 업고 당시 진영읍에서 유일하게 대학(부산대 법대)을 다녔다. 건평씨는 “형 학비로 논·밭·집터가 차례로 팔렸고 집에서는 형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현씨가 고시에서 좌절하며 가세는 더 기울었다. 형 학비 때문에 중학교 나와 야간고를 다닌 건평씨가 지금은 장자(長子)다. 68년 5급시험(지금은 9급)에 붙어 10년간 세무공무원을 한 뒤 고향에서 과수원 농사를 짓고 있다. 60년대 마을에 흑백TV를 처음 사온 것도 건평씨다. 누나 명자씨(74)·영옥씨(64)는 일제때 소학교만 나와 농사·양복점을 하던 집에 시집갔다. 처가는 노무현이 중학교 1학년때 본산리로 이사왔다. 대나무가 많아 ‘대밭집’이라 불렸다. 면서기를 지낸 장인은 친구들과 막걸리에 메틸알코올을 섞어 마셨다가 실명했다. 지금도 논란중인 6·25때 부역혐의로 장기 복역도중 71년 옥사했다. 권양숙씨가 말할 때 눈시울부터 붉히는 할아버지 권복룡씨(작고)와 어머니 박덕남씨(82)는 당시 농사를 지었다. 박씨는 외아들 기문씨(47·부산 ㅎ은행 지점장)와 살고 있다.

노무현은 슬하에 남매를 뒀다. 건호씨(29)는 올 8월 연세대 법대 졸업반으로 LG전자에 입사할 예정이며 홍익대 역사교육학과를 나온 정연씨(27)는 영국대사관에 근무한다. 노무현의 조카 11명은 교사·목욕탕주인·농부·웹에이전시·학생 등 평범한 생활인들이다. 둘째 누이 영옥씨의 사위 정재성씨가 서울대 법대를 나와 부산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다. 처조카 7명도 교사와 회사원, 나머지는 학생이다.

〈이기수기자 k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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