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인의 계보학]카뮈 대 사르트르 논쟁

카뮈의 철학 에세이 ‘반항인’은 1951년 10월에 출간되었다. 시대와 시대의 악을 분석하고 있는 이 책에서 카뮈는 미래에 다가올 인류의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혁명가들이 구금과 살육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역사의 이름으로 이데올로기가 전권을 휘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소련에서 벌어지고 있는 스탈린의 혁명을 비판적 시각에서 고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에 대해서도 문제점들을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있는 ‘반항인’은 출간되자마자 당연히 공산당과 공산당계 지성인들로부터 맹렬한 공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카뮈가 공산당으로부터 공격을 당한 것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루이 아라공, 앙드레 브르통, 피에르 댁스, 에마뉘엘 다스티에 드 라 비에르지 등 수많은 공산당계 지성인들에게 이미 오래 전부터 공격 대상이 되었다. ‘반항인’의 저자는 이들의 공격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카뮈의 폐부를 정면으로 찌르고 나선 것은 전혀 예기치도 못했던 인물이었다. ‘반항인’이 출간되었을 때, 사르트르는 자신의 잡지에 단 한줄의 서평도 싣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렇다고 화제의 책으로 모든 언론들이 언급하는 터에 침묵하고 넘어갈 수도 없다고 판단, 그는 제자인 마르크스주의자 프랑시스 장송에게 서평을 쓰도록 전권을 위임했다.

52년 5월호 ‘현대’지는 프랑시스 장송이 쓴 ‘알베르 카뮈 혹은 반항한 영혼’이라는 시빗조의 서평을 실었다. 장송은 기사의 첫머리에서부터 카뮈의 이데올로기를 문제삼아 노골적인 인신공격에 들어간다. 더 나아가 카뮈의 철학을 아나키즘에서 차용한 애매한 휴머니즘이고 누구든지 손쉽게 주무를 수 있는 플라스틱 사상이라고 비하한다. 장송의 판단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이론이 논리적으로 스탈리니즘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카뮈의 ‘반항인’은 위대한 실패작이라는 것이다. 이 비열한 서평을 읽은 카뮈는 반박문 ‘현대지 발행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편집자에게 발송한다. 이 반박문은 제목에서도 보다시피 카뮈가 서평의 장본인인 프랑시스 장송을 철저하게 무시한 채 ‘현대’지 발행인 사르트르를 겨냥하고 있었다.

52년 8월호 ‘현대’지는 카뮈의 편지와 사르트르의 ‘알베르 카뮈에게 보내는 답신’, 그리고 장송의 반박문 ‘귀하에게 모든 걸 말하자면’을 동시에 게재한다. 친구인 사르트르를 ‘발행인님’이라고 의도적으로 ‘님’자를 붙여 시작하는 편지에서, ‘카뮈는 좌파이냐 우파이냐에 따라서 한 사고의 진실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절대자로 간주하는 사고를 비판하는 것이고, 마르크스의 이론이 내포하고 있는 유토피아적 메시아니즘의 모순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밝히면서, ‘모순과 지적 폭력을 휘두르며 자신의 출신을 속죄하고자 하는 부르주아 지성인들의 위선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뼈있는 말을 잊지 않고 덧붙인다. 카뮈가 말하는 ‘부르주아 지성인들’에 사르트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말하나마나다. 카뮈의 편지 내용보다는 그 형식에 몹시 기분이 상한 사르트르는 ‘친애하는 내 친구여, 우리의 우정은 결코 쉽지가 않았지만 나는 이제 이 우정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자 하네. 자네가 오늘 우리의 우정을 깨뜨리는 것은 아마도 이 우정이 깨뜨려지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일 걸세’라고 응수했다. 또한 사르트르는 카뮈가 자기를 부르주아로 취급한 데 대해 ‘자네가 옛날에 가난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가난뱅이가 아니야. 장송이나 나처럼 자네도 부르주아야’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철학자 사르트르는 ‘자네 책이 단지 자네의 철학적 무능력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라면? 수박 겉 핥기 식으로 그러모은 지식들로 채워져 있다면? 자네의 논리가 아주 정확한 게 아니라면? 자네의 사고가 진부하고 애매한 것이라면?’이라고 직격탄을 퍼부었다. 이것으로 카뮈와 사르트르의 10년 우정은 끝이 났다. 60년 카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둘은 단 한차례도 얼굴을 마주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우정을, 인간을 선행한 것이었다.

/이기언 연세대 불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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