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노래읽기

(14)김수희의 ‘남행열차’

요즘은 사정이 많이 바뀌었지만, ‘기차’는 근대의 표상이었다. 1970·80년대에 성장한 세대에게는 어떨까? 아마도 그것은 ‘이촌향도(離村向都)’의 표상이 아니었을까? 촌스러운 가방 하나 달랑 메고 고향을 떠나, 취업을 위해 도시로 떠나온 세대에게 기차, 특히 야간열차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중심에 놓일 것임이 분명하다. ‘짠 짜짜짜짠 짠짠 어둠을 뚫고 야간열차야 가자 지금껏 살아온 모든 것 버리고 너에게 몸을 실었다.’ 박진도의 ‘야간열차’는 그 내면 풍경을 가장 잘 보여주는 노래임이 분명하다.

김수희의 ‘남행열차’ 역시 동일한 문맥에서 주목할 만한 노래이다. 박진도의 ‘야간열차’가 남성적 상상력에 기반을 둔 노래라면, 김수희의 ‘남행열차’는 다분히 여성적 상상력에 기반을 둔 노래이다. 그래서 ‘야망’을 불태우는 내용이 ‘남행열차’에는 아예 없다. 다만 슬픈 이별과 그로 인한 그리움이 노래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첫사랑의 노래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별의 공간으로 열차, 그것도 남행열차,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비 내리는 호남선을 택했을까? 사실 이 노래에는 이별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다만 비 내리는 열차의 차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사실 비와 창이 어우러지면서 우울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그런데 열차가 우울함으로 이어지는 것은 생각처럼 흔한 것이 아님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열차의 양면성을 생각하게 된다. 열차가 근대의 표상인 것은 기관차가 근대 기계 문명의 힘을 나타내는 데 가장 적절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힘찬 출발의 상징인 것이다. 송창식의 ‘고래사냥’에서도 그랬고, 박진도의 ‘야간열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힘찬 출발’의 상징인 것이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이광수의 ‘무정’에서 주인 이형식이 근대적인 계몽 의지를 다진 것 역시 열차 안에서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열차는 이별과 그리움의 표상이기도 하다. 이은하의 ‘밤차’에서도 그랬고, 김민우의 ‘입영 열차 안에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소설에 눈을 돌려 보면 신경숙의 ‘기차는 7시에 떠나네’에서도 열차는 비슷하다. 그러고 보면 기차역은 그 이전 세대의 선창가나 항구와 비슷한 함축적 의미를 갖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웃으려고 왔다가 울고 가는 공간이었고, 기차역 역시 비슷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그 열차를 타고 상경한 세대가 지금은 무엇을 타고 있을까? 모르긴 모르겠으되, 상경 직후에는 버스를 타다가 지금은 전철이나 자가용을 타고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제 전철을 테마로 하는 노래가 나올 때가 아닌가? 아니 벌써 나왔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얼른 떠오르는 노래가 없다. 왜 그럴까? 그 세대들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기에 전철 노래가 나오지 않는 것일까? 아니 그들은 어디서 만나고 어디서 헤어지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노래가 ‘남행열차’다.

〈하희정|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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