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역사 편입과 청동기 기원

최근 교육부가 내놓은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수정본이 학계에 논란을 낳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두 문장이다.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건국하였다’와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에 한반도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됐다.’ 고조선을 역사에 편입시키고, 청동기 시대의 시작을 기존보다 500년 이상 올린 것이다. 이 문제를 놓고 한국 고고학계의 산증인 이형구 선문대 교수(63)와 고조선 연구로 널리 알려진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43·한국사)가 지난 2일 경향신문사에서 대담을 가졌다.

이형구 선문대 교수(왼쪽)와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가 지난 2일 경향신문사에서 국사교과서 수정 내용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재찬 기자>

이형구 선문대 교수(왼쪽)와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가 지난 2일 경향신문사에서 국사교과서 수정 내용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재찬 기자>

송호정=지난달 24일자로 7차과정 국사 교과서가 일부 수정됐습니다. 두 문장을 바꾼 것인데, 고조선과 관련된 부분은 기존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한다’를 ‘…건국하였다’로 고쳤고, 청동기 시대 부분은 청동기 시대의 상한 연대를 500년 이상 끌어올린 것입니다. 이 둘은 민족 정체성 정립에 매우 중요한 주제이기에, 교육부 편사학자들과 일반시민 또는 재야 사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수정은 매우 갑작스럽게 졸속으로 진행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형구=수정판 교과서는 고고학계의 연구 성과를 많이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가 기원전 1500년께에 시작됐다는 주장을 20년 전부터 펴왔습니다. 2002년판 교과서에도 요동반도, 만주 등지에서의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1500년 내지 1300년에 시작됐다고 하고 있죠. 요동반도 양두와(羊頭窪) 유적지의 장신구 청동편의 탄소연대가 기원전 1500년으로 나온 것 등이 그 근거였죠. 이제는 만주에 국한하지 않고 한반도까지 청동기 시대의 시작을 기원전 1500년께로 올린 것입니다.

송호정=하지만 상한선이 기원전 2000년까지 올라간 것의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 사이’라는 말은 모호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형구=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죠. 춘천 신내리, 정선 아우라지 등의 유적지에서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유물인 덧띠무늬토기가 새롭게 발굴됐습니다. 이 유물들은 기원전 1500년께 요동반도, 만주 등에서 발굴된 것과 비슷합니다.

송호정=중국 동북지방과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 상한을 올려 본다면 기원전 1500년까지로 볼 수도 있으나, 본격적인 청동기 시대는 아닙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기원전 1000년이라는 게 학계의 주된 견해입니다. 춘천 등의 덧띠무늬토기는 아직 학계의 검증이나 의견 수렴을 거친 것도 아닙니다. 현재로선 기원전 1500년도 무리가 있는 마당에 기원전 2000년이라뇨. 굉장히 성급하고 위험한 서술인 듯합니다.

이형구=다소 성급했다는 점에는 동감합니다. 하지만 기원전 15세기로 볼 수 있는 청동기 유적들이 춘천, 정선에서 나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저는 10년전 발굴한 진주 남강댐 옥방유적 방형 주거지에서도 덧띠무늬토기를 확인했습니다. 그 유적지의 탄소연대는 요동반도와 비슷합니다. 일각에서는 ‘청동기 없는 청동기 시대’라고 비판도 하지만 이 시대는 여러 정황상 본격적인 청동기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송호정=청동기 시대의 전형적인 유물은 비파형 동검, 반달돌칼, 미송리식 토기죠. 청동기가 쓰이는 시대를 청동기 시대라 불러야 합니다. 진주, 춘천의 경우처럼 작은 장신구 유물·유적들만 갖고 본격적인 청동기 시대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기원전 15세기까지는 그럴 수 있지만, 은근슬쩍 기원전 2000년께라고 덧붙여 놓은 건 또 뭡니까. 교과서 집필자(최몽룡 서울대 교수)가 정선, 춘천을 근거로 했다고 말했지만 이곳은 아직 발굴이 끝나지도, 보고서가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단군조선을 인정하고, 고조선의 건국시기인 기원전 2333년에 맞추려는 선입관이 작용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형구=북한은 청동기 시대 시작을 이미 기원전 2000~1500년으로 봤습니다. 북한에서 단군이 부정될 때의 견해도 그랬습니다. 미송리 토기도 기원전 20세기까지 올라간다는 견해를 많이 발표하는데 우리 편찬 집필자들도 그런 쪽을 많이 인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송호정=고고학계에서도 전형적인 청동기 유물은 기원전 10세기 위로 안 올라가는 게 주류입니다. 은·주 시대로 올려볼 수 있는 유적들이 있긴 하지만, 더 많은 학계의 논의를 반영하지 않고, 한두 유적만 근거로 교과서를 수정하는 것은 안 됩니다. 단군신화와 고조선 서술 문제는 내용 수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원래 어법에 맞는 문장을 틀리게 고친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교과서 편찬 수준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죠. ‘…고 한다’를 빼고 그냥 ‘건국하였다’로 했다고 해서 신화를 역사로 만들었다고까지 보는 언론의 호들갑도 사실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이형구=중학 교과서에는 ‘단군왕검이 부족들을 통합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는 식으로 돼 있습니다. 같은 해 나온 고교 교과서에는 ‘…고 한다’고 돼 있고요. 이번 수정은 고교 교과서를 중학교 교과서 서술과 일치시킨 것입니다. 다만 송교수 지적처럼 하나의 시기를 규정하는 데 ‘동북공정’이라는 국제적 분위기 같은 것에 영향을 받은 측면이 있어서 이 문제가 부각된 듯합니다.

송호정=중학 교과서는 어떤 전거 없이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단정하고 있지만 일단 어법에는 맞습니다. 하지만 고교 교과서는 삼국유사 등을 인용했기 때문에 ‘건국하였다고 한다’라고 해야 합니다.

이형구=맞는 말입니다. 문장 하나 바꿔서 국가가 형성됐다, 안 됐다고 말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고조선 건국은 현재로서는 그냥 삼국유사의 인용일 뿐입니다. 청동기 시대 문제는 고고학적으로 얼마든지 상향될 수 있지만 단군조선은 문헌 기록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한계를 극복하려면 고고학뿐 아니라 문헌 측면에서도 많은 것이 새롭게 나와야 합니다. 이런 문제는 재야나 강단 그런 차원을 떠나서 논의돼야 합니다. 기원전 2333년의 선입견에 맞춰 청동기 상한선도 기원전 20세기까지 올라간 게 아니냐고 하는데 나는 이번 기회에 그런 분위기를 인정하고 교과서에 응집해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송호정=단군조선 부분은 자구 몇 개 수정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내용적으로 많은 연구성과가 축적돼야 합니다. 비파형동검이 나오는 것이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보여준다고 한다면 단군조선 건국 관련 부분도 그렇게 근거를 갖고 서술해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 단군신화밖에 없습니다. 고조선이 교과서에 다뤄져야 한다면 단군조선은 어떤 사람이 어떻게 생활했다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지금은 빠져있거나 소홀히 다뤄지는 기자조선, 위만조선도 구체적으로 서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형구=우리 고대사 서술은 고고학적으로는 발전해 왔습니다. 하지만 역사학에서는 단군조선이든 위만조선이든 그냥 고조선이라고 하죠. 그 기간 동안 문화는 분명히 성장 발전해왔고, 이웃 중국과의 교류로 정치체도 끊임없이 변화했을 것인데, 그 부분은 전혀 서술되지 않고 있어요. 단군이라는 것은 어느 한 개인이라기보다 지휘자들의 연속일 텐데요.

송호정=글자 몇자 빼거나 숫자를 바꾼 배경이 무엇일까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자민족 중심의 역사관에 입각해 역사 기원을 조금 더 끌어올리고 중국과 비슷한 시기에 하나의 정치체가 출현했다는 식으로 바꿨는데, 그 과정에서 학계의 의견 수렴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을 너무 신경쓴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형구=그렇지는 않아요. 고고학계의 연구성과를 일정 부분 반영했죠. 다만 충분한 토론 없이 몇몇 개인의 의견이 반영된 측면이 있습니다. 재야 사학자들도 그들대로 들끓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송호정=소수 분들의 생각만 반영됐고 많은 사람들이 논의의 장에도 못갔습니다. 좀 심하게 얘기하자면 교과서 쓰시는 분이 총대 멘 거죠. ‘이번에 교과서를 수정하는데 동북공정 문제도 있고 하니, 일반시민, 학계의 의견 수렴도 해서 편찬하자’는 얘기가 나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집필자의 수정에 대해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국편) 편수관은 학계 의견을 정확히 수렴했어야 합니다. 결과는 집필자가 총대를 멘 격이 돼버렸습니다.

이형구=집필자의 독선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더 큰 잘못은 국편에 있습니다. 거기엔 고대사, 근대사, 통사, 역사교육 맡은 분들이 다 계신데, 그 분들의 직무유기입니다. 언론에서 얘기 다 된 뒤에 대처할 것이 아닙니다.

송호정=역사 교과서는 당대 역사학계의 연구 수준을 담아냅니다. 국편의 편수관들이 학계 주류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담당 집필자 개인 의견을 교과서에 싣는다는 그 구조 자체가 굉장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형구=사실 언론도 학계도 놓친 중요한 문제가 더 있습니다. 이번 교과서 수정에서 ‘아무르강에서 들어온 덧띠새김무늬 토기문화’라는 부분이 나오는데요, 이것은 1992년 이후 자취를 감춘 청동기 문화의 ‘시베리아 전래설’이 슬그머니 재등장한 것입니다. 시베리아 전래설은 민족의 기원 문제를 바꾸는 것입니다. 아무르강에서 새로운 덧띠무늬토기가 들어왔다고 하는 것은 80~90년대 역사서술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일제시대 때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송호정=민족문화 기원은 외부로부터의 전파보다는 요령성 지역에서 자생해 발전해왔다고 보는 게 요즘 축적된 연구인데, 그러고보니 일본학자들이 했던 얘기로 되돌아가는 서술이 됐네요. 동북공정에 대응한다는 논리 때문에 교과서가 수준 낮게 수정됐는데, 내용도 옛날로 돌아가버렸군요. 결론적으로 학문 외적인 부분이 너무 많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해 교과서를 만드는 시스템이 절실합니다.

이형구=교육부가 교사 지침서를 낼 때 이 점을 잘 반영했으면 합니다. 중학교 교과서 편찬 때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리|손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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