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들국화의 탄생과 데뷔앨범

들국화는 1982년 8월에 이촌동 ‘까스등’에서 전인권과 허성욱이 함께 공연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당시 전인권은 이주원이 이끄는 ‘따로 또 같이 1집’(79)에 참여한 이후 솔로 독립을 한 상태였고, 비공식 앨범 두 장을 79년과 80년에 각기 발표했다. ‘까스등’ 공연 전에도 전인권은 ‘조·이’라는 듀엣으로 활동하던 조덕환, 특별한 음악경력이 없었던 허성욱과 함께 강릉에 있는 나이트클럽 등에서 노래하곤 했다.

[커버스토리]들국화의 탄생과 데뷔앨범

그러다가 이영재, 이승희와 함께 트리오로 앨범(80)을 발표한 최성원을 82년 말에 만났고, 이듬해 4월의 이태원 ‘뮤직라보’ 공연부터는 최성원도 참여하여 3인조 체제가 되었다. 최성원이 팀명 후보로 ‘코스모스’ ‘들장미’ ‘들국화’ 등의 이름을 제시한 것 가운데 ‘들국화’를 선택함써 오늘날의 들국화가 있게 되었다. 현재의 팀명으로 공연을 한 것은 83년 11월 종로3가 피카디리 극장 옆 ‘에스엠’ 공연부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덕환이 참여함으로써 완벽한 라이업이 형성되었고, 85년 9월에 ‘역사적인’ 데뷔 앨범(사진)을 발표했다.

들국화의 데뷔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말 그대로 ‘역사적’인데, 왜냐하면 들국화 이전과 이후를 나눠서 얘기해도 좋을 만큼 ‘80년대 새로운 대중음악의 시작’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뮤지션 세대교체, 창작, 세션, 녹음 모든 부분에서 분기점이었던 이 앨범은 당시 언더그라운드에서 조용하게 창작에 몰두하던 신진 뮤지션들 중에서 먼저 치고 올라온 경우였고, 그 결과물은 이후 몇년간 유지된 ‘한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기’에서 전범 역할을 했다. 마치 90년대 얼터너티브록을 폭발시킨 촉매제 역할을 했던 너바나의 ‘Nevermind’(91) 같은 앨범이 들국화 데뷔 앨범이었다.

이후 들국화는 서울스튜디오에 그들의 팬 수백명을 데려다놓고 만든 ‘라이브 콘서트’(86)와 조덕환이 빠지고 최구희, 손진태, 주찬권이 가입한 ‘들국화 2집’(86)을 발표하고 나서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한다. 멤버들은 각기 활동을 했고, 들국화 재건에 몰두했던 전인권이 태백산맥 출신의 민재현, 송골매 출신의 이건태와 함께 ‘들국화 3집’(95)을 발표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2000년에는 윤도현밴드, 크라잉 넛, 델리 스파이스, 동물원, 언니네이발관, 강산에 등이 참여한 트리뷰트 앨범 ‘A Tribute To 들국화’가 나왔다.

〈박준흠|가슴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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