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라우(코트디부아르)·라고스 | 구정은 기자

쉬운 외화벌이… 국가는 ‘자원의 덫’ 국민은 ‘빈곤의 늪’

플랜테이션 농산물·광물자원 수출 의존 절대적

힘있는 자만 ‘오일달러’ 다수 농민은 ‘생존 위협’

코트디부아르는 세계 최대 카카오 생산·수출국이다. 아비장에서 서쪽으로 바닷가를 끼고 달리며 보이는 것은 모두 플랜테이션 농장들이어서, 대체 이 나라 사람들 먹을 것은 어디서 키우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시속 80㎞로 3시간을 달리는 사이 도로 양옆에는 팜(야자), 코코넛, 고무, 카카오 농장들이 계속 스쳐지나갔다. 그중 한 카카오 농장에 들렀다. 수확철이 아니어서 일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다국적 기업들의 하청업체나 현지 대지주들이 운영하는 팜 농장과 달리 카카오 농장은 대개 가족농 형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농사철에 일을 시켜 ‘아동노동’이라는 악명을 얻었고, 이 때문에 한동안 수출에 지장을 받기도 했다. 7~9월과 11~1월 두 차례 수확을 하고, 그 사이사이로 쌀이나 카사바같은 먹거리 작물을 키운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에서 서쪽 그랑라우로 가는 길에 있는 코코넛 농장. 공업용·식용으로 쓰이는 팜유를 생산하기 위한 야자와 카카오 등 플랜테이션 농장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랑라우 | 구정은 기자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에서 서쪽 그랑라우로 가는 길에 있는 코코넛 농장. 공업용·식용으로 쓰이는 팜유를 생산하기 위한 야자와 카카오 등 플랜테이션 농장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랑라우 | 구정은 기자

‘석유와 카카오’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도 아프리카의 자원과 경제 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나이지리아, 앙골라, 수단 등의 산유국과 광물자원을 많이 가진 몇몇 나라를 빼면 아프리카는 여전히 플랜테이션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천연자원의 경우도 아직은 원유·원광 수출에 그치고 있다. ‘석유와 카카오’가 아프리카를 지탱해주는 힘인 셈이다.

아비장의 북쪽 고속도로에는 목재를 실어 나르는 대형 트럭들이 줄을 잇는다. 아시아의 임업국가인 인도네시아의 경우 이미 보르네오 숲 파괴가 많이 진행돼 나왕, 마호가니, 티크 등 고급 수종(樹種)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정부는 자국 숲 자원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가공되지 않은 목재의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여전히 에보니(흑단) 같은 고급수종이 통나무 그대로 수출된다. 열대 토지는 온대지역의 토지와 달리 척박하다. 플랜테이션 농장들은 나무를 심었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태워버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따라서 생산성이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 주요 나라들은 대개 에너지·광물자원 수출이나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세계 10위권의 산유국인 나이지리아다. 라고스에 있는 코트라 비즈니스센터의 곽희윤 관장은 “이 나라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모두 석유가 지배한다”고 지적했다. 외화 수입의 95%, 국가재정의 80%가 석유부문에서 나온다. 하지만 석유가 그만큼 경제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손쉽게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자원이 있으면 미개발국은 제조업 발전보다 자원을 퍼내는 데에만 의존하게 된다. 개발경제학자들이 ‘자원의 덫’이라 부르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남부 니제르델타 유전지대에서는 석유 채굴 이익을 되찾기 위한 원주민들의 봉기가 끊이지 않는다. 정부와 반군이 평화협상을 하는 사이, 부패한 관리들과 일부 주민들은 송유관에 구멍을 내 석유를 빼돌린다. 매년 니제르델타에서 이렇게 새나가는 석유가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어치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라고스 대학에서 만난 이들은 “석유는 저주”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4) 석유와 카카오

선진국 시장 따라 요동

독재국가로 지목돼 국제사회의 압력을 받고 있는 짐바브웨는 초(超)인플레와 금수조치로 생필품과 식량난을 겪고 있다. 그 와중에도 이 나라가 버티는 힘은 다이아몬드와 금 같은 자원 덕분이다. 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르)은 다이아몬드, 구리, 코발트 등의 광물자원과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희귀 금속류로 먹고 산다. 지방에서는 정부군과 반군의 싸움으로 유혈사태가 반복되고 드넓은 땅에 흩어져 사는 농민들 대부분이 빈곤 상태이지만 수도 킨샤사에는 자원을 노리는 외국 기업들이 밀려들고 있다. 자원개발 붐 속에서도 이 나라 연간 1인당 국내총생산(GDP·구매력 기준)은 세계 최저수준인 300달러에 불과하다.

국내 기업들도 많이 진출하고 있는 중부 아프리카의 앙골라는 30년 내전의 상처를 딛고 신흥 산유국으로 떠올랐다. 2006년 석유수출국기구(OPEC) 가입과 함께 국제적인 위상도 한층 높아졌다. 수도 루안다 도심에는 나날이 건물이 올라가고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구매력 기준 1인당 GDP는 근래 8900~9000달러 선으로 훌쩍 뛰었다. 하지만 오일달러는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의 몫일 뿐이다. 1280만 인구 중 80%는 여전히 농민이며, 국민 40%는 빈곤선 이하에서 산다.

수출용 환금작물 위주의 플랜테이션 농업이나 원자재 의존 구조 때문에 아프리카는 세계시장의 변동에 몹시 취약하다. 선진국 산업활동이 위축되거나 부자나라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 공업용 팜유, 카카오·커피 등을 생산하는 아프리카 농민은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2000년대 성장률 7~9%의 고속성장을 하던 아프리카 저개발국들은 최근 금융위기 여파로 경제성장률이 뚝 떨어졌다. 앙골라는 2007년 실질 GDP 증가율이 21.1%, 2008년엔 13.2%였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로 2009년에는 마이너스 0.6% 성장을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2007~2009년 실질 GDP 증가율이 5.5%에서 3.7%로, 다시 마이너스 1.8%로 내려갔다. 산유국인 수단 역시 같은 기간 10.2%에서 6.6%, 3.8%로 성장세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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